내겐 딸이 셋 있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에 걸쳐 있는 딸 셋으로 인해 우리 가족의 아침은 부산하기 짝이 없다. 딸 셋이서 다니는 학교가, 우리집을 기준으로 했을 때에는 각각 사지산방 흩어져 있어, 내가 큰 애를 차에 태우고 나가면 둘째는 안사람이 태우고 나가는 식으로, 아이들의 등교 시간과 그에 따른 이동시간은 우리 가족의 기상 시간과 화장실 순번, 식사 순서까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기준이 된지 벌써 몇 년 됐다. 자연스레 내 출근 시간과 동선 또한 아이의 등하교 시간을중심으로 결정된다.그렇게 허둥지둥 아이의 학교 앞으로 달려가 보면 거의 나와 비슷한 처지인 부모들이 아이들을 등교 시키느라 학교 앞 도로는또 한바탕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걸 보게된다. 부모 차에서 내리는 아이, 시내버스정류장에서부터 뛰어오는 아이, 등하교 시간에만 운행하는 전세(?) 셔틀버스에서 단체로 내리는 아이들까지…. 모르긴 몰라도,요즘 대한민국의 중고생들의 등굣길 풍경은 거개가 이러할 것이다.그리고, 허겁지겁 차에서 내린 아이들이종종걸음치며 순식간에 교문 안으로 빨려들어가고 나면, 교문 앞은 한순간 먼지만이적막하게 내려앉는 곳으로 변해버린다.

순간이동… 직통…! 아이들은 급하게 이동하고 급히 사라진다. 요즘의 이와 같은 등굣길 풍경이 어쩔 수 없는 시대의 변화를 담고 있는 것이라고 해도, 이렇게 정신없는 아이들의 아침을 보고 있노라면 아이들이 급체에 걸리지 않는 게 다행이다 싶다. 교문 속으로 빨려 들어간 큰 애는 밤 10시, 녹초가 되어 다시 교문 밖으로 나온다. 저 교문 안에서, 아이들은 부모 세대 학업량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공부를, 채 소화할 틈도 없이 폭풍 흡입(?)하고 나온다. 등교, 수업, 하교에 이르기까지 우리 아이들의 나날은 눈이 핑핑 돌 정도로 정신없다. 학교를 걸어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집을 나와, 동네 골목길에서 또래 친구나 선후배를 만나고 함께 재잘거리며 학교를 향하는긴 둑방길을 따라 걸어야 했다. 비바람이휘몰아치는 날에는 우산대를 지탱하는 데에도 쩔쩔매고, 쨍쨍한 햇살에 하릴없이 온몸이 다 따끔거리던 날들이었다…. 목련꽃이 피다 지길 반복하고, 학교 앞 구멍가게 자리는 문방구점이 되었다가, 언젠가부터‘갤로그’ 소리가 요란한 전자오락실로 변했다. 진안 고향집에서 학교를 다니던 시절이다.

전주 모래내에 둥지를 틀고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도 여전히 나는 학교를 걸어다녔다. 걸어야 하는 거리와 시간이 전에 두 배쯤 늘었고 내 종아리 또한 그만큼은 굵어졌다. 그 즈음에 내 등교 코스는 언제부턴가 친구들의 하숙, 자취집들이 있던 곳을 점점이 이어가는 방식으로 짜였다. 친구를 하나 만나고, 또 다른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 학교를 가는 길은 곧 친구들을 만나 아침 인사를 하는 시간이었다. 그 무렵, 나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등굣길을 따라 학교를 간다는 것은 나만의 사적 공간을 빠져나와 ‘우리들의 공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라고…그리고, 교실에 도착한 학생의 가방 속에서 하룻밤 동안 어두운 침묵에 갇혀 있던 책 한 권은 마침내 환한 햇빛 아래 펼쳐지게 된다. 거기 친구들의 책들도 함께 펼쳐져 있다….등교를 한다는 것은 이처럼 밝은 지혜를 친구들과 함께 찾아가는 길이었다고, 나는 지금 돌이켜 추억한다.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나날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를 가는 동안, 나는 “내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러 이 길을 간다”고 스스로 되뇔 수 있어야 한다고, 또한 나는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학교를 간다는 일은 얼마나 따분하고 지겨운 나날인가! 스스로 즐거움을 만들줄 알아야, 우리 아이들의 학창 시절이 꿈과 추억과 보람으로 체화될 것이다.하지만, 생각만 그러할 뿐…. 나 또한 눈만 뜨면 딸아이들을 학교로 ‘배달’하기 바쁜 시절 속에 산다. 이제 부모로서 해줄 수있는 것은 내 등굣길을 나는 이렇게 추억한다고 들려주는 것, 그리고 아이들이 새롭게주어진 등교 환경 속에서, 자신이 나날이겪는 나날의 경험 속에서 자신만의 의미 세계를 구축하고 그 경험을 친구들과 나누며,어깨동무하듯 더 환한 내일로 한 발 한 발내딛기를 바라는 것일 뿐…오늘도 우리 아이들은 등굣길은 부산하고, 부모의 눈길 속엔 기대와 염려가 교차한다. 다만, 위안이 되는 것은 아마 내 아버지와 어머니도 그런 눈길로 아침 등굣길의 나를 배웅하셨을 것이라는 뒤늦은 깨달음….바라노니, 후일 우리 아이들은 ‘내 등굣길은 늘 부모님이 학교까지 차로 태워다 주는 행복한 길이었다’고 추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