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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3 | 특집
[문화칼럼] 문명에 배신당한 일본의 고도성장
관리자(2012-03-07 16:03:45)

문명에 배신당한 일본의 고도성장 임경택 전북대학교 교수 


대학에서‘일본의 사회와 문화’에 관한 수업을 통해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가장 많이 느끼는 것은, 우리 세대와는 달리 요즘의 대학생들은 일본을 대등한 입장에서 바라본다는 것이다. 특히 한류 열풍을 이야기할 때는 우월의식을 느끼는 학생들도 있다. 그들의 당당함을 보면서, 유학시절(1990년대) 서양 친구들이‘전세계에서 일본을 우습게 아는 건 한국인 뿐!’이라고 흥분하던 장면이 떠오르곤 한다.


일본의 재생 여부는 차치하고, 우리의 성장과 일본의 침체를 단순한 우열의 비교로 끝낸다면, 일본은 그저 우리가 쫓아가려던 단거리 경주의 결승점에 지나지않을 것이다. 수치 뒤에 모든 것을 숨긴 채 숨 가쁘게 달려간 그들의 길을 반추하면서, 이제 우리는‘세계시민’으로서의 길을 찾아 나설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일본의 고도성장의 뒤꼍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일본이 당시 세계 2위의 서독을 제치고, 경제대국으로 도약한 것이 1968년이라고 한다. 1960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고도성장의 공죄는 무엇일까? ‘공’은 첫째, 기업가나 국민들에게 적어도 10년간의 목표를 부여하였던 것이었다. 사람들은 맹렬히 일을 하고, 10년은커녕 7년 만에 소득배증을 달성하였다.


둘째, 근대국가를 탄생시켰던 메이지 유신 이래 처음으로 완전고용을 달성하였다. 그에 따라경제의 이중구조는 해소되었고, 임금이 인상되었다. 이발소나 세탁소 등의 서비스 노동의 가치가 고양되었다. 한마디로 하면, 그 이전의 시대에 비해 인간의 가치가 더욱 높아졌던 것이다. 셋째, 기업의 중간층의 활력을 끌어내어, 여러 가지 발명이나 궁리를 낳게 하였다. 전기세탁기, TV 등을 비롯한 신제품의 발명이 잇달았다. 몇 년 전 방영되었던 NHK의‘프로젝트 X’는 바로 이 고도성장기의 기술자나 영업맨의 고생과 성공담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넷째, 평화헌법을 유지하면서, 군사비를 최소한으로 억제하고, 경제성장에 전력을 집중하는 길을 열어, 역사상 군사력을 사용하지 않고 경제대국이 될 수 있다는모델을 세계에 보여주었다는 점이다.그리하여,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관료주도와 업계협조체제를 통해 규격대량생산형의 근대공업사회를 완성시켜‘공급자의 천국’을 즐기게 되었다. 그‘천국’에서 특히 대기업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종신고용과 연공서열을 믿고,장래에 대한 걱정도 없이, ‘교제비’로 사교를 즐길 수 있었다. 


