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8.10 | 특집 [전주독서대전]
책을 읽고 쓰는 것이야말로 문화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이다
그 책, 작가를 만나다
이동혁(2018-10-31 12:23:30)



인간이 다른 존재와 구별되는 이유는 지나간 시간을 기록하여 전승하는 데 있다. 누군가 소중하게 기록한 기억은 책으로 남아 세대를 넘어 이어진다. 문명은 문자 그대로 글자로 비추어 온 시간들이 책으로 쌓여 이루어진 기록과 기억의 지층이다. 그런 기록과 기억의 시간을 퍼 올리기 위해 지난해 '대한민국독서대전'을 치른 전주시가 올해에는 자체적으로 '전주독서대전'을 기획, 개최했다. 완판본이라는 기록 출판의 생생한 역사를 간직한 전주에서 펼쳐진 사흘간의 독서 축제. 윤흥길, 은유, 박성우 등 초청 작가들의 강연을 중심으로 제1회 전주독서대전의 면면을 들여다봤다.


책을 사랑하는 이들의 성대한 독서 축제, 2018 전주독서대전이 지난 9월 14일부터 16일까지 전주한벽문화관과 완판본문화관, 향교문화관 일대에서 펼쳐졌다. 전시, 공연, 토론, 세미나 등 140여 개의 다채로운 행사들이 마련된 가운데 초청 작가들의 강연도 독서대전 기간 내내 이어져 눈길을 끌었다.
14일, 초청 작가 강연의 첫 문을 연 것은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윤흥길이었다. 소설가 김소윤과의 대담 형식으로 진행된 강연에서 그는 작가가 되기까지의 과정과 문학인에게 필요한 자질 등을 설명하며 재능을 믿지 말고 노력할 것을 강조했다. 그의 대표작 '장마'와 '완장'에 대한 작품 설명도 이어졌으며, 진정한 권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지지를 받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권력이라 답하기도 했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완장이 오길 바란다”며, ”권력에 짓눌렸을 때 느끼는 좌절, 분노, 억울함, 슬픔 등의 감정을 작품으로 써서 확산시키는 것도 작가의 역할 중 하나”라고 말했다. 대담 중에는 작품 완장를 극으로 꾸민 공연이 펼쳐져 관객들의 몰입을 더하기도 했다.
같은 날 두 번째 강연에는 출판사 편집자, 땡스북스 매니저를 거쳐 지금은 한 사람을 위한 책을 처방하는 '사적인 서점'의 대표 정혜지 작가가 초대됐다. 그는 사적인 서점을 운영하며 쌓은 노하우를 토대로 독서에 흥미를 가질 수 있는 방법들을 소개하며, '나만의 방식으로 소화하기', '좋아하는 사람의 책 읽어 보기', '선입견과 편견 버리기' 등 사적인 독서를 위한 세 가지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에밀리 와프닉 작가의 '모든 것이 되는 법', 은유 작가의 '글쓰기의 최전선', 이현주 작가의 '읽는 삶, 만드는 삶' 등 관객들을 위한 책 처방도 함께 이뤄졌다. 그는 ”독서는 수준이 아니라 취향의 문제”라며, ”책 편식은 나쁜 것이 아니다. 완독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자”고 말하기도 했다.
15일, 진행된 은유 작가의 강연에서는 글쓰기 방법들을 소개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거짓된 자아가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해서 글을 쓴다고 밝힌 작가는 ”자기 생각과 의견을 가진 시민으로 살기 위해서라도 글쓰기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작가란, 존재와 존재를 갈라놓으려는 나쁜 언어에 맞서 존재와 존재를 연결시키는 좋은 언어를 찾는 사람”이라며, 평소 습관적으로 내뱉는 부정적인 언어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언어는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이면서 생각을 형성하는 도구”라는 말을 강연 말미에 남기면서 ”글쓰기는 기술이 아니라 생각의 근력을 기르는 일이다. 때문에 매일 쓰는 일이 중요”하다고 충고하기도 했다.
네 번째 강연에는 '광장의 노래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가'를 펴낸 이영미 작가가 초대됐다. 한국의 대표적인 대중문화평론가이자 그 분야의 독보적인 연구자인 그는 역사가 만들어 온 유행가의 사회성을 광화문 광장을 중심으로 설명했다. 사회가 큰 변화를 맞기 전에는 늘 광화문 광장에서 새로운 노래가 만들어졌다며, 익숙한 대중 가요들 너머에서 진정으로 출렁인 것이 무엇인지를 관객들에게 차분히 전해 주었다.
16일 오전에는 서정 시인이자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동시로 아이들에게까지 사랑받는 박성우 작가가 '아이 마음, 어른 마음'을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강연 시작부터 아이들과 놀기 위해 나왔다고 밝힌 박 작가는 높은 무대에서 내려와 참석한 아이들, 부모와 함께 퀴즈를 진행하며 신나는 놀이판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아이와 어른의 사고방식 차이를 언급하며, ”아이와 어른의 입장, 감정 표현의 차이를 헤아리고 존중,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방황하고 고민하는 아이들에게 ”그늘이 있다는 것은 여러분이 환한 곳에 있다는 증거”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여섯 번째 '먹다'를 주제로 한 강연에는 '인간의 조건'과 '고기로 태어나서'를 쓴 한승태 작가가 초대됐다. 르포르타주 작가인 그는 ”감추어진 곳을 들여다보고 경험해 보아야만 그것에 대해 온전히 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관계자 외 출입금지의 문을 열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확인하고픈 욕망이 르포 작가에게는 있다”고 말했다. 그는 르포 작가로서 열악한 한국 식용 농장 열 곳에서 일한 경험담을 강연에서 자세히 쏟아 놓기도 했다. 그간의 경험들을 거울 삼아 동물 복지 농장과 일반 농장을 비교하면서 ”기존에 열악하게 운영돼 온 일반 농장 시스템을 되돌아볼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찍다'를 주제로 한 마지막 강연에서는 역사학자가 본업이지만, 사진과 정치 비평 등 다양한 대중서 집필에도 몰두하고 있는 이광수 작가가 강연을 펼쳤다. 그의 저서 '카메라는 칼이다'는 이 땅에 숨겨진 사진 고수를 찾아서 한국 사진의 작지만 신선한 열두 바람의 작품을 해석하고 비평한, 현재 한국 사진계의 전문가들을 망라한 책이다. 그는 ”작품이란 눈을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심장을 열어젖히는 것”이라며, 올바른 사진 읽기와 아무런 연줄도 없이 홀로 고독하게 작업하고 있는 작가들을 발굴한 지난 여정을 관객들과 함께 나누었다.


