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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1 | 특집 [특집]
우리 이웃들의 삶의 모습에 더 많은 관심을
이 수 라·전북대 대학원(2004-01-27 16:51:35)

어쩌다가 아침 늦게까지 TV를 보며 뭉기적거릴 때면, 주부들을 겨냥하고 있음에 틀림없는 프로그램들 끄트머리에 문화행사 일정이 소개되는 것을 본다. 그 풍성하고 화려한 무대와 전시장을 대할 때마다 묘한 갈증을 느낀다. 그렇게 많은 문화행사들이 끊이지 않는 서울이라는 곳이 마치 화수분인 듯 여겨지던, 어릴 적에나 갖던 환상은 아니다. 그때의 갈증은 우리 자신의 모습을 하고 있는 우리의 문화는 과연 어떤 것이며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하는 의문(혹은 반문)에서 비롯된다.
이런 생각 속에서 『문화저널』이 해내고 있는 몇 가지 작업은 매우 소중하게 떠오르곤 한다. 연중기획물인 '백제문화의 원류를 찾아서', 특별기획 '전북의 실학자' '우리문화연구' '판소리란 무엇인가', 그리고 문화기고인 '전북의 민속놀이' 등 일련의 연속작업들은 분명 우리의 과거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확인하는 자리로서 대단히 소중한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된다. 오랜 세월을 정치·경제·문화의 중심권 밖으로 밀려난 채 살아온 우리지역은 교과서에서도 역시 관심 밖의 지역이었기 때문에 이 지역 과거의 참모습을 돌아보고 느낄 기회가 우리에겐 부족했기에 더욱 소중했다.
더구나 나는 태어나기는 농촌지역에서였지만 세 살 이후부터는 전주에서 살아온 탓에, 설날이나 대보름, 추석 때에 행해지던 놀이들을 직접 볼 기회도 없었고 해본 적은 더욱 없었다, 먹고 살기도 팍팍했던 어린 시절 덕분에 할머니나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 옛날이야기를 듣다가 잠들어 본 기억도 없다. 그러한 나에게 '전북의 민속놀이'란에서 읽은 도깨비굿이며 민족 대동굿, 그리고 팔월보름의 여성굿에 관한 이야기는 대단히 흥미로운 것이었다. 이는 함께 어우러지는 판으로서의 우리 문화의 공동체적인 모습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것이었고 또한 아련한 향수마저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사실 전북문화예술정보지인 『문화저널』이 다음 달이면 벌써 세 돌이란 이야기를 듣고는 무척 놀랐다. 아니, 대견해 했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어쩌면 참 잘 버텨왔구나 하는 감탄일 수도 있다. 솔직히 예기하자면 대단히 미안한 얘기지만 『문화저널』은 나의 시선을 확 잡아끄는 잡지는 아니었다. 아마 그랬기 때문에 3년이 됐다는 얘기에 놀라고 대견해 하고 감탄했을 것이다.
어쨌든 고백하건데 다시 보고 싶은 흥미를 유발하는 잡지는 아니었기에 애써서 챙겨 읽는 편은 아니었다. 전에는 서점에서 책을 사면 집어가라 그러기에 공짜라면 양잿물도 좋지라는 심정으로 들과 왔었고, 근래에는 잘 다니는 찻집에서 친구 기다리는 무료한 시간을 떼우기 위해 500원을 투자했다가 본전뽑는 심정으로 꼼꼼하게 읽곤 했었다.
