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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11 | [사람과사람]
삶의 노래, 희망의 노래 - 노래패 「선언」
윤희숙․문화저널 기자 (2004-01-29 16:08:13)
“노래도 무기가 될 수 있다.” 시나 소설 같이 글을 무기고 삼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래도 대중을 변화시키고 노래도 대중을 변화시키고 선동할 수 있는 무한함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정서에 바탕을 두지 않은, 일부 계층의 향유물에 불과한 서양음악과 대중의 사고를 한 방향으로만 이끄는 한결같은 대중가요에 반기를 들고 우리 것. 우리의 정서가 담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때가 70년대 후반이다. 미국내에서 전쟁에 반대하는 저항운동에 참여하는 가수들의 통기타 음악가 가스펠송의 정서를 바탕으로 한 김민기의 운동가요 노래 작업과 국악을 바탕으로 한 김영동의 작업들이 이 땅에서 노래운동사의 첫 장을 장식하게 된다. 전북지역에서는 민족예술연구소 <온고을> 산하 노래패「녹두꽃」이 1978년 활동을 시작하면서 사회노래패의 첫 발을 내딛게 된다. 80년대 중반이후 활기를 띠던 민주화운동의 열기와 함께 대학내에서 활발한 노래운동을 주도했던 대학노래패 출신들이 학교를 졸업하면서 89년 노래패 「소리모둠」을 조직해냈다. 90년 3월 창립공연으로 ‘친구에게’라는 노래극을 무대에 올린 이후 「소리모둠」은 「하나될 노래」라는 새로운 노래패와 나뉘어져 각각 서로의 활동영역을 넓혀 나갔다. 학내 초청노래공연과 운동현장에서 문화선전대의 역할을 해내면서 「소리모둠」은 민족음악강좌를 꾸려내, 대중들에게 민족음악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히는 작업들을 해냈고, 「하나될 노래」는 일반대중들과 만나는 ‘하나될 노래마당’을 매월 기획하여 함께 부르는 노래 마당을 펼쳤고 또한 소식지를 발간하여 대중들에게 민중가요의 본질을 알리는 기초작업을 해왔다. 91년 12월 31일 전북연합이 주관하는 송년한마당 행사에서 이 두 노래패는 뜻을 합하여 함께 활동하자는 의지를 굳게 다졌고, 통합 준비과정을 거쳐 그 다음해인 92년 2월 「선언」이라는 이름을 걸고 삶의 노래, 희망의 노래를 불러 이 지역 노래문화의 알찬 밑거름이 될 것임을 약속했다. 노래패 「선언」의 활동방향은 크게 두줄기로 가늠해 볼 수 있다. 그 첫째는 진실된 삶이 배어있고 생활과 동떨어지지 않은 건강한 노래를 대중들에게 보급하는 것이고, 둘째는 노래도 변혁의 무기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 역할수행에 충실하는 것이다. 먼저 민중음악을 대중들과 친숙하게 하기 위해서는 대중들과의 만남을 자주 가져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가지고 그들이 수행할 수 있는 일들은 음악강좌 개설, 정기적인 노래교실 운영, 콘서트 형식의 소극장 공연, 대규모 정기공연, 다른 단체의 행사에 찬조출연 하는 것 같은 형식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노래의 운동적 기능을 발휘하기 위한 작업은 전북민족문화예술운동협의회나, 민족음악협의회의 가입단체로 그들과 연대 활동을 하고, 집회내에서 문화선전대의 역할을 해내고 문화공연등을 꾸려내는 것이 될 것이다. 「선언」의 거의 모든 활동은 이 두가지 방향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활동방향을 정하는 문제보다 중요한 문제는 이런 활동을 수행해낼 수 있는 음악의 전문성을 먼저 확보해내는 것이다. 전문성 획득이라는 문제를 놓고 바라본다면, 「선언」이 안고 있는 문제는 적지 않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대부분의 문화예술운동 단체들이 겪는 문제는 전문가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활동영역이 극히 좁으며 결국 이런 열악함 때문에 노하우를 축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선언」에서 활동하는 인자들을 보더라도 전체 열명의 회원중에 여덟명이 직장인이고 나머지 두명이 학생이기 때문에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의식을 갖기가 힘들다. 닭과 계란 중 어느 것이 먼저인가를 가리는 문제처럼 문화예술운동에 전업적으로 뛰어들지 못하는 이유가 생계를 보장해주지 못하는 여건 때문인지 아니면 활동가들이 전업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생계를 보장해줄 만큼의 경제성을 갖지 못하는 것인지는 여러 가지 꼬집을 수 없는 조건들이 감추어져 있어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어려움을 완전히 극복하기는 힘이 들지만 「선언」은 그들 나름대로 최선의 방법으로 모임을 이끌고 있다. 한 주에 세 번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다. 월요일에는 밀린 일을 처리하고 목요일에는 순전히 노래연습에만 몰두한다. 그리고 금요일에는 노래에 대한 연구 분석은 물론 투철한 의식과 올바른 정세 판단을 위한 학습훈련을 실시한다. 재교육체계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자기 발전은 스스로의 노력으로만 가능하다. 누가 챙겨주지 않는 밥을 찾아서 먹고 그것을 거름삼아 새로운 결실을 거두기 위한 그들의 엄청난 노력은 아주 작은 구멍을 통해 조금씩 밖에 보여지지 않으니 그들의 어려움은 더욱 클 것이다. 노래패 「선언」이 10월 3일 창작소극장에서 공연한 <참 세상의 햇살로>는 몇가지 점에서 주목받는 무대였다. 「선언」에서 만든 창작곡과 요즘에 발표된 작품들이 선보인 이번 공연은 부드러우면서도 당찬 「선언」의 모습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공연이었다. 기타와 베이스 기타, 오베이션, 드럼, 신서싸이저 등의 전자악기와 국악기 북과 대금으로 짜여진 반주는 노래를 하는 가수와 관객들을 황홀하게 해주었다. 하지만 국악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여 처음 의도했던 정서전달에는 실패 했다는게 스스로의 평가이다. 노래 부분은 풍부한 화음이 이루어지지 않은 점, 집중적인 연습부족으로 호흡이 맞지 않은 점, 무대 매너와 구성상의 어색함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그렇지만 이번 공연은 대중과 가장 가깝게 만날 수 있는 발판이 되었고, 찬조 초청공연에서 벗어나 「선언」의 이름으로 자체 공연을 올렸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이제 전북협 창립공연과 송년 한마당을 올 행사로 남겨둔 「선언」은 다음해 3월에서 5월 사이에 동학농민혁명 관련 공연을 무대에 올려볼 작정이다. 이 지역에서 그들 나름대로의 특성을 갖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하다. 음악은 음악이어야 한다. 음악을 매개로 한 어떠한 문화행위도 음악적 기능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가 없다. 풍부한 음악적 감성을 갖추지 않은 채 어설프게 대중과 만난다면 그들은 곧바로 대중들에게 외면당할 것이다. 굳이 서양음악에 기초된 민중가요의 정해진 틀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고 필요하다면 우리의 전통악기를 시대 감각에 맞도록 적절하게 활용하거나 떠들썩한 전자악기라 해도 과감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경제적인 사정과 인자 재창출 문제로 극복하지 못하고 매번 새로운 옷을 갈아입거나 아예 옷을 벗어야만 하는 노래패들의 한계가, 살아남은 노래패 「선언」에 의해 극복될 것임을 굳게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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