일본인들은 관민노소를 불문하고, 이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되리라 믿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21세기를 맞이한 일본은 장기불황에서 허덕이고 있고, 정부는 셀 수 없을 정도로 경기대책을 시행하였고, 정권교체마저 이루어졌지만, 일본이 구조불황에서 헤어날 길은 도무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면 세계의 부러움을 샀던 고도성장의‘죄’는 무엇일까? 첫째, 미나마타병과 같은 돌이킬 수 없는 공해를 일으켰다. 또한 수질오염, 대기오염, 교통사고 등을 수없이 발생시켰다.둘째, 과소과밀문제를 낳았다. 특히 농업의 쇠퇴, 농업해체를초래하여, 후계자 문제를 심각하게 만들었다. 셋째, 행정지도라는 명목으로 관료의 권한을 한없이 강화시켰다. 거품경제가붕괴해 가던 무렵, ‘호송선단방식’이라 불렸던‘관료왕국’은고도 성장기에 한층 더 강화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에 잇달아 발생한 관료들의 부정부패사건으로 인해, 관료왕국은붕괴되고말았다. 넷째,‘ 회사제일주의’를만연하게하여지역공동체를 해체시켰고, 도시에서는 인간관계의 희박화를 초래하였고, 연대의식을 상실하게 하였다. 이러한 것들이 후에 치유를 구하는 감정이나 국수주의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되었다. 이와 같은 공죄의 두 면은 결코 과거로 끝난 문제가 아니라, 현재까지도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문제이다.그런데 보다 더 큰 문제는, 일본이 문명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고, 등을 돌려버렸다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이 부분을 우리는 더 심각하게 분석하고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일본이 공급자의 천국을 즐기던 1980년대에, 근대공업사회는 끝났고, 규격대량생산의 이점은 사라져버렸다. 일본의 오류는 그러한 사실을 이해하지 않고, 경제의 체질과 사회적 기질을 바꾸지 않은채 공업사회형의 대책을 반복해 왔다는 것이다.무엇이 근대공업사회에 종언을 고하였을까? 인류의 문명을결정하는 세 가지 요소, 기술과 인구와 자원 환경이 모두 변했던 것이다. 즉 제어정보기술의 비약과 경제의 글로벌화, 자원·환경문제가 인간심리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발생한 수요의 소프트화가, 경제사회의 구조를 바꾸고, 사람들이 지닌 가치관을 바꾸어 버렸다. 이른바‘지적 가치의 혁명’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 혁명의 최대요인은 사람들의 욕구가 대량생산되는 규격품의 수적 증가나 규모의 확대로부터, 정보나 경험의 자기현시 등의 주관적 만족으로 옮겨 가, 그것을 낳은 지혜의 값어치가 중요해진 것이다. 인류는 산업혁명 이래, 인간의 노동과 기계를 치환하는 것을 추진해 왔다. 기계란 궁극적으로 금속과 연료이다. 지구환경보전이 노동과 임금을 자원과 환경 부담으로 치환하려는 운동이라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문명의 흐름을 역전시키는 것이 된다. 이 점에 대해서는 말을 돌려서도 안 되며, 환상을 품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다. 정확하고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환경이 아껴 써야 할 만큼 점점 부족해져 가는 생산요소라면, 점차 증대되고 있는 요소는‘지혜’이다. 


그동안 생산요소로서의‘지식’은 두 가지 경로를 통해 증가해 왔다. 하나는 교육과정보미디어의 보급에 의해 경제가 성장하고 평등의 정의가 확산된 것이다. 고등교육에의 진학률은 증가일로였고, 그 결과 사회 전체의 지식의 양과 지적 발상의 습관은 확대되었다. 또 하나는 컴퓨터와 정보통신(인터넷)에 의한 지적 지원이 확장된 것이다. 지식과 기능의 습득이 너무나 간단해진 것이다. 이제 그지식사회를 넘어 지적 가치의 사회로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다양성’과‘극심한 변동’이다.인터넷과 SNS의 보급은, ‘금방 찾아내서 해결하는’편의성과‘적시적소에서 기호를 만족시켜 주는’즐거움을 가져다주었다. 규격대량생산의 대극점을 이루는 다양화이다. 우리는 지금‘가격은 변해도 가치는 변하지 않는 시대’를 벗어나 급변하는 가치를 경험하며 살고 있다.


특정한 인간의 존재를 핵으로 하여 형성되는 재즈밴드형(인격 중심)의 조직과, 일순간에 빛을 발하는 지적 가치에 의존하는 사회에서는, 항상‘다음’을 낳을 수있는 사회적 자극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이것들에 등을 돌림으로써 문명으로부터 배신을 당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지적 가치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독창’과‘도전’이다. 우리 모두의 첫 작업으로, 새 봄과 함께 찾아 올‘정치의 계절’에 규격과 절차만을 고집하는 인간평가의 기준을 떨쳐버릴 수 있는 발상의‘문화적’전환을 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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