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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12 | 연재 [신귀백의 영화엿보기]
은마는 오지 않는다.
박현국 자유기고가(2004-01-29 17:01:35)

인간은 정해진 운명을 사는가 아니면 운명을 개척하면서 사는가 하는 문제는 인생관이나 세계관에 관련되는 중요한 문제이다. 인간은 어떤 형태로든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 특히 인간이 전쟁에 휩쓰릴 때는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예는 게오르규의 「25시」라는 작품에 잘 나타나 있다. 주인공은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가족과 헤어져 전쟁에 휩쓸리고 전범 재판에까지 회부된다. 그리고 자신의 아내 역시 다른 피의 아이를 갖게 된다. 어쩌면 “은마는 오지 않는다” 작품은 한국판 25시라고 불릴만 하다.
이 은마는 오지 않는다는 제목은 강원도 춘천부근의 어느 마을을 중심으로 옛날부터 전해오는 이야기에서 따온 말이다. 이 마을은 앞으로 북한강이 굽어 흐르고 뒤로는 장군봉이라고 하는 산이 가려져 있다. 그런데 예로부터 나라와 마을에 변란이 생기면 장군봉 기슭 어느곳엔가 숨겨져 있는 굴속에서 은마를 타고 나타나는 장군이 있어서 변고를 평정시킬 것이라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그래서 이 마을의 아이들은 항상 장군봉 자락을 오르내리면서 그 굴을 찾아다니곤 한다. 그런데 누구도 그 굴을 찾았다는 사람은 없었다.
영화는 이 평화롭던 마을에 미군이 들어오고 그것을 기화로 하여 벌어지는 일이 중심으로 진행된다. 주인공 ‘언례’는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미군 병사 두 명에 의해서 강간을 당하고 마을 사람들의 냉대를 받는다. 그러면 연례에게 피해를 입은 미군은 누구이고 그들은 왜 이 고요한 마을에 들어왔는가? 그것은 전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면 전쟁은 왜, 누구에 의해서 시작됐는가? 역사적인 맥락에서 우리가 못나서 일제의 침략을 받게 되고, 36년간의 압박도 부족해서 남북으로 분단된다. 왜, 우리가 분단 당해야 하는가? 우리 민족은 타의에 의한 국제 정치 놀음의 희생으로 분단의 비운을 당하게 된다. 정작 진주만을 공격하여 2차 세계대전의 불을 당긴 일본이 그 전쟁의 책임을 지고 분단을 당하건 비극을 맞이하건 해야 되는데도 불구하고 아무 죄도 없는 우리가 다만 힘이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분단의 비극을 맞게 된다. 그리고 그것도 부족해서 동족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쌈박질을 하고, 그 댓가로 양코뱅이까지 불러들여 이 땅과 언례를 유린시키고 만다. 이렇게 유린 당한 언례는 누구인가. 그년는 우리와 한핏줄을 나눈 우리의 동족이고 우리의 형제이고 누이이고 어머니이고 할머니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 사람들은 언례를 불결하게 생각하고 죄인 취급하여 경원시 한다. 우리가 못나서 일어난 전쟁이고 우리가 불러들인 양코뱅이에 의해서 우리의 누나요, 동족인 언례가 강간 당한 것이다. 그런데도 그 죄를 언례에게만 뒤집어 씌우고 그녀에게 욕하고, 언례의 아들만식이만 따돌린다. 우리는 간혹 일을 하거나 놀 때에 실수로 몸에 상처를 입는다. 그러면 상처가 아물 때까지 약을 바르거나 밥을 먹으면 상처가 낫는다. 그 뒤 상처의 흔적만 남을 뿐이지 더 이상 상채기에 연연해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에 연연해 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그것에 연연해 할 필요도 없다. 만약 상처가 심하면 성형수술을 하면 그만이다. 여자가 당한 강간의 상처도 그렇게 이해하면 쉽게 잊혀질 수도 있고 아물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여자의 그 상처에 대해서만은 전혀 그러한 아량이나 여유가 없다. 특히 언례는 자신의 의지가 전혀 개입될 여지가 없었으며 원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강제로 이뤄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일로 말미암아 언례는 완전히 마을 사람들과 결별되어 물과 기름처럼 겉돌게 된다. 요즈음도 이러한 상황을 악용하여 강도짓을 하고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부녀자를 강간하여 가족들이 고개르 f들고 신고조차 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를 가끔 본다. 이러한 점과 관련시켜 볼때에 언례의 아픔은 그녀만의 것이 아니고 오늘 우리 모두의 것이 되어 의식의 전환이 이루어져 하리라고 본다. 물론 언례네 동네는 그 동안 병자, 임진 등의 양난 때에도 지형적인 이유로 전혀 외지인들이 들어오지 못했었고 언례가 겪었던 일 역시 처음 생긴 일이라고는 하지만 처음이라고 해서 한 인간의 아픔을 끝까지 외면해 버릴 수 없는 일이리라.
비록 6.25라고 하는 역사적인 사건속에서 언례에게만 일어났던 일회적인 일이지만 그 일로 말미암아 언례는 끝내 미군을 위한 위안부로 전락하고 드디어는 미군들을 마을에 불러들이게 되고 급기야는 마을 아이들 역시 전쟁의 희생양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다시 전황이 불리하여 1․4후퇴를 하게 되어 군인은 먼저 떠나고 그 뒤를 이어 마을 사람들도 피난을 떠난다. 이때에 언례는 그래도 그간 그녀를 키워 준 정 때문인지 마을 훈장의 며느리에게 달러 몇장을 쥐어주면서 피난길에는 이것이 필요하리라고 한다.
결국 은마는 더 이상 오지 않고, 언례 역시 눈보라 속에서 피난행렬에 끼어 피난을 떠난다. 언례와 마을 사람들은 다시 그 행렬 속에서야 비로소 하나가 된다. 어쩌면 상처받은 언례는 숱한 외침속에서도 굿굿하게 한민족을 지켜온 우리의 얼을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상처받은 언례는 내 누나요, 내 아내로 받아들여 그의 상처를 내 아픔으로 아파하지 않는 한 눈보라 속의 피난 행렬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은마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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