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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6 | [문화칼럼]
범야권의 혁신과 재편
이중호/전북대교수.정치학 (2004-02-03 15:40:46)
대선 이후의 정치질서 재편과정에서 범야권(제도야당을 포함한 재야 민족민주세력)은 대선실패의 좌절을 딛고 일어서 정세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북 민주화 교수협의회(회장, 고홍석 전북대 교수)가 지난 4월 30일 주최한 ‘범야권의 혁신과 재편’이란 정책토론회는 대선 이후 동요하는 민민세력의 단결과 정치지형의 변화에 따른 민민운동의 진로모색을 위한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라 하겠다. 김영삼 정권 출범 두달 남짓한 동안에 ‘신한국 건설’의 깃발아래 정부는 일련의 개혁조차를 발표하고 부패와 비리 척결이라는 명분하에 사정정국을 주도하고 있고, 제도언론은 여론조사 결과 70퍼센트 이상의 국민이 정부의 개혁조치를 지지하고 있다고 야단들이다. 그러한가? 국가독점자본주의체제에 대한 구조개혁이 전혀 수반되지 않은 언술체계만으로서의 개혁이 신기루처럼 국민들의 환상을 만들어내고 있을 뿐이다. 3당통합에 의한 민자당 정권은 독점자본의 축적위기 극복과 정권 재창출을 위해 보수대연합체제를 구축하였고, 선거라는 절차적 민주주의에 따라 민간정부를 수립했다는 형식적 정당성의 확보에도 불구하고 그 본질적 성격에는 변함이 없다. 정권의 성격은 권력의 획득방식뿐 아니라 지배연합의 계급적 기반, 이념과 정책 등에 의해 결정되는 바 권력획득도 색깔론과 지역 패권주의를 토대로 한 부도덕한 정권의 파행적 승리이고, 소위 신한국이라는 신보수주의 이데올로기나 초법률적 통치행위 혹은 비제도적 일과성조치들로 추진되는 일련의 개혁정책은 수동혁명을 감수하기보다는 문민정부라는 의사헤게모니의 강화와 함께 오히려 민간파쇼화할 가능성이 높은 정권의 본질적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현정권이 추진하는 이러한 위로부터의 개혁의 본질적 한계가 국민대중의 힘을 동력으로 하는 아래로부터의 개혁이라는 민민운동의 과제를 여전히 민족민주세력에게 요구하고 있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제1야당인 민주당의 개혁과 수권가능성문제, 재야 정치조직의 새로운 탐색으로서의 정치적 국민운동체의 구상 그리고 현존 민민운동의 정치적 대표체인 전국연합의 진로문제가 논의의 대상이었다. 제1주제 ‘민주당의 변화-그 가능성과 한계’ (발제:박현채 조선대 교수, 토론:손호철 전남대 교수)는 민주당이 정권교체의 실패와 김대중대표의 정계은퇴 이후 체제정비를 거쳐 과연 여당의 독주를 견제하고 차기의 수권정당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며, 민자당의 사이비 개혁을 대체할 만한 진정한 개혁주도세력이 될 수 있을 것이냐 하는 문제였다. 전당대회에서의 대표경선과 최고 위원 선출에서 보여준 절차적 민주주의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의 체질이 대선 이전보다 오히려 보수화되고, 이기택 대표체제가 강력한 리더쉽을 발휘하지 못함으로써 소계보를 중심으로 한 당권분점체제로 전환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이 제1야당으로서 정치적 주도권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민자당 개혁정책의 모순을 지적하고 이를 치환하는 새 정책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정치기반으로서 민중적 구성을 확보해야 한다. 즉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을 핵으로 하고 신구 중산층과 중소자본을 민중의 외연으로 확보하며 민족자본가로서의 거대독점자본과의 동맹에 의한 민족적 연합세력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정치적 국민운동체의 구상과 전망’ (발제: 김근태 전국민회의 집행위원장, 토론: 이중호 전북대 교수)이란 제2주제는 87년 6월항쟁 이후 대중적 영향력이 저하되어 온 민족민주운동의 진로모색으로서의 정치조직의 건설에 관한 문제였다. 