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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12 | 칼럼·시평 [문화시평]
새로운 형식과 내용 탐험에의 아쉬움제 10회 전라북도 대학 연극제를 보고
김정수 연극평론가(2004-01-29 16:58:00)


흔히 대학극의 기능을 이야기할 때 교육적인 측면과 예술적인 측면, 크게 둘로 나누는 것이 보통이다. 대학내의 문화의식 고취와 함께 집단적 연행예술 창작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협동심과 실제적인 제작 능력 배양이 전자라면 후자는 그 결과물로서의 신선하고 발랄한 그들의 문화가 자체의 예술적 완성도를 얻고 또 기성극에 가할 수 있는 각종 실험적 자극들을 말한다.
그러나 이 두가지 측면은 늘 평행선으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며, 그러기에 어느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상반된 의견들이 다양하게 쏟아지는 것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나 ‘대학극이 기성극을 모방한다’라던가, ‘대학극이 지금까지는 기성극을 선도해 왔는데 이제는 자극을 주지 못한다’등의 시각들은 대학극에 대한 애정에도 불구하고 대학극을 과소평가하거나 과대평가함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전제하에서 그들의 역량을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는 자체가 오류일 수 있다. 겉으로 들어난 예술적 기량, 즉 기성연극을 바라보는 안목으로 평가할 위험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품의 외형적인 평가를 벗어나 문화 일반의 상황과 결부된 평가와 전망은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지난 11월 17일부터 20일까지 제 10회 전라북도 대학연극제가 전북 예술회관 대극장에서 열렸다. 1979년 전라북도 대학연극 협희회가 발족하면서 제 1회 연극제를 치른 후 정치적 상황으로 80년, 81년을 쉬고도 10회 째라면 이제는 상당한 연륜을 쌓은 셈이며, 행사 자체로도 큰 의의를 부여받을 만한 것이었다. 예년과는 달리 예선을 통한 경선제를 도입한 기획이 특이했지만 이 문제는 뒤에서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고 먼저 작품들을 살펴보겠다.
전주대학교 『볏단』은 정복근 作의 <실비명>을 공연했다. <실비명>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어머니와 딸의 갈등, 운동을 팔아 자신으 l사회적 출세를 지향하는 지식인과 노동운동에서 희생당한 노동자의 갈등과 번민이 줄기를 이루고 있는 작품이다.
평소 창작극 위주의 공연을 선호해 왔던 전북대하교『기린』은 러시아 혁명에 상당한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진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의 초기작품 막심고리끼 作 <밑바닥에서>를 공연했고, 군산대학교의『마당』은 주인석 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를 통해 집단창작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빠르고 직접적인 사회풍자의 한마당을 보여주었으며, 전주교육대학교의 『이랑』은 윌리암 써머셋 모옴의 <비>를 무대에 올려 현대 사회에 팽배해져 있는 도덕적 위선과 타락의 본성들을 내면적 갈등과 심리적 변화를 통해 우회적으로 보여주었다.
각 작품에는 대학 극단들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힘들여 연습하고 땀흘려 제작한 흔적들이 보여 관극 하는 즐거움을 주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관심을 많이 쏟고 세련되기 까지한 무대나 조명등에 비해 연출력과 연기력이 뒤떨어져 주제를 이해하는 데 힘들게 했고, 산만한 구성, 틀에 박힌 연기들은 관객의 집중력을 떨어지게 했다는 평들이 많았다. 물론 연출이나 연기의 부족은 어찌 보면 대학극의 당연한 모습으로 부끄럽게 생각할 부분도 아니며 그로 인해 비판받아야 할 성질의 것도 아니다.
문제는 다른 각도에서 제기될 수 있다. 대학 연극협의회의 방향성을 알리는 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새로운 내용에 맞지 않는 낡은 형식은 파괴되어야 하며, 새로운 내용에 맞는 새로운 형식을 재창조해야 한다.’
