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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11 | 특집 [특집]
80년대 문학에 대한 반성
임명진(2004-01-27 14:20:21)


1)다른 예술의 경우도 그렇겠지만, 문학 역시 10년을 마디로 삼아 뚜렷한 경계선을 긋는 일은 자칫 작위적인 작업이 될 수 있다. 이는 문학 작품의 생성 배경이 되는 사회 현상이나 인간의 사고틀에 10년마다 뚜렷한 선을 그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만 문학사의 긴 흐름 속에서 볼 때 10년이라는 기간은 어떠한 변화된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하는 편의적인 시간일 뿐이다. 따라서 80년대 문학을 되돌아보는 입장도 그 이전 문학의 연장선 위에서 비교적으로 드러나는 몇 가지 변화 모습을 찾는 데 그쳐야 할 것이다.


2)80년대 문학을 되돌아볼 때 ‘문학은 그것이 창작된 시대적 상황과 조건을 반영한다.’는 소박한 반영론을 새삼 실감나게 느끼게된다. 이른바 정신적 귀족주의률 내세우는 낭만주의적인 작품보다 치열한 현장성과 역사성을 내세운 리얼리즘 작품들이 눈에 크게 띄는 것이 그 좋은 예다. 이와 아울러 문학은 작가라는 뛰어난 개인에 의해 창조된 신비스런 무엇이며 그 창조작업은 대체로 작가나 시인의 탁월한 영감이나 상상력 따위의 정신농력에 따라 좌우된다는 낭만주의적 생각은 자연스럽게 불식된 듯하다. 반면에 70년대부터 논의되었던대로, 작품은 창조된 것이라기보다는 생산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작품의 생산은 특정한 인물에 의해 이루어지는 개인적 행위라기보다는사회적 조건에 의해 이루어지는 집단적 행위 (그것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간에라 할 수 있어서, 그 속에 표현된 생각이나 관념 또한 개인의 것이 아니라 일종의 집단의식, 즉 어떤 집단의 세계관이라는 입장이 더욱 부각된 듯하다. 문학은 개인의 특정한 관념이나 상상력에 따라 생성되는 신비한 예술이기보다는 집단의 공통의식이나 세계관에 입각해 생산되는 산물이라는 생각이 더욱 일반화되었다고 하겠다. 80년대 들어 넓은 지명을 열어 오고 있는 분단문학, 반미문학, 노동문학 등에서 이러한 양상을 더욱 뚜렷하게 찾아 볼 수 있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점은 80년대 들어 분단이데을로기 극복운동, 반미운동, 노동운동 등의 여러가지 현안문제와 맞물려 있는 것과도 상통한다.

3)80년대 들어 정치 ·사회적으로 큰 변화가 있었던 것파 병행하여 그간 고정관념처럼 자리잡아왔던 분단이데을로기를 극복하려는 실천적 노력이각계에서 전개되어오고 있다. 7·7선언파 납·월북작가의 작품 해금 등은 이러한 노력이 얻어낸 굵직한 성과라 할만하다. 문학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해방 직후 6·25전쟁까지의 격동기를 재조명하는 작업이 활발하게 진적되고 있고, 또 분단에 엄힌 외세로서의 미국이 우리나라 현대사에 어떤 의미와 문제를 지니는가 하는 의운이 상당히 집요하게 제기되고 있다. 문단에 ‘반미’라는 용어가 통용되고 있고 해방공간과 6·25전쟁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가운데 분단과정에 대한 기록물파 역사책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가 하면, 소설이 한 사람이 몇 달전 북한을 방문하여 그곳 최고지도자를 만난 일 동은 저간의 변화 양상을 웅변으로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를 배경으로 이른바 ‘반미소설’의 지평을 더욱 넓힌 작가로는 황석영과 윤정모, 정도상 동을 꼽을 수 있다. 일찌기 〈장길산〉에서 민중의 힘은 역사를 이끄는 끝없는 동력이라고내세운 황석영이 〈무기의 그늘〉에서 월남전을 소재로 제국주의와 민족주의의 상충 양상을 벗겨보인 것이라든지 융정모가 〈고삐〉에서 반미 구호를 서슴없이 내걸어 외세와 매훈의 함수관계를 천착해 보인 것이라든지, 또 정도상이 일련의 소설에서 미국을 ‘제국주의적 외세’로 간주하고 한미관계의 의미를 묻고 있는 것 퉁이 그구체적인 예다.

