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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12 | 칼럼·시평 [문화시평]
소슬바람같은 신선함제 1회 민족문학강좌를 듣고
황숙 전주어린이글쓰기 연구회원(2004-01-29 16:58:30)

일반 문예대중에게 우리 문학의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함으로써 민족문학의 지위와 역할을 높이고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전북민족문학인 협의회에서 주최한 제 1기 민족문학강좌가 알토란같은 열매를 거두고 조용히 막을 내렸다.
10월 어느 날, 팔달로변 어느 서점 유리문엘 걸린 행사 포스터는 지나던 발길을 부여잡고, 스치는 초가을 산들 바람처럼 청량감을 안겨줬다.
아! 이것이다.
‘민족’과 ‘문학’의 합성어인 민족문학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작품들에 대해 체계가 잡히지 않았던 나에게 잘 짜여진 여덟 강좌의 강의제목은 주최측 민․문․협 간사의 詩만큼이나 야무지고 지적욕구를 충족시켜주기에 흡족한 내용임을 시사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민족문학의 개념에 대한 기초강연에서부터 역사적 흐름과 작품세계, 민족문학논쟁의 성과와 반성 및 앞으로의 진로뿐 아니라 시․소설 창작법까지 실토하게 하는 프로그램은 마지막날의 문학기행과 더불어 잘 차려입은 한복의 차림새 마냥이나 맵시있고 고왔다.
강의 장소는 온다라 미술관.
그림과 갖가지 문화행사안내 속에 파묻힌 문학강좌는 다소 의자가 불편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만추의 서정을 만끽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민족문학이란 무엇인가>라고 이름하여 민족문학의 새로운 모색을 위한 현기영(소설가)님의 첫 강좌는 사회학적인 안목에서 우리 시대를 진단하는 것으로써 애매모호함 속에서 유전되고 있는 우리들의 위상을 자리매김 할 수 있는 설득력있는 내용이었다. 먼저 문학의 역할을 잠들어 있는 민중을 향해 적의 위협을 일깨우고 출현을 알리기 위해 경종을 난타하는 파숫꾼에 비유한 후 유신이후 민족문학은 공동체의 바숫꾼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왔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6월 항쟁 후 전리품으로 얻은 정치적 금기의 해제는 윤리적 금기마저 풀어헤쳐서 활자&#8228;영상매체를 통해 폭력&#8228;섹스물이 범람하고, 더불어 시장개방으로 인해 경제적 금기마저 풀려 외제품이 홍수처럼 밀려오고 과소비로 상징되는 천박한 소비&#8228;향락적 문화가 페스트균처럼 만연되어 대중의 의식을 사로잡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는 성경 구절처럼 질풍노도와도 같은 80년대 우리가 처한 국내외적 상황을 정확하게 해석, 경계해야할 것들에 대해 새로운 각오와 결단의 계기를 만들어준 강의였다. 그리고 현기영님은 모든 가치&#8228;사물을 경박한 소비상품으로 만들어버리는 가공할 풍조 속에서 정의&#8228;도덕 등의 인간의 이상주의적 속성을 극대화시켜 건강하고 정교한 불후의 명작을 생산하는 것이 민족문학의 과제라고 앞으로의 지표를 설정했다.
<이 땅에서 좋은 시인이 되는 길>이란 주제로 시와 변혁운동에 대해서 논한 김남주 시인은 특유의 컬컬한 목소리로 “시인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몸담고 있는 사회적 현실과 시대의 중요한 문제에 대해 등을 돌린 채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라고 못박고 변혁운동에 필요한 과학적 지식으로 무장한 시인은 두 발을 현실에 확고하게 내딛고 서서 자기 시대의 중대한 문제를 바르게 설정하고 해결하는 변혁운동에 조직적이고 대중적으로 참가함으로써 시의 내용을 보다 풍부하고 다양하게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청중과의 대화 시간에는 더욱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질의&#8228;응답을 통해 김시인의 인간적인 체취를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 지금까지의 민족문학 계열의 작가와 작품상황은 어떠한가.
평소 독서의 부족함에 주눅이 들어 있는 필자의 치부가 여지없이 폭로되는 이 강좌에서는 그러나 ‘앞으로’라는 유예기간을 기대하며 많은 숙제를 안은 시간이기도 했다.
<민족문학의 역사적 흐름과 작품세계>에 대해 논한 평론가 박대호님은 민족문학이 고유의 의미를 갖기 시작한 것은 4&#8228;19가 민족의 주체성을 환기시켜 준 결과로써 구체적으로 백낙청님의 “민족문학론”으로 나타난다고 규정하고 그에 의하면 「민족문학은 반 민족적 위협에 대처하여 주체적 생존과 인간적 발전을 지햐하는 문학」이라고 소개했다.
작가로서는 소설의 김정한, 황석영, 윤홍길, 송기숙, 조세희 등이 보여준 민중적 삶의 모습과 김수영, 신동엽, 고은, 김지하, 이성부, 신경림, 문병란, 정희성, 김창환, 정호승의 시에서 확인 할 수 있는 민중 지향성은 60&#8228;70년대의 민족문학의 귀중한 성과물이라고 평했다.
창작의 실제를 공개한 시인 김용택님과 소설가 김영현님은 자기 고백적인 내용을 생동감있고 친숙한 언어로 참석자들을 매료시켰다.