그 밖에도 축제 기간 내내 공연, 학술토론, 기획전시, 독서체험, 독서경연대회, 북마켓 등 140여 개의 책과 관련된 다채롭고 풍성한 프로그램들이 진행됐다. 독서대전 첫날에는 '곁을 주는 일'의 문신 작가와 '전주 느리게 걷기'의 최기우 작가와의 만남이 전주한벽문화관 혼례마당에서 진행됐고, 마을공동체 생활거점 작은도서관 포럼도 향교문화관 강당에서 펼쳐졌다.
독서대전 둘째 날에는 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 한지인형극 '동동동 팥죽할멈', 어린이 독후활동대회, 책 읽는 즐거움을 나누는 독서경영 우수 직장 사례 발표, 전주 이야기를 담은 동화스토리 피칭 대회, 음악과 함께 하는 시낭송 등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행사들이 방문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마지막 16일에는 청년들의 꿈과 경험을 나누는 청년드림스테이지 '오픈마이크', 어린이들이 이야기 솜씨를 뽐내는 제1회 온고을 어린이 동화구연대회 등 특별한 행사와 함께 색깔 있는 작은 공연들로 채워져 책과 함께하는 가을을 무르익게 만들었다.
이번 독서대전에서는 '전주를 그리다'라는 주제로 전주의 콘텐츠가 담긴 문학작품, 집념의 소설가 이정환, 전주의 기록문화를 담은 '책 깎는 소년, 완판본에서 놀다' 등 전주만의 색을 담은 특별전시도 마련돼 눈길을 끌었다. 책을 읽고 쉴 수 있는 향교 내 힐링 공간과 버스킹 공연들도 축제 기간 내내 펼쳐졌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