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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5 | 특집 [특집]
매운맛의 고장 순창을 다녀와서
김경란․백화여자종합고등학교 교사(2004-01-29 13:26:59)

출근길, 차창을 통해 비치는 봄산의 물오른 모습과 뽀오얀 돌들이 볼을 부비며 입김을 피워올리는 대자연의 품에 함께 하고픈 충동을 느끼다가 오늘은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나 모처럼 훌훌털고 백제기행에 나섰다. 출발전 조금은 흐릴 듯 하던 날씨가 열시를 지나면서부터 서서히 안개가 걷히더니 화창한 봄날씨로 변하여 마음까지 가볍게 했다. 예정보다 30여분 남짓 늦게 출발한 관계로 여기저기서 주최측을 비난하는 소리도 있었지만 아주 익살스럽게 잘 넘기는 백제기행의 단골손님(?)덕분에 자기소개와 더불어 유쾌할 수 있었던 시간. 처음 기행제목이 「순창고추장의 제조현장을 찾아」간다는 홍보에 별 흥미가 없었으나, 언제나 나의 기대이상으로 넉넉히 채워주는 계획이 있음을 알기에 고추장아닌 그 어떤 기대감으로 선뜻 나섰다. 전주에서 약 한시간 남짓한 거리에 위치한 순창. 임실을 지나 우뚝하게 자리한 회문산을 바라보며 임실군과 순창군에 걸친 이 산의 풍수지리설에 입각한 영험과 그에 따른 묘지에 얽힌 사연들을 들으며 ‘살아서는 남원, 죽어서는 임실’이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순창읍내에 들어서면서부터 눈에 띄는 간판마다 「순창전통고추장집」이라는 요란한 옥외광고를 뒤로하고 우리가 찾아간 곳은 읍내에서 조금 벗어난 작은 시골마을 권씨 할머니댁. 권문세가를 자랑했을 법한 골깊은 기와지붕이며 높은 마루가 그 옛날의 영화를 대변해 주고 있는 듯 했다. 고추장이야 우리 전통음식중 기본 양념인 간장, 된장과 더불어 집집마다 연례행사로 담궈오고 있지만 유독 순창하면 고추장, 고추장하면 순창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은 어떤 연유에서일까 궁금했었다. 그런데 타지방 물보다 철분이 많은 이 지방의 물과 유난히 당질이 많은 고추와 콩때문 이란다. 할머니 댁에 들어서자 큰 가마솥에 장작불을 지펴다리고 있는 엿기름 물가 크고 작은 통마다 가득가득 담겨진 고추장과 고추장을 이용한 장아찌들로 넓직한 마당이 좁아보일 정도였다. 칠순을 넘기신 권씨 할머니의 정정하신 모습과 수줍게 웃으시는 미소뒤에 훌륭한 솜씨 못지 않은 아름다움이 잔잔히 피어오르고, 그 어머니 뒤에서 고추장의 제조과정을 열심히 설명하는 30대 아드님의 모습이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고추장의 제조과정을 설명 들으며 찍어 먹어보는 고추장이며 장아찌 맛으로 입안이 얼얼할 즈음 한상 가득차려진 한식다과상을 받고 송화다식이며, 감단자, 수정과, 약과, 식혜 등에서 고추장아닌 또다른 손끝의 매운맛에 감탄했다. 고추장 담그는 방법을 배우고, 맛있게 시식도 하고, 선물도 한아름씩 사들고, 뒷날을 기약하는 여운들을 남기며, 고추장 맛 못지 않은 선비들의 매운맛을 느끼게 하는 현장 가남리로 향했다. 가남리는 고령신씨의 씨족 마을로 마을 입구에 영조대의 실학자였던 신경준의 비가 있고 뒷산에 귀래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순창고등학교 장교철 선생님의 자세한 안내를 받으며 우리가 찾아든 곳은 신말주 선생의 후손으로 집안의 가보들을 소장하고 있는 신승재씨댁 이었다. 세조반정에 항거한 순창 고령신씨의 시맥을 이루는 신말주(1439)선생은 세조때의 명신으로 훈민정음 제정에 공이컸던 보한재 신숙주의 동생이다. 그의 형 숙주가 세조를 도와 좌인 단종을 제거하고 집권세력이 된 반면 그는 불사이군적 충절을 택했다. 그는 열다섯에 급제를 하고 정권 찬탈의 거센 바람이 일때에는 이미 대사간에 이를 정도의 비범함 재주군으로 그의 t형 숙주보다 재주가 두배나 뛰어 났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세조는 여러차례 벼슬을 내렸으나 끝내 벼슬길에 나아가지 낳고 패관 낙향해 남산대에 귀래정을 짓고 독서삼매와 풍류로서 시름을 달래다 성종조에 이르러서야 벼슬길에 나아가 전라도 수군절도사까지 지냈다 한다. 