또 이와는 다른 각도에서 분단외 문제를 역사적 차원에서 캐보려는 노력이 조정래, 김원일 퉁의 소설에서 발견된다. 조갱래가 대작 〈태백산맥〉 에서 그간 반공이데을로기로 점철된분단사률 뒤집어보인 점, 김훤일이 〈겨울골짜기〉에서 이데을로기 갈등을 첨예화시켜 이른바분단소설을80년대 문학의 큰 줄기도 정립시킨 것 등이 그것이다. 또 약간 다른 입장에서 분단현실의 문제를 사상적 깊이로 끌어간시인으로는 고은을들수 었다. 그는 지금 집필 중인 〈백두산〉에서 북방정서 속에 서사적 사건을 깔아 독점자본과 외세 극복의 힘이 무엇인가를 제시하고 있다

4)70년대부터 활발하게 논의됐던 민중문학이 80년대 들어 구체적으로 실천되어 나타난 것으로 먼저 노동문학을들수있다. 이 분야에서는일찍이 박태순, 흥회담, 김남일 퉁의 전문작가들의 작업이 문단의 관심을 끌었지만, 박노해, 백무산, 한백, 방현석 등의 노동자 출신 작가들의 작업이 또다른 구체적인 성과로 나타났다. 기성 문학계가 마련한 상을 받고서 "노동자 계급의 진출과 싸움은 너무도 아릅다운 것”이라는 수상연설을 한 백부산, 〈노동의 새벽〉으로 일찌감치 ‘노동자문학의 새벽’을 연 박노해, 자·신의 소설이 노동 현장에서 생산돼 그 의미가 고스란히 그 현장에 환원되기를 바란다는 방현석 등의 노동자 시인이나 작가들은 문학을 신비스런 창조물로 보지 않고 노동자들의 집단의식을 반영한 생산물로 간주한다. 〈노동의 새벽〉이 노동자들의 비극적 정서를 바탕” 깔고 있으면서도 그들의 비참한 생활을 크게 부각시킨 것도, 그리고 방현석의 소설 〈새벽출정〉에서 노동운동울 ‘계급’갈등에 입각하여 현장감있게 담아낸 것도 모두 집단적 세계관에 기한다. 이들 시인이나 소설가들이 모두 노동자들이라는 사실은 이 점을 더욱 뒷받침해주고 있다. 이들의 전 작품에서 노동으로 단련된 완강한 힘이 크게 울려오는 것도 그것이 비단 그 작가만의 사고나 감정에 국한되지 않고 그가 속해 있는 노동자들 전체의 그것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김남주의 시편들은 다른 차원에서 치멸성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80년대의 대부분을 욱중에서 보낸 그는 예의 부드러운 미소와는 다르게 시를 ‘해방 전사의 무기’로 삼는 투쟁성을 치열하게 드러낸다. 그는 〈진혼가〉, 〈나의 칼 나의 피〉, 〈조국은 하나다〉 퉁의 시집께서 때로는 섬뜩하게 느껴지리만치 처절하게 ‘계급’갈등을 부각시키고 있는데, 이는 단지 오랜 수인생활에서 걷은 반작용의 산물만은 아닌 듯하다 물론 그의 옥중생활이 그의 시의 치열성을 어느 정도 부채질했을 것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지만, 기본적으로 그 치열성은 무엇보다 그 자신의 세계관에 입각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를 아무튼 이들의 작품운 모두 노동자 계층에 대한 정당한 지위 부여를 부추긴 점에서 80년대 문학에 큰 줄기를 형성했다고 보아 무방하다. 팀 한편, 80년대 정치 ·사회적 변혁과는 다소의 거리률 유지하면서도 현대의 비극적 정서를 공감케 하는 시인으로 황동규, 이숭훈, 최숭호, 이성복 황지우 등을 들수 있다. 이들의 시에서 울려오는 것들, 예컨대 반문명성을 통한 고통스러운 해학이라든지, 비극적 세계관을 토대로 인간존재의 모순을 탐구한 것이라든지, 오염된 제도·언어 ·관습으로부터 진정한 인간정신에 도달하려는 노력이지 하는 것들은 80년대 시를 더욱 풍요롭게 하는 데 큰 공적을 남겼다. 특히 김지하가 70년대의 민중미학을 기초로 80년대 들어 동학과 중산도에 뿌리를 둔 이른바‘생명사강을 내세워 시의 깊이를 더하고 있는 것도 80년대 시를 더욱 복합적이고 중충적인 것으로 만드는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여겨진다.‘ 소설의 경우, 이러한 양상은 더욱 복합적이다. 이인성과 최수철로 대표되는 새로운 해체주의는 소설 형식에 대한 실험적 작업을 통해 세계와 삶의 의미를 근본에서부터 다시 질문하는가 하면, 서정인 ·이청준·이문열 ·김원우·윤후명 동의 중견들이 끊임없이 소설의 영역을 확대해온 점, 양귀자·박영한 등이 소시민적 리얼리즘으로 따뜻한 시선 속에 삶의 구체적 양상을 드러낸 점, 그리고 복거일이 세청 ‘지식인 소설’이라 불리는 〈비명을 찾아서〉를 통해 80년대 소설의 중충적 성격을 구체화시킨 점 퉁이 그것이다.


