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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6 | 특집 [2002전주국제영화제]
2002 전주국제영화제 되돌아보기'탐구하는' 영화제, 그 미약하고도 낮은 속삭임
김회경 문화저널 기자(2003-03-26 16:02:54)

'전쟁과 영화'를 주제로 지난 4월 26일부터 5월 2일까지 한국소리문화의전당과 전주시 고사동 '영화의 거리' 를 중심으로 펼쳐진 2002 전주국제영화제가 엇갈린 평가 속에 7일간의 영화 여정을 마쳤다.
부산과 부천에 이어 또 하나의 국제영화제를 표방하면서 대안과 독립, 디지털이라는 다소 생경한 비주류적 영화 세계를 지지해 왔던 전주국제영화제. 영화제를 여는 후발주자로서의 부담감이 주제와 내용 면에서 차별화와 도전의식을 요구받게 되었고, 이에 대한 평가와 견해는 지난 세 번의 영화제를 치러오는 동안 각기 다른 양상으로 표출되어 왔다.

관객의 보수성을 향한 도전과 실험
올해로 세 번째 행사인 2002 전주국제영화제는 그동안 다소 모호하고 관념적이라는 '대안 영화'의 이미지와 영화제 성격, 의도 등을 보다 확실히 각인시키면서 이에 대한 평가나 견해차도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날 수 있었다. '영화'에 대한 일반의 선험적 경험에서 형성된 확고한 이미지나 기대치를 일정부분 허물어 보자는 영화제 조직위 측의 의도가 해를 거듭하며 분명해졌고, 이러한 요소가 '낯선 영화', '어려운 영화'로의 선택으로 이어지면서 일반 시민이나 관객들에게는 다소의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으로 보인다.
'대중성'의 부재나 관객들과의 소통 결여라는 측면에서 보면 전주국제영화제의 선택은 '축제'로서의 성격을 무기력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이를 보완할 만한 부대행사나 기획행사를 제대로 배치해 놓지 못했다는 점은 특히나 조직위가 발휘할 수 있는 '운영의 묘'에 아쉬움을 더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영화 안에서도 마이너리티를 지향하는 영화제"라는 인식을 각인시켜 냈다는 점에서는 정체성 면에서 후한 점수를 얻을 수 있었다. 여전히 '대안'의 실체에 대한 회의의 목소리가 적지 않지만, 거대 자본에 대항하거나 영상에 대한 고정관념을 자극하는 실험적 영화들이 어렵사리 전주로 안착해 선보일 수 있었다는 점은 중요한 성과로 꼽을만 하다. 그것은 낯선 세계에 대한 불편함 이면에 웅크리고 있는 편견에 대한 도전, 사고와 성찰의 폭을 넓혀준 데 대한 짜릿함이나 뿌듯함과도 흡사하다. 이는 "관객들의 '보수성'을 향한 도전과 싸움"이라는 서동진 프로그래머의 말이 일정부분 들어맞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는 공부하는 영화제, 탐구하는 영화제로의 면모를 이번 영화제를 통해 보다 확실히 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남겼다. 온라인을 통해 행사 현장 곳곳을 실시간으로 방송하고 영상 소스를 제공했던 '디지털 툴 박스'는 전북대 등 전북지역 대학생 80여명으로 구성된 인력들이 디지털 카메라로 행사장의 표정을 생생히 전달하면서 영화제의 새로운 묘미와 실험성을 부각시켜 놓기도 했다. 이밖에 초대권이나 할인티켓을 과감히 폐지하는 대신, 회원제인 지프 패밀리 카드제를 실시하면서 영화제 고정 고객을 확충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도 신선한 시도로 평가받고 있다.