특히 귀래정의 현판에 새겨진 서거정의 귀래정기와 강희맹의 시는 고절의 상징인 인간 신말주를 잘 말해주는 명문명시로 이름이 높다. 말주는 원래 나주출생이나 말주의 중형중주가 순창 군수를 지낼 때 이 곳에 와서 살았던 연유로 남산대의 옥천설씨 규수에게 장가들게 되어 영원한 고향이 되게 된다. 이때부터 순창의 고령신씨들은 말주를 정맥으로 그 이름높은 출세의 가도를 타 인맥권을 형성해 나간다. 말주는 본인뿐 아니라 그 부인 설씨 도한 현숙하고 서화에 능하여 이름이 높아 특히 부인이 남긴 권선문첩은 오늘까지도 전해져 1981년 정부로부터 국가보물 728호로 지정을 받았다. 「권선문첩」이란 말 그대로 선을 권하는 글인데 이글의 내용을 나타내는 그림을 두폭 그려 총16폭의 글씨와 그림을 병풍처럼 표구하였기 때문에 이를 권선문첩이라 부른다 하는데, 그 섬세함과 미려함은 문외한인 나에게 가지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 말주는 슬하에 훌륭한 자손을 두었는데 예종과 중종연간에 그 벼슬이 이조판서에 이르는 청백리 신공제가 그의 손자이며 영조때의 학자였던 신경준이 공제의 직계후손이란다. 역시 훌륭한 조상아래서 훌륭한 인물이 나온다는 생각을 하며 빛바랜 설씨의 권선문첩과 신경준의 팔도지도중 일부, 그리고 공제선생이 중국에 사신으로 갔을 때 천자로부터 받았다는 옥대며 호랑이 장식, 대추나무 촛대등을 만지며 세월을 잠시 잊기도 했다. 하지만 못내 아쉬운 점은 국가의 보물급에 해당하는 여러 유품들이 잘못 보관되어 함부로 다루어지고 많이 훼손되어 있는 것이었다. 대기는 점점 더워지고 몸은 지쳤지만 마을 뒤 오솔길을 따라 귀래정에 오르는 발걸음들은 한결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귀빈이 올 것을 미리 알았던지 붉은 황토를 깔아 말끔해진 비탈길을 30m 남짓 올라가자 솔향기를 한껏 머금은 시원한 바람이 심신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하지만 이게 웬 유감인가! 와~하는 탄성이 채 가시기도 전에 시야를 가리고 앞에 선 순창의 현대식 의료원 건물은 아무리 접어 생각해도 정자와는 조화롭지 못한 것 같았다. 어떤 이해관계를 떠나 내 고장의 문화재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만 고려되어도 그런 우는 범치 않았을 것을~. 금강산도 식후경이랄까. 점심시간을 조금넘긴 느직한 시간 순창읍내에 우리 기행팀 40여명을 위해 미리 예약해 둔 순창의 토속음식만으로 상을 차린 백반집으로 향햤다. 반찬이 무려 30여가지가 넘는 진수성찬으로 기력을 회복한 다음 멀리 있어도 못내 그리운 사람같은 팔덕면의 광덕산으로 향했다. 눈부신 하늘과 계속의 옥류와 더불어 통통하게 물오른 버들강아지며 군데군데 피어오르기 시작한 산수유의 환영을 받으며 홍그러움에 젖어 일주문을 지나니 문득 떠오르는 한 여인의 모습이 있었다. 일주문! 이 일주문을 지나며 올려다 본 강천의 하늘을 노래한 이경모 스님, 그가 이곳에 또 하나의 포근한 작은 산으로 존재하는 듯하여 더욱 걸음이 빨라졌다. 하지만 인연이 덜 닿았음인지 만나지 못하고 시원한 약수 한 바가지로 칼칼함을 달랠 수 밖에 없어 강천사의 조금 위쪽에 자리한 삼인대로 발길을 돌렸다. 삼인대는 조선 중종때에 순창군수 김정, 담양부사 박상, 무안현감 유옥등이 중종반정으로 야기된 왕비신씨의 폐비건에 대한 부당함을 주장, 공동명의의 상소문을 작성하기에 앞서 결의를 다지는 뜻에서 인장을 나무가지에 걸어 놓고 비장한 절의를 다졌던 곳이라 한다. 초야에 묻힌 선비도 아닌 현직 관방장들의 이같은 상소는 참으로 죽음을 각오한 기계가 아니고는 있을 수 없는 일로 오늘날에 와서는 왕권을 설득시킨 이상의 큰 뜻이 담겨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한번 뿐인 인생 사람의 도리가 어찌해야 하는가를 삶을 통해 실천적 교훈으로 남긴 역사의 현장에서 인생의 숙연하을 더하게 되었다. 운암호에 지는 낙조가 유난히 아름다운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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