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8.11 | 특집 [전북도립미술관]
솟아오르는 아시아의 파토스
아시아 지도리 프로젝트
이문수(2018-11-16 12:53:38)



까까머리 중학교 1학년, 그림 그리는 화가의 모습이 멋있어 보여서 미술부에 들어가 붓을 들었다. 그림을 그리는 것 자체가 매혹적이기 때문에 40여 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버렸다. 그 세월을 같이하면서 맺어진 인연들이 얽히고설켜서 놀고(?) 있는 터전이 전북미술판이다. 한 곳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온 탓인지 주변 사람들은 필자를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부른다. 간혹 억울하기도 하지만 그 말이 싫지는 않다. 또 한편으로 반쪽의 진실이기도 하다. 똑 떨어지는 목표를 갖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구름에 달 가듯이 물처럼 바람처럼 흘러온 것이다. 어찌 되었든지 지금은 도립미술관 학예실장 직을 맡고 있다. 눈을 감아도 보이는 판인지라 편안하기도 하지만 건강한 담론보다는 서로 묻어가는 정서가 강하다.


이 판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려 한다. 전북도립미술관의 특성화 전략을 통해 역동적인 아시아 미술의 힘을 주체적인 시각에서 응집하고 환류하는 터전을 잡고자 한다. 그래서 우리끼리 지지고 볶는 상황에서 벗어나, 보자기처럼 묶으면 틀이 되고 펼치면 장이 되는 열린 미술판을 깔고자 한다. 그래야만 건실한 씨앗이 제자리를 잡고 백화제방(百花齊放)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북도립미술관은 「아시아 지도리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다. 이것은  도립미술관 개관 10주년(2014.9)을 맞아 미술관의 중장기 발전 방향과 전북 대표 공립미술관의 역할론을 재점검하면서 전북미술계와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닻을 올렸다.


※'지도리'는 장자(莊子)의 <재물론편>에 나오는 도추(道樞)에서 비롯한다. 쉬운 의미로 문의 여닫이를 원활히 해주는 경칩의 둥근 중심축을 말한다.


아시아는 제국주의 패권에 의해 대부분 식민으로서 근대를 맞이한 아픔을 갖고 있다. 아직도 한국사회의 곳곳에 그 역사의 상처들이 오롯이 남아있다. 하얀 가면의 제국, 우리 안의 사대주의, 서구인의 뒤틀린 오리엔탈리즘, 그로 인해 형성된 옥시덴탈리즘. 그런데도 우리 자신의 미술 언어로 프레임을 만들어 가고자 한다. 프레임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다. 프레임을 짜는 것은 자신의 세계관에 부합하는 언어를 취합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다르게 생각하려면 우선 다르게 말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의 아시아를 드러내고 우리의 미술적 프레임으로 아시아 현대미술을 재발견하고자 한다. 정치적 혼란과 개인의 정체성이 복잡하게 얽힌 아시아를 현대미술로 담고자 한다.


전북도립미술관은 주체적 시각에서 아시아 현대미술을 바라보면서, 기획전시 및 창작스튜디오의 인적교류를 통해 전북과 아시아 간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이는 전북미술가를 아시아에 보내고, 아시아 미술가를 전북에 불러들여 교류와 연대를 강화하면서 폭넓고 다채로운 아시아 현대미술의 다양성과 동시대적 상황을 예술로 규명하기 위한 야심 찬 걸음이다.


「아시아 지도리 프로젝트」는 2015년 <아시아현대미술전>을 시작으로 4년여를 맞고 있다. 그동안 14개국 96명의 국내외 미술가가 전시에 참여했으며, 아시아의 10개 주요 레지던시와 교류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어, 현재까지 14명의 미술가가 서로 왕래했다.


2015년, <아시아현대미술전 2015> 展은 서구침략과 식민지배 등의 유사한 경험을 바탕으로 성장한 아시아의 과거, 현재, 미래를 가늠하고 각 나라가 갖는 지역적 문제들을 제시했다. 2016년, <ASIA YOUNG 36> 展은 청년미술가의 역동적 심장 소리를 들려주면서, 아시아 현대미술의 미래를 조심스럽게 가늠해 볼 수 있었다. 2017년, <아시아 여성미술가들> 展은 자기 규명과 정체성이 배제된 채 타자로서의 여성의 삶을 드러낸 여성미술을 한 자리에 모았다.