더욱 절실해지는 '작지만 정교한 영화제'
그러나 마이너리티를 지지하는 영화제로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으면서도 세계 32개국 266편이라는 대규모 영화제를 고집하는 것은 적지 않은 한계와 모순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비주류의 주류화', 다시 말해 대중성이 취약한 비주류적 영화를 일반 영화 축제의 주류 형태로 승화시키려는 영화제 측의 시도가 시민들이나 자치단체의 현실적 요구를 따라가기엔 자칫 녹록치 않은 과제와 무리수를 스스로에게 짐지울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작게 시작해 차분히 규모를 키우고 노하우를 축적해 가는 쪽이 위험 부담을 줄이고, 실속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지적에 귀기울일만 하다. 3년이라는 짧은 경력에 해를 거듭할수록 국내외를 막론하고 크고 작은 영화제가 속속 몸을 일으키는 상황에서 국내외 각처에 포진된 '좋은' 영화를 손쉽게 공수받기엔 조직위와 프로그래머의 부담이 적지 않다는 점도 이러한 지적에 힘을 실어주는 대목이다.
지난 두 번의 영화제를 치르면서 대중성에 대한 질책과 비판이 끊이지 않자, 조직위 측은 이번 영화제에서 대중성을 담보할 만한 프로그램을 배치하는데 적지 않은 공을 들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영화제에서도 일반 시민들을 위한 배려나 축제로서의 면모가 부족했다는 지적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이고 보면 이 또한 대중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보다 앞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상영작품이 많아지면서 영화제의 성격을 해치거나 모호하게 했다는 점이다. '작지만 정교한 영화제'로의 과감한 선택이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되새겨 볼 대목이다.
이는 한편으로 운영면에서 기술적인 기교가 아쉬웠다는 지적과도 일맥상통한다. 프로그램 구분이나 상영장의 성격을 보다 쉽고 명확히 해 두지 못한데 대한 아쉬움이다.
가족이나 연령층을 구분한 프로그램이나 상영장이 보다 쉽고 간편하게 안배되거나 대중성 있는 주류 영화들을 모아 일반 시민들을 위한 별도의 상영공간으로 확보해 두는 방법 등도 진지하게 모색해 가야 할 과제다. 일반 관객들은 어려운 영화, 낯선 영화들 틈에서 '골라보는 재미' 보다는 '골라 보아야 하는 난감함'이 더 앞설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조직위 측이 시민들의 판단에 앞서 영화를 '골라주거나' 영화에 대해 섣부르게 해석하고 진단해서는 안된다는 식의 시민들과의 '거리 두기' 보다는 시민들 속으로 들어가 적극적인 홍보와 영화 안내를 펼지는 쪽이 시민들의 요구가 아닌지 진지하게 검토해 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내용과 형식, 규모면에서 작고 정교한 마이너리티형 영화제로 가야할 것인지, 대중성과 흥행을 타깃으로 시민과 관객들이 모두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대동의 '영화 축제'로 가야 할 것인지 지역사회의 적극적인 공론화 작업과 이에 따른 합의가 여전한 과제로 남아 있다.

'축제의 붐' 찾아가는 기획력 아쉬워
이번 2002 전주국제영화제의 정체성이나 성격이 확고해졌다고는 하지만, 앞으로 지역사회의 쉽지 않은 '선택'의 문제가 가로놓여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영화제의 홍보와 마케팅, 조직 가동력, 축제로서의 기획능력 등 운영 전반에 대한 아쉬움은 확실히 개선해 나가야 할 부분이다.
특히 영화제 기간 내내 불거져 나왔던 '축제의 붐'이 형성되지 못했다는 지적은 홍보와 마케팅 측면의 묘수가 부족했던 때문으로 보인다. 이는 축제 공간의 집중화나 상영작의 대중화 등과도 직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지만, 이 같은 단점을 보완할 만한 부대 행사나 주목할 만한 상영작 패키지화 등을 통해 시민들의 관심과 시선을 끌어올 수 있는 기획력의 부족이 아쉬운 대목이다. 조직위 개별팀 사이의 원활한 의사소통과 유기적 결합이 돋보이지 못했던 것은 "지난해보다 안정된 조직과 전문성을 발휘한 조직"이라는 조직위와 전주시의 자평에도 불구하고 조직 운영이 비효율적이었다는 비판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개막 공연의 안일함도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예산이 지난해보다 넉넉치 못했다는 점이나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이 월드컵 문화행사 등으로 분주했던 상황을 감안하면 조직위의 고민이 적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지만, 기존 작품인 <도깨비 스톰>의 한 토막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은 관객들의 실망을 사기에 충분했다.
메인 상영장인 한국소리문화의전당과 고사동 '영화의 거리'가 갖는 거리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 이번 영화제의 활기를 크게 떨어뜨려 놓은 주범이었다. 대부분의 시민들이 영화제가 열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점은 이 두 공간의 물리적 또는 기획의 연계성을 효과적으로 이뤄내지 못했음을 시사하며, '영화의 거리'에서 펼쳐지는 부대 행사가 그다지 큰 매력을 갖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결국 행사 기획력에 아쉬움을 더하는 대목이다.

이제 세 번의 영화 여정이 끝났다. 세 살바기 영화제를 놓고 화려한 공치사나 막무가내식 비판 어느 양쪽도 모두 경계해야 할 일이지만,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는 영화제 생명력이나 신뢰도의 측면에서 본다면 결코 놓아서는 안될 부분이다. 지나친 애정이나 무조건적인 백안시보다 더 큰 문제는 시민들의 '무관심'이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관심을 꾸준히 유도해 내면서 비주류 영화의 주류화, 크고 웅장한 메인 상영장과 소수의 영화 관객, 그리고 정체성과 대중성 사이의 조화와 접점을 찾아가는 일이 전주국제영화제가 앞으로 풀어가야 할 가장 중요한 화두이자 과제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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