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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6 | 특집 [2002전주국제영화제]
2002 전주국제영화제 되돌아보기잔치의 규모를 재조정 해야 한다
전찬일 영화평론가(2003-03-26 16:03:36)

결론부터 말하자. 지나치게 다양한 메뉴와 훌륭한 메인 상영관 '소리의 전당', 그리고 과도한 대안성 등이 오히려 제3회 전주국제영화제의 '독들'이었다. 우선 겨우 7일 간 장·단편 총 260여 편을 선보인다는 것부터가 다분히 과욕이었다. 두 번째 애니메이션 비엔날레가 동시에 진행된 탓이 컸지만, 30여 개국 200여 편의 2회 때보다 무려 60여 편이나 늘어났기에 하는 말이다. 가뜩이나 빠듯한 일정 탓에 많이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그로 인해 놓치는 작품들이 한층 더 많아지는, 안타까운 결과를 낳은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그러나 필요 이상으로 풍성하고 다채로운 식단이, '전쟁과 영화'라는 영화제 주요 테마는 물론 대안과 독립, 디지털이란 영화제 정체성을 무력화시키는 부작용을 빚어냈다는 것이다. 전주 역시 부산, 부천 등과 마찬가지로 버라이어티 성으로 흐르는 통에, 영화제 측이 내건 차별성 확보에 완전히 실패한 것. 이 얼마나 지독한 모순인가.
영화제가 지나치게 외화(外華)에 치중하는 건 아닐까, 의구심이 든 건 그래서였다. 따라서 내년부터라도 잔치판의 규모를 적정 수준으로 전격 조정해야 한다. 영화제 모토에 걸맞게. 올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7월 11일-20일)가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을 법하다. 어느덧 6회를 맞이하건만, 마지막 이틀간의 포스트 페스티벌을 포함해 10일 간, 30개국 140편 전후의 초청작으로 '아담한' 영화제를 치르겠단다. 예산 절감 등, 그 얼마나 현실적이고 내실 있는 결정인가.
소리의 전당 중 2천수백석에 달하는 모악당을 개막식 장소로 만족하지 않고 주 상영관으로 활용하는 것도 심각히 재고되어야 한다. 서울 예술의 전당에 비견될 만한 멋진 공간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공간이 영화제 열기를 감소·증발시키는 치명적 부작용을 낳았기 때문이다. 그 여파는 당장 고사동, 영화의 거리에서 극명히 드러났다. 인산인해는 고사하고, 예년에 비해 너무도 한산했다. 영화제가 열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뿐만 아니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미야자키 하야오) 등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그 널찍한 공간을 채울 영화들이 턱없이 부족했다. 영화제의 성격 상 어느 모로는 당연했지만. 게다가 대안과 독립 등을 내세우면서 그처럼 화려하고 주류적 공간에서 영화를 상영한다는 건 커다란 아이러니였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그러나 영화제 정체성이다. 그 어떤 명분을 내걸건, 영화제가 관객과의 소통에 실패한다면 그 존립 근거가 사라지리라는 건 두말할 나위 없을 듯. 그 취지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 점에서 범주적으로 극단의 반(反) 대중성을 내포하는 대안성 등을 영화제 기치로 내세운 건, 현명치 못한 선택이었다. 국제용이건 국내용이건 독립을 지향하지 않는 영화제가 있을 리 없을 테니, 그 문제는 논외로 치자. 무려 20억원 안팎의 거액을 들여 (영화)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존재한 적도 없으며 존재하지도 않는 '대안 영화'(Alternative Film)를 지향한다는 건, 나름대로 가치는 있으나 무모한 길임이 분명하다. 디지털 역시 매한가지다. 디지털 혁명이 전 세계적으로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디지털을 정체성으로 내세웠다는 건 판단착오였다.
이제 전주영화제는 근본적으로 재출발해야 한다. 처음부터 다시 새로운 방향을 모색·설정해야 한다. 머지 않아 막다른 길목에 다다를 게 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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