자신의 문학수업은 곧 인생수업이었다고 털어놓은 김용택님은 시인이 되기 전에 먼저 바른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노라고 말했다.
소설 창작법을 강의한 김영현님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의롭지 못한 세상에 사는 불행이 삶을 옥죄는 가장 큰 굴레였다고 고백했다.
그는 소설의 소재를, 희미하게 알고 있는 것, 알다가도 금새 잊어버리는 것 별다른 의미가 주어지지 않은 채, 우리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것들에서 찾으며 질서를 부여하고 분명하게 해두는 것이 자기 소설의 내용이라고 말했다. 그의 소설에 운동성과 일상성의 괴리, 결말의 작위적인 처리가 많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정서적 여유가 있는 소설적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억지로 보일지라도 서정적 숨통을 만들어 준다고 답변했다.
-이것도 그의 개인적인 성벽에서 기인함-그는 좋은 글들, 좋은 작품을 읽어나가는 작업을 통해 천박한 일상성의 세계로 추락하려는 범용한 의식을 붙잡아두려고 노력한다고 함으로써 작가에 있어서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문학 평론가 김만수님은 “김영현에 있어서 가장 가까운 세계는 민족민주운동이며 가장 밝은 세계로 채색하고 있는 세계는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보여진다”고 평하여 김영현님의 진면목을 그려주고 있다.
그러면 창작주체자의 입장에서 대중적 요구를 주체로 한 민족문학 논쟁의 현황과 전망은 어떠한가.
평론가 김형수님은 1980년대까지의 민족문학 논쟁은 대중적 요구를 기초로 하지 못함으로 인해, 민중문예운동의 전망과는 전혀 연결이 안되었다고 평가했다.
마지막 강좌로 <90년대 민족문학이 나아갈 길>에 대한 평론가 강형철님의 견해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겠다.
<…민족의 대다수 성원을 이루는 민중의 삶과 생활을 반영하되 그 역사적 전망에서 형상화하는 적극적인 문학운동인 민족문학 운동의 창작원리인 리얼리즘은 기왕 문학적 형상화에 유용한 모든 방법론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라는 것을 확인하며, 변화&#8228;발전하는 민족&#8228;민중의 삶의 현실에 조응하여 민족의 미래, 나아가 인류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바로 그러한 삶의 구체적인 현실을 실감나게 체현하는 형상을 창조하는 일이야말로 민족문학이 민족문학으로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일감이다>… 라고 강좌를 마감했다.
일정한 주제 아래 깊이 있고 전문적인 강사의 의도에 비해 사전지식이나 수강준비가 부족했던 청중들과의 벽이 다소 두터웠던 점이 없지 않았으나 그러한 서먹함은 마지막 날의 문학기행으로 사그라들 수 있었다.
가을 걷이가 끝난 호남평야를 달리며 한정된 장소에서의 경직된 분위기를 털어버리고 일행이 찾아간 여산의 가람선생 생가는 국문학사적인 그 분의 위치와는 걸맞지 않고 초라하고 쓸쓸했다.
안채, 사랑채, 행랑채 등으로 된 본 채의 뒤켠은 대숲으로 눈이 닿는 곳마다 둥그런 사들, 텃 논과, 인가 속에 파묻힌 정겨운 곳이었다. 사랑채를 포함, □형에 가까운 집인데 사랑채 밖에 장방형의 연못이 있었다. 사랑채에 守?齊, 柯南이라는 현판이 걸려있고 모정은 더 형편없이 퇴락하여 풍상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형세를 하고 있었다.
말이 도지정 지방문화재 6호이지 퇴락을 막는 것도 아니고 인위적인 채색 등으로 원형을 파괴하는 것도 아닌 완전한 방치상태라는 것이 옳은 표현이겠다. 「애국지사의 집」이라고 박힌 팻말이 히죽이 웃고 있다.
이러고도 현대시조의 개척자요, 저 재산을 털어 고전문학 작품을 발굴하여 빛을 보게 한 국문학자요. 저 치욕적인 친일문학 시절에도 붓을 더럽히지 않은 애국지사의 집이라고 내세울 수 있다니……
그러나 더욱 안타까운 일은, 그 분의 문학작품을 구하려고 시내의 ㅎ, ㅁ 서점 등에 들렀을 때조차 단 한 권의 문집을 구할 수 없었음이다.
교과서적인 찬양은 이미 남용했고 후학으로서 문학애호가로서 불과 몇 십 년 전에 우리와 함께 살았던 그 분의 작품집 한 점이라도 마련하는 것이 우리들의 할 최소한의 일이라고 사료된다.
2주가 넘는 기간동안 행사를 치루느라 노심초사한 주최측에 감사하며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수강자 중심의 문학모임이 만들어 대학내의 문학 동아리들과 연예활동을 했으면 하는 바램과 앞으로 2, 3…기 강좌를 꼭 마련하는 사회 평생교육의 차원으로 끌어 올렸으면 하는 것이다.
끝으로 한마디.
여성 특히 주부 수강자들을 위해 주최측과 집안의 가장들은 시간에 있어서 과감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으면 하는 강권적인 요청이다.
사회와 가정에서 2중의 제약을 받는 주부군단(?)들이 민족과 문학과 책을 생각하고 가까이 할 때 그야말로 풍요가 강물같이 흐르는 우리네 삶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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