5) 비명의 경우 80년대는 활발한 논쟁의 시대라 할 수 있다. 70년대부터 백낙청 등에 의해 꾸춘히 논의의 촛점이 됐던 민족문학론이 80년대 들어 채광석 ·김명인 ·조정환 등에 의해‘민중적 민족문학론’, ‘민주주의 민족문학론’으로 세분화되어 뜨거운 논쟁을 일으킨 것을 필두로 해방공간의 문학활동을 둘러싼 문학사 해석의 문제, 북한 문학의 명가에 관한 문제, 리얼리즘과 민중문학론 논쟁 퉁이 80년대 명단의 중요 이슈로 등장했다. 그러나, 민족문학론의 문학사적 의의가 과대명가되었다는 주장이 이남호·이동하 등에 의해 개진되어 논쟁의 정론적 특성이 노출되기도 했다. 민족문학론과 관련된 논쟁은 소위 ‘사회구성체논의’의 성과를 문학운동의 틀로 치환시키려는 논자와 그러한 방법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논자사이에서 보다 진지하게 거론되어야 할 것으로 그 귀추가 주목된다.
해방공간을 둘러싼 문학사 해석 문제는 권영민 등의 실중적인 작업을 거쳐 구체적인 자료가 선보이게 되어, 앞으로 평단의 주요 과제로 남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비평사 정리의 문제가 이선영 ·김윤식의 작업을 필두로 소장 비명가들의 논구에 의해 그 깊이를 더하고 있는 것도 80년대 비평계의 중요한 성과의 하나라 할 수 있다.
한편 70년대부터 논의되어온 민중문학론이 80년대 초부터 성민엽 ·박태순 ·신경림 ·채광석 등에 의해 심도있게 논의되고 그 결과 노동문학이라는 결심을 보게 된 것은 비명의 창작방법론이 얻은 큰 수확이라 아니할수 없다.


7) 이상 간략하게 살펴본 바의 결론 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80년대 문학은 전반적으로는 그 이전의 것보다 더욱 복합적인 모습을 띠면서도, 비교적으로는 문학은 개인의 창조적 행위에서 비롯된 신비스러운 무엇이 아니라는 탈신비화의 작업이 구체적으로 실천되었다는 것이다. 70년대부터 논의되었던 민중문학이나 민족 문학이 80년대 들어 분단문학, 노동문학, 반미문학 몇 가지 줄기로 구체화 된것이 그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문학의 전문성 문제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최근에 ‘집단창작l이나 ‘공동창작이 선보이고 있는 것도 결국 전문작가의 신비스런 창조력이나 영감, 재능에 대한 의구심에 바탕을 두고 소시민적 한계나 개인주의적 문학관을 극복하려는 적극적인 몸짓이라 할 수 있다. 탈개인주의를 명분으로 삼은 이러한 몸짓이 자칫 조직의 횡포로 흐를 수있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진보적 문인들이 이를 시도하고 있는 것은 문학의 탈신비화 작업이 이제 어디까지 가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실례라고 할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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