옳은 이야기며 대학인다운 의욕과 패기를 엿보이게 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번 연극제 에서 만큼은 그다지 새로운 내용도, 재창조된 새로운 형식도, 낡은 형식을 파괴하려는 다소의 기미도 엿보이지 않았다.
출품된 작품들은 번역극 2편, 국내극 2편으로 그 중 2편은 리얼리즘 계열의 작품이고 2편은 서사적 기법의 작품들이었지만 형식의 실험은 둘째치고 기성의 이론이나 틀마저도 소담스럽게 소화해내지 못한 안타까움이 바로 그것이다. 브레히트든 스타니스라프스키든 철저한 이해 위에서 만이 그의 극복이 가능할 것이며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의욕을 토대로 능력과 상황에 맞는 작품을 선정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극복해야 할 문제를 보다 구체적으로 검토해보면 첫째로는 작품의 주제를 결정하는 희곡작품 선정에 있어서 보다 신중해야 할 것이라는 점을 들고 싶다. 이것은 대학극 내에서도 작품 선정이 의미 있는 작업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고, 이번과 같은 사회에 발표하는 계기를 통해 대학극을 느끼고 싶은 관객들을 위해서라도 그렇다. 대학의 고뇌와 의식을 보다 확실하게 드러내 보여주기 위해 기성 작품에 조금 뒤떨어진다 하더라도 가급적 자체 창작작품을 지향했으면 한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스스로 해낸다는 점에서 기성의 답습보다 오히려 월등한 감동을 수반할 수도 있으며, 본격적이고 체계적인 실험의 기초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둘째로는, 하나의 제안에 해당되는 것이지만 번역극의 선택도 다변화하자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상업적인 구조로 서양의 유명작가나 이미 공연에 성공한 유명 작품을 올려야 하는 기성극단의 입장과는 달리 관객을 상업적으로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대학내에서라도 제 3세계연극들을 독자적으로 번역해 공연해보는 것도 좋을 성 싶다. 현대연극이 언제까지나 서구의 것만은 아니라는 의식의 전환과 함께 대학이 해야 할 또 다른 임무에 충실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검토해 볼 만하다.
셋째, 장르에 대한 고민을 보다 충실히 하자는 것이다. 대학극이 전통의 계승과 현실의 수용이라는 측면에서 기성극계에 큰 충격을 주었던 마당극운동과 그 형태를 대학극이 연극에 끼친 좋은 영향의 하나로 간주하는데 주저할 사람은 없을 줄 안다. 물론 그것은 대학연극반의 독자적인 노력만은 아니었고 대학내의 다른 연행예술패와 함께 전체적인 문하예술운동 양상이 상승적으로 작용해 만들어 낸 결과물이었기는 하지만 이러한 성과는 기존의 장르에 함몰되지 않고 다양하고 생산적인 수용을 과감히 해냈다는 점에서 발전적으로 유지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보다 철저한 고민, 즉 극예술 전반에 관한 끊임없는 회의와 방향모색, 이론적 토대 육성과 과감한 시도가 뒤따라야만 가능해진다. 그 길이 바로 명실상부한 새로운 내용과 새로운 형식의 탐험이 될 것이며, 대학극의 양면을 의미 있게 구축하는 길이 될 것이다.
끝으로 평가의 기준이 모호한 경연대회의 형식을 탈피하고 참여할 수 있는 모든 대학이 참여하는 축제의 형식을 지향했으면 한다. 또 연극제 참가 대학의 공연 정도에 만족하지 않고 연극제 기간동안 관련 세미나 개최나 자료전시, 워크 샵, 관객과의 토론 시간 등을 마련하는 등의 방법들을 모색해 보자는 것이다. 이것은 상당한 시간과 재정적 뒷받침이 따라야 가능해 질 것이지만 10년의 연륜을 감안하고, 대학의 교육과 사회적 기여라는 측면을 고려할 때 가능한 부분부터 추진해 나가는 열의가 있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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