김영삼 정권이 갖고 있는 명백한 한계와 개혁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지배세력 내부의 서열구조의 변화와 의사헤게모니의 지배강화라는 통치형태의 변화가 국민대중에게 상당한 설득력과 포섭력을 발휘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민민운동은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세변화는 기동전에서 진지전으로의 변화와 정치운동과 대중운동의 분화, 그리고 선거를 매개로 하는 제도정치영역에서의 진출을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발제자는 ‘정치적 국민운동체’의 건설을 제안했다. 민민운동진영의 정치적 대표체인 전국연합의 재편강화와 함께, 대중조직의 주요역량과 국민적 대표성을 갖는 재야인사 그리고 진보적 지식인을 비롯한 전문가, 양심적 종교인과 시민 그리고 민주당내 진보블럭까지를 포함하는 조직의 재정비와 정치조직의 건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민민운동이 국민 대중으로부터 신뢰받는 정치적 대안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치활동을 보다 전문적이고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정치조직이 필요하나, 현단계에서 정당으로서는 곤란하고 범국민적 수권정당을 목표로 한 국민운동체여야 한다는 것이다. 범야권의 새로운 모색으로서의 ‘정치적 국민운동체’는 정치조직의 분화 발전과 대중조직의 통일을 지향해 나감으로써 민민운동의 침체국면을 타개해 보려는 의욕에 찬 구상이라 하겠다. 건설 경로와 실현가능성 여부에 대한 토론을 거쳐 결국 조직대한의 모색보다 시급히 확인해야 할 일은 통일전선의 확립이라는 원칙과 이에 대응하는 전술적 유연성이라는데 대체로 합의를 볼 수 있었다. 다만 운동방식의 변화와 관련하여 유의해야 할 점은 이데올로기 투쟁으로서의 진지전 개념 속에 내포된 비타협주의이다. 제도정치영역의 확대 가능성이라는 합법운동의 존립근거와 그 효율성을 인정하면서도 변혁에 필요한 현실적 근거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얻은 변혁의 수단들은 그 속성상 기존의 현실구조와 타협하려 한다는 점이다. 제3주제 ‘민족민주운동의 발전과 정치적 영향력 진다’ (발제: 황인성 전국연합 상임집행위원장, 토론: 허평길 부산대 교수)은 민민운동이 87년 6월 항쟁을 거치면서 대중적 조직운동으로 발전해온 커다란 성과에도 불구하고, 정치역량의 축적이 미흡하고 대중의 생활감각에 용해되는 정책적 내용을 담아내지 못했던 한계점을 인식하고 정치지도력과 대중적 영향력 확대를 위한 전선의 장과 당면과제에 대한 모색이었다. 무엇보다도 분파주의를 극복하고 공동의 투쟁목표를 구체적 정책으로 지도해 내고, 이를 선진대중의 직접적 정치행동으로 조직해내는 것이야말로 정치적 지도력의 구축과 강화를 위한 핵심과제이며 이를 실현해가는 것이 정치지도력의 최고 수준인 ‘정당’ 건설과정의 하나가 되는 것이다. 결국 이론적 정파적 이견에도 불구하고 범야권의 결속과 재편을 통한 통일전선의 구축에 합의하면서, 그 성패는 국민대중의 관심과 참여의 폭에 달려 있으므로 운동 진영의 부단한 자기혁신과 각 지역과 부문의 대중운동의 활성화를 통해 자기기반을 확충하고 이를 토대로 자기정체성을 갖는 정책적 대안세력으로서의 범국민적 수권정당을 지향해나가야 할 것이다. 5월 광주항쟁 진상규명과 6월 항쟁 정신계승을 위한 「민주항쟁기념 국민위원회」의 창립을 보면서 대선패배의 충격과 변화의 와중엣도 민족민주세력이 역사적 주체로서 건재하며 투쟁의 국민적 약화는 단지 설천의 위기일 뿐 주체의 소멸을 뜻하는 것이 결코 아님을, 그리고 이론과 논쟁이 사회적 실천과 운동의 토대로 여전히 복무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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