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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 | 특집 [설날 단상]
떡국 한 그릇씩 먹고 똑같이 한 살 덤으로 얻었다
유수경(2019-02-25 14:52:12)



설날까지 일주일, 시간은 더디고 더뎠다. 내 어린 마음은 설날을 기다리는 간절함으로 달빛이 스며드는 밤에도, 싸락눈이 쌓이는 새벽에도 잠들지 못했다. 밤새 뒤척이며 싸락눈이 바람에 쓸려가는 소리에 놀라 이불을 얼굴까지 뒤집어썼지만 그래도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러다 우주의 무게만큼 무거운 눈꺼풀이 내려앉을 무렵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그렇게 며칠이 흐르고 설날을 하루 앞둔 아침이 왔다. 이제 엄마는 지난 장날 사 오신 설빔 옷을 내어 주실 것이다. 나는 며칠 전부터 안방 장롱문을 하루에도 몇 번씩 열어 보았다. 장롱 서랍 첫째 칸에 가지런히 개켜 있는 자줏빛 윗도리와 두툼한 검은색 바지는 내 것이 틀림없었다. 지난 추석 때 내 차지 옷이 없어서 설날 때 사주 마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엄마는 굳이 내 것이라 말은 안 하셨지만 딱 봐도 내 옷이었다.

우리 집은 딸만 여섯이다. 아들을 원하셨는지 아니면 생명이니 그저 낳으신 건지 하여튼 여섯 자매다. 비좁은 방에서 여섯 자매가 사는 건 참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다들 그렇게 살았던 시절이라 별 불평 없이 성장했다. 하지만 남자 형제가 없다고 위계질서가 없었던 건 아니다. 부모님은 집안일을 돕는 것은 큰 언니와 둘째 언니 몫이라는 무언의 질서를 만들어 놓았다. 셋째부터는 여섯 째까지는 자잘한 심부름을 맡아서 하는 나름의 원칙이 있었다. 특히 설날 음식 준비를 할 때면 엄마와 두 언니는 손발이 척척 맞았다. 그중에서 설날 아침에 먹는 떡국용 떡을 써는 일은 둘째 언니 몫이었는데 어쩜 그리 간격이 일정한지 놀라울 때가 많았다. 그뿐인가! 전을 부칠 때면 엄마는 재료를 썰고, 두 언니는 밀가루와 달걀 물을 준비해 바싹하고 고소한 전을 한 광주리 가득 부쳐냈다. 우리는 그 둘레에 조물조물 둘러앉아 엄마가 부스러기로 떨어지는 전을 하나씩 줄 때마다 참새처럼 입을 벌리고 받아먹었다. 전 부치는 일이 끝나면 엄마는 무나물과 고사리나물 등 없는 살림이지만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들었다. 일 년 열두 달 푸지게 먹이지 못하는 자식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설날만큼은 채워주고 싶었던 것이다. 또 아버지가 장남이 아니어서 제사를 지내지는 않았지만, 설날 아침에 의식처럼 예를 갖추어 상차림을 준비했는데 엄마는 그 상에 놓을 음식들을 밤새 준비하고 새벽으로 또 살피었다.


드디어 설날 아침이 왔다. 나는 간밤에 엄마가 내어 주신 새 옷을 입고 으스대며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딸 여섯이 추석과 설날 순번을 타서 새 옷을 입는 것이니 내겐 대단한 자랑거리였다. 또래 동네 친구들도 코를 훌쩍거리며 새 옷 자랑에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한참을 신이 나서 조잘거리던 우리는 더는 자랑질할 것이 없어지자 각자 집으로 흩어졌다. 그리곤 약속이나 한 듯 다시 모여 세뱃돈을 들고 동네 점방으로 몰려갔다. 세뱃돈이라고 해야 천 원짜리 달랑 한 장이었지만 라면땅 같은 과자 두세 개 정도는 살 수 있었다. 모처럼 입이 호사를 누리고 나면 우리는 닥달나무 팽이를 치고, 논바닥에서 썰매를 탔다. 그마저도 시들면 마을에서 들려오는 농악 소리에 이끌려 너 나 할 것 없이 달려갔다. 그 시절엔 마을 잔칫날이면 풍물을 쳤는데 명절날 치는 풍물은 마을과 가정에 복을 들이고 악귀를 쫓아내는 의식이 베어져 있었다. 우리 부모님도 마을 농악단에서 소고를 쳤는데 그 모습이 낯설기도 했다.


세월이 참 많이 흘렀다. 유년의 기억은 추억과 그리움과 회한이 섞이기 마련이다. 설을 앞둔 요즘엔 더욱 유년의 시간이 끊긴 필름처럼 멈짓 거리며 다녀간다. 아마도 너무 쓸쓸해진 설날 풍경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어른이 된 후에 맞이한 설은 고속도로 정체와 피로, 경제적 약자가 겪는 고통, 여성들의 명절증후군과 같은 갈등이 표면화되었다. 최근 사회적 가치관이 변화면서 차츰 나아지고 있지만, 아직도 명절증후군을 겪는 여성들이 적지 않고 고향을 찾지 못하는 노동자도 많다. 또 한 편에선 연휴 기간에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공황을 가득 메우는 것을 보면 소득 차이로 빚어지는 우리 사회의 단면이 엿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설날은 전 국민이 떡국 한 그릇씩 먹고 똑같이 한 살을 덤으로 얻는 공평함이 있다. 이 맛이라도 있어야 명절이 아니겠는가!


이제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설날 풍경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아가고, 또 옛것을 전승하는 것의 중요성도 잊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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