그런 사람이 감히 3년동안이나 애써온 분들에게 '바란다'는 얘기를 하려니까 미안하고 건방진 감이 스스로 없진 않다. 하지만 『문화저널』에 소홀했던 것이 나만의 잘못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문화저널』에서 선데이 서울류의 선정적인 삽화나 기사를 기대했던 것도 아니고 객석이나 월간 미술류의 고급예술을 기대했던 것도 아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의 집적물이 문화라는 형태로 표현되는 것이라 할 때, 내가 『문화저널』에 기대했던 것은 하나 뿐이었다. 이 땅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으며, 이 땅에 서 있는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갔으며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을 기대했던 것이다. 건강하게 살아가는 건강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나 또한 건강하게 살아갈 힘을 얻기를 바랐던 것이다. 나의 이러한 바램은 구체적 삶의 현장에서 살아가고 있는 지역주민들에 잠재되어 있는 건강한 정서를 개발하고 이에 호소할 수 있는 문화예술을 통하여 건강한 의식을 일깨운다는 『문화저널』의 취지와 어긋남이 없다고 생각된다. 그런데도 내가 『문화저널』에 흥미, 아니 진한 애정을 가지지 못했음은 무엇 때문일까?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문화저널』에 가졌던 복고적 지향이 아니냐하는 의심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의심은 나뿐만이 아니라 8월호의 '독자의 편지'에서도 보인다, 사실 그 방면의 전문적인 필자들의 전문적인 지식으로 이루어진, 위에서 얘기했던 기사들은 그런 혐의를 받기에 충분한 것들이었다. 매번 『문화저널』의 무게중심이 몇몇 기획기사들에 놓여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읽는 당장은 아!좋다. 우리 지역에 이러한 자랑할만한 것들이 있었구나. 모르고 살았다니 부끄럽다. 보다 애정을 가져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한 발 더 나아가서 그래서, 긍지만 가지면 그걸로 끝인가?하는 생각이 든다. 이는 과거의 무게를 감당할만한 현재의 모습을 담은 비중있는 기사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은 그 과거를 오늘에 올바르게 계승하려는 일차적인 시도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과거 우리의 모습이 어떠했느냐가 아니라 현재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느냐가 아닌가 싶다. 과거는 현재의 우리의 모습을 반성할 때에 하나의 기준으로서 작용하기 마련이다. 현재 우리의 문화가 어떤 모습이며 어떻게 전통적인 정서가 변모 혹은 왜곡되어 있는가를 살필 때에 과거의 문화는 일차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문화저널』의 의욕적인 시도는 과거의 복원에 그쳤을 뿐, 이의 현재적 의미를 밝히는데에는 소홀하지 않았나 싶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의 진솔하고 정다운 모습들에 보다 많은 관심을 돌려야만이 『문화저널』에게 가졌던 복고주의의 혐의는 비로소 사라지게 될 것이다. 또한 건강한 문화의 창조와 정착을 위하여 꾸준히 활동해오고 있는 우리 지역 문화단체들을 소개하는 일도 『문화저널』의 몫이라 생각된다.
이런 불만들을 얘기하면서도 참 다행이다 싶은 것은 『문화저널』의 일꾼들이 이미 이러한 사실들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달 '저널이 본다'에서 편집주간께서도 어제의 삶과 문화는 마땅히 오늘의 입장에서 재해석되어야 하며, 과거에 대한 조명을 시도하는 노력은 오늘날의 상황에 적합한 민중적 내용을 담은 참된 민족적 형식의 문화를 가꾸어 나가기 위한 준비작업의 일환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이제 『문화저널』의 발전과 진보는 이미 확보된 거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전북종합문화지 「남민」이란 이름으로 출발했던 또 하나의 노력이 `85년에 시작된 이후로 `89년에 제 3호를 발간하고는 또 다시 깊은 침묵속으로 빠져들었음을 생각하면 『문화저널』의 꾸준한 노력과 작업은 이 지역에서는 대단히 소중하고 의미깊은 것이라 하겠다. 그리고 『문화저널』만큼 건강하게 끈질기게 버텨온 잡지도 이 지역에는 없다.
이제 창간 3주년을 맞아 사무실도 옮기고 지면을 늘리는 등 보다 활발한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니 더욱 고맙다. 이젠 훨씬 성숙한 모습으로의 『문화저널』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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