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로 돌아보는 혁명, 세계혁명예술
뜨거웠던 그날의 역사, '예술'로 만나다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는 기쁜 소식과 함께 동학농민혁명은 올해 129주년을 맞았다. 전주는 그날의 혁명을 기억하는 방식으로 ‘예술’을 택했다. 2021년 이후 3회를 맞이한 <세계혁명예술>은 혁명의 정신을 기리고 세계 근대혁명의 역사를 예술로서 재조명했다. ‘혁명문학과 영화’, ‘혁명의 노래’에 이은 주제는 ‘혁명의 미술’이다. 올해 <세계혁명예술>은 5월 31일 동학농민군 전주입성 기념식을 시작으로 6월 2일 국제포럼, 6월 15일까지 기념특별전이 함께했다.
그림에서 발견한 동학의 정신ㅣ기념전
<세계혁명예술>을 통해 동학의 정신이 다양한 형태의 미술로 발현되었다. 전주입성기념일인 5월 31일부터 6월 15일까지 전북대 삼성문화회관에서 전시가 열렸다. 야외 전시관에서는 농민화가 박홍규 특별전 <역사와 예술, 그 숭고한 아름다움을 위하여>가, 내부 전시실에서는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이사장 이종민)가 주관한 기념특별전 <동학농민혁명의 기억과 2023년 오늘의 한국>이 열렸다.
동학농민혁명의 뜨거운 순간들을 30여년 그려온 사람이 있다. 농민화가 박홍규다. 부안 출신인 그는 1989년 전봉준 장군을 판화에 새긴 것을 시작으로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에 본격적으로 빠졌다. 작품 전시와 함께 ‘그림으로 보는 동학농민혁명‘을 주제로 기조발표한 그는 혁명 전야부터 1·2차 농민전쟁, 끝나지 않은 혁명 이후의 순간까지 그동안의 작품을 통해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장면으로 안내했다. 공개된 작품 외에도 판화연작의 새로운 버전인 <새 세상을 여는 사람들>도 선보였다. 판화 속 농민군의 모습에서 그날의 뜨거운 함성이 울려 펴졌다.
“한번 크게 패배하여라
그리하여 영원히 승리하리라“
송창 <황토재> (1993)
전국의 작가들은 각자의 시선으로 담아낸 동학농민혁명으로 관객들을 만났다. 특별전 ‘동학농민혁명의 기억과 2023년 오늘의 한국’은 지난 1994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기념특별전 이후 29년 만에 열린 전국 단위의 기념전이다.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사실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닌 혁명이 남긴 현재의 의미와 과제를 돌아보자는 의미다. 올해 전시에 참여한 52명 작가들은 세 가지 관점으로 혁명을 바라봤다. 동학농민혁명의 사건과 인물을 기억하고 기리는 역사적 사실의 미술적 복원, 세계적인 저항운동을 기록한 미술작품과 상징의 구현, 동학농민혁명 정신은 오늘날 어떤 시대적 과제로 계승되고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불꽃같은 삶을 살다 간 지도자들의 초상부터 동학정신을 상징하는 피 빛 노을 아래 황토 들녘, 동학사상을 현대사회의 물질 만능 주의에 빗대어 ‘사람이 곧 하늘이요’가 아닌 ‘쩐이 곧 신이요, 하늘이니’로 풍자한 그림까지. 다양한 시선을 담았다.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인 전봉준 대신 이번 전시에 유독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여성농민군 이소사이다. 김태순, 김화순, 정하영 세 명의 여성작가는 모두 이소사 장군에 주목했다. 그에 대한 기록은 많이 남아있지 않지만 장흥전투에서 농민군을 지휘하며 용맹하게 싸운 진취적인 여성으로 전해진다. 여성운동의 선구자로서 동학농민운동 혁명사에도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129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우리는 그림으로나마 그의 이야기를 만났다.
동학농민혁명과 닮아있는 세계의 혁명|국제포럼
동학농민혁명이 있기 이전부터 세계 곳곳에선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민중들의 외침이 있었다. 독일농민전쟁을 비롯해 남미 민중저항, 프랑스 68혁명까지. 우리의 위대한 혁명을 세계적인 의미로 발전시키고 또 다른 혁명의 역사에 함께 공감하는 연대의 장이 마련됐다. 국제포럼은 6월 2일 삼성문화회관 건지아트홀에서 열렸다.
‘망치, 칼, 무지개’ 예술 속 독일농민전쟁
500년 전, 독일 땅 위에도 치열한 농민전쟁이 있었다. 발표자 토마스 뮐러(독일 마틴루터 박물관장)는 독일농민전쟁을 미술적 관점에서 이야기했다. 독일의 농민전쟁은 급진 종교개혁가 토마스 뮌처가 일으킨 혁명이다. 귀족에서 농민에 이르기까지 사회 모든 계층이 일으킨 가장 큰 규모의 민중 봉기였다. 그는 인쇄술의 발전이 농민전쟁의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소개했다. 인쇄술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지식을 얻게 되었고, 여기에서 혁명의 불씨는 서서히 일어났다. 그는 그림 속에 등장하는 ‘망치, 칼, 무지개’ 세 가지 상징을 통해 농민봉기의 의미를 돌아봤다. 뮌처는 완전한 패배와 함께 전봉준과 비슷한 운명을 맞았지만 그가 주도했던 혁명은 유럽 종교개혁의 분수령이 되었다.
복잡한 형태로 얽혀있는 역사, 남미 민중저항
안소니 쉘튼 교수(캐나다 브리티시콜롬비아대학)는 ‘남미의 민중저항과 예술’을 발표했다. 그는 멕시코 카스트전쟁과 동학농민혁명이 닮아있다고 운을 뗐다. 뿌리 깊은 지배계급과 토착민 사이의 불평등. 민중봉기는 여기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는 남미의 투쟁은 하나의 사건으로 정리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양한 형태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투쟁 중에서 그가 꼽은 것은 멕시코를 중심으로 한 벽화운동이다. 1920년대부터 멕시코에서 번성한 벽화운동은 언제든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벽을 민중의 도화지로 삼아 민족 예술과 멕시코 문화의 정체성을 찾고자 한 맹렬한 움직임이었다.
1968년 5월이 준 교훈, 프랑스 68혁명에 대해
영국의 미술평론가 딕비 워드 알담은 ‘유럽의 68혁명과 미술운동’을 발표했다. 1968년 프랑스에서 일어난 68혁명은 권위주의와 보수체제에 강력하게 항거한 사회혁명운동이었다. 샤를 드골(프랑스 제18대 대통령) 정권의 권위주의와 보수체제에 항거한 학생들은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당시 거리에는 혁명의 메시지를 담은 포스터가 가득 찼다. 이들은 국가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을 책이나 인쇄물, 음악과 같은 예술적 통로로 발산했다. 기존의 매체에 맞선 수많은 포스터 속 이들이 담은 메시지는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해방구인 동시에 나이와 성별, 계층에 상관없이 서로가 똘똘 뭉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혁명이 우리에게 남긴 것들
세계 대부분의 혁명은 실패로 돌아갔고 민중미술은 갈수록 사라져간다. 그러나 모든 혁명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비록 세상을 바꾸진 못하더라도 새로운 세상을 기대하고 열망하는 것. 예술을 통해 함께 변화를 그려내는 일. 그것이 스러져간 혁명가들이 꿈꾼 세상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