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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 | 특집 [나만의 시집 쓰기]
행복한 글쓰기,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 되다
이동혁(2018-11-16 13:45:11)



지난 10월 16일 오전 10시, 출근길 정체가 풀린 거리 한편에서 오히려 발걸음을 서두르는 이들이 있었다. 전주, 익산, 정읍 등 전북 각지에서 모인 엄마들이다. 이날은 전라북도교육청이 지원하는 나만의 시집 쓰기 수업의 마지막 교육이 있던 날, 교육장으로 향하는 엄마들의 마음도 평소보다 들떠 있었다.
나이도, 직업도, 사는 곳도 제각각,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이들이 시집 쓰기 수업에 참가하게 된 동기는 뭘까? 반장을 맡아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수업에 참여했던 박진성 씨(52, 익산)는 '목마름' 때문이었다고 답했다. “반복되는 생활을 하다 보면 문학이나 인문학이 참 멀게 느껴질 때가 있다. 평소에는 알아채기 힘들지만,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 내가 지금 목이 마르구나, 하고. 그런 문학에 대한 목마름을 해소하고 싶어서 이번 시집 쓰기 수업에 참가하게 됐다”고 말했다.
조경선 씨(42, 전주)는 조금 다른 이유에서 이번 수업을 신청했다. 둘째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육아 휴직을 한 그는 “항상 생각했던 게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거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동안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게 뭘까 찾아보다가 교육청에서 진행하는 시집 쓰기 수업을 발견하게 됐다”며, “지금 무척 행복하다. 신청하길 잘 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박태건 시인의 강의로 진행된 이번 시집 쓰기 수업에서 엄마들은 한결같이 색다른 시 감상법에 크나큰 위로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 색다른 감상법이란 정답이 없다는 것, 읽는 사람에 따라 시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 이경미 씨(49, 정읍)는 “학창 시절에 배운 시에는 정해진 답이 있고, 짜여진 틀 안에서만 시를 봐야 했다. 하지만 여기서 가르치는 시는 달랐다. 같은 시라도 사람에 따라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고, 다양한 각도에서 시를 볼 수 있다는 것. 그 점이 독특했고 끌리는 맛이 있었다”고 말했다.
정답이 없다는 것은 거꾸로 말하면 모두가 정답이라는 말이다. 상대에 대한 인정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공감은 위로를 낳는다. 정옥자 씨(43, 전주)는 “각자가 받는 느낌이 각각 다르지만, 그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을 듣고 싶어하고, 그 다름이 결국에는 하나가 되는 수업이었다”며, “힘들 때 뭔가 집중할 것을 하나 찾는데, 그럴 수 있는 평생의 친구 하나를 이 시간에 사귄 것 같다”고 말했다.
수업에 참가하며 가족들과의 관계에도 변화가 생겼다. 시집에 넣을 그림을 함께 그린다거나 같이 시를 읽으면서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것이다. 거기에 가족들의 인정과 배려까지 받게 됐다. 송세현 씨(49, 전주)는 “수업에 참가하면서 가족들에게 시를 읽어 주게 됐다. 싫은 내색 하나 없이 시를 들어 주는 가족들의 모습에서 나를 배려하고 인정해 준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서로 더 가족이 된 것 같다. 수업 시간에는 일부러 전화도 피해 주고, 잘 다녀오라 말해 주는 것. 그렇게 지지를 받으면서 더욱 단단한 가족이 된 것 같다”고 전했다.
김민정 씨(39, 전주)는 “아이들이 엄마라는 존재를 달리 보게 된 것 같다. 집에서 빨래하고 밥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엄마도 시를 쓰고 책을 읽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양현미 씨(44, 전주)도 “아이들과 남편을 위해 살다 보면 점점 나를 잃게 되는데, 여기서 내 자신을 찾게 된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수업은 나에게 쉼터였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의 여유를 찾으면 아이들과 남편을 대할 때 더 부드러워진다. 이 수업을 계기로 가족하고 더 가까워진 것 같다”고 전했다.
누군가에게는 배움의 자리,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행복과 위로의 자리였던 나만의 시집 쓰기 수업. 이날 수업을 끝으로 프로그램은 마무리되지만, 엄마들은 다른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 수업에 참가한 엄마들을 중심으로 시 쓰기 동아리를 새로 만들려는 것이다. 박진성 씨는 “이런 배움과 만남의 시간들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동아리 설립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너무나 큰 위로와 치유의 시간들을 경험했기 때문에 여기서 끝내기 아쉽다는 것. 엄마들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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