올해는 인도네시아 현대미술에 집중했다. <변방의 파토스> 展을 준비하면서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현지의 수많은 작업실을 탐방했으며, 자유도가 높고 생동감이 충만한 미술가의 진솔한 눈빛과 작품들을 마주했다. 그중에서 헤리도노, 나시룬, 은탕 위하르소 등 걸출한 8명을 초대했다. 이들은 혼성적인 족자카르타의 문화적 상황을 진솔하게 녹여냈다.


전북에서는 예술적 만다라를 지향하면서 국제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중희, 사회적 부조리 속에서 파생된 아픈 상처를 들추는 홍선기, 소시민이 간직한 일말의 희망을 실험적인 설치 작품으로 풀어내는 김병철, 공모를 통해 선정한 전북청년 미술가들이 참여했다.


<변방의 파토스> 展(2018. 7. 3~10. 14)은 "우리에게 낯선 인도네시아 현대미술의 역동성을 제대로 담았고, 전북미술과 견고한 연대를 구축했다"는 호평에 힘입어 연장전시를 했다.


한편으로, 중국 북경 예술국제미술관(藝術國際美術館) 초대로 <合, NETWORK> 展(2018. 9. 27~10. 10)을 추진했다. 지난 4월 말, 장동홍(张东红)의 특강과 더불어 한국에서 개최한 <PLUS, 合> 展(2018. 4. 24~29)의 연장선에서 기획한 전시이다. 그때, 우리는 서로 허심탄회하게 질문하고 토론하면서 작품세계를 공유하고 공감하는 값진 시간을 보냈다. <合, NETWORK> 展을 통해 전북도립미술관 창작스튜디오 입주미술가들과 전북 중견 미술가들이 쑹좡(宋庄)을 방문해서 더 강하게 연대할 수 있었다. 그 결과로"전북의 미술가들이 지역의 한계를 뛰어넘어 중국 현대미술의 메카인 북경 쑹좡의 유명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초대전"이라는 미술계의 평가를 받았다.


2019년 7월에는 전북도립미술관 본관 기획전을 개최해서 북경 쑹좡과 전북미술의 품격을 선보일 것이고, 10월에는 인도네시아 "족자 비엔날레"와 "북경쑹좡 국제아트페스티벌"에 전북미술가를 파견할 예정이다.


「아시아 지도리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는 수많은 벽에 부딪혔다. 움직이니까 뭔가에 부딪히고, 그것이 살아 있는 증거라 생각하면서 넘고, 돌고, 더러는 정면으로 뚫어서 해결해 왔다. 참으로 바쁜 날들을 보냈다. 많은 미술가가 힘을 보태면서 이제 작은 결실을 거두고 있다. 전북미술을 새롭게 여미고, 대외적으로 진출해서 드러내는 일이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더불어 같이 걸어야만 한다. 혼자 꾸는 꿈은 꿈에 지나지 않지만, 많은 사람이 더불어 꿈꾸면 그 꿈은 이미 현실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 예술이 아시아를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막상 우리 자신은 그것을 깊게 느끼지 못하고 있다. 아시아는 제국주의 패권에 의해 식민으로서 근대를 맞이한 아픔을 갖고 있으며, 현대화의 과정은 급물살처럼 격동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의 아시아를 스스로 간과하고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어서 낯설게 느끼고 있다.   


전북도립미술관의 아시아에 대한 겨냥은 주제적 시각에서 출발했다. 모더니즘의 종말 이후 서구미술이 갖는 메커니즘에 대한 일방적 추종은 이제 더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이제는 타자에 의한, 혹은 타자로서의 아시아가 아니라 내밀한 자기 언어에 집중하며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전북도립미술관은 명징한 특성화 전략을 통해 주체적인 시각으로 아시아 현대미술을 예술로 규명하면서 환류하는 중심축 역할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