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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7 | 연재 [세대횡단 문화읽기]
침구의 시 그 지난한 몸짓-제 3회 「한국마임페스티벌」을 꾸미고
권오표 완산고 교사(2004-01-29 14:26:10)

우연한 기회에 문화쪽에 관계되는 일을 하고 있는 분들과 자리를 같이한 중에 판토마임 애기가 나왔는데 대뜸 그 중 한 분이 추송옹을 꺼내면서 ‘빨간 파이터의 고백’ 까지를 장황하게 들고 나왔다. 그런데 누구도 그분의 애기에 의문으 던지는 이가 없는 데는 실소할 수도 없었다. 판토마임(무언극)과 모노드러머(일언극)를 구별 못하는 우리의 현주소를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그만큼 다양한 예술장르를 접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있는 궁색한 지역적 현실이 안타가워서다. 지난해 12월 ‘열린마당 아사달’에서 기획 주관하여 이 지역에는 처음으로 유진구의 판토마임을 선보였다. 그 해 여름에 기린로 변에 소극장을 겸한 찾집으로 문을 열고서 그 기념으로 도내 극단에 의뢰하여 까페 연극의 새로운 장을 연다는 그 기념으로 도내 극단에 의뢰하여 까페 연극의 새로운 장을 연다는 제법 거창한(?)기대로 40여회의 적지 않은 공연을 벌였으나, 관객들의 애정 어린 호응과는 달리 여러 제약된 여건을 절감해야 했다. 그래서 이 공간이 갖는 개성을 살리면서 걸맞는 한 분양를 새롭게 추구하고자 판토마임 공연을 시도했다. 워크샵까지 겸한 초연에 기대이상의 놀라운 반응이 왔다. 공연 1시간 전부터 의자를 들어 낸 채 옹색한 바닥에 쪼그려 안ㄹ고 혹은 서서 주시하는 관객의 진지한 시선에서, 그들이 원하는 바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어 금년 3월에 다시 최규호를 초청하였다. 역시 열띤 호흥과 목마름으로 자리를 매웠다. 그래, 이거다. 이 한 부분만 이라도 좀더 확실히 해두자. 그리하여 춘천에 이어 최초의 외로운 - 그러나 외롭지 않은 지방 나들이가 되었다 ‘제3회 한국마임 페스트벌’ 전주 공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현대적 의미의 판토마임은 프랑스 마르셀 마르소에 의해 비로소 정립되었다. 이는 침묵 속에서 진실의 실체가 무엇인가를 육체 동작을 통해 극명하게 보여주는 연속극의 한 독특한 장르이다. 그러므로 마임이스트들은 눈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은 세계의 흐름을 치열한 육체 훈련과 창조적 작업을 통해 예술적으로 완성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우리들 의식, 무의식 속에 내재된 삶의 본질을 어떤 물체나 현상을 처음 대했을 때의 충격과 감동으로 재음미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므로 판토마임은 시다. 6월8일과 9일 3회에 걸쳐 전북 예술회관 대극장에서 펼쳐진「제3회 한국마임 페스티벌」은 7일 전야제 행사랄 수 있는 우리의 길놀이 형식인「마임거리」(전북대학교, 코아광장)을 선보임으로써 시작되오T다. 이 거리마임은 최규호가 이끄는 인천 돌체 소극장에 소속된 극단「마임」에 의해 이루어졌다. 전통적인 삐에로의 분장으러 관객들의 참여를 통해 틈을 좁혀나가며 판토마임에 좀 더 친숙하게 접하도록 하기 위한 연회로써 외발자전거 타기, 접시돌리기, 풍선놀이 등, 조선시대상당패들의 연희를 서구적 형태로 재구성 하여 보여준 것이라 하겠다. 국내에 활동하고 있는 한국 마임협회에 소속된 마임이스트는 모두 8인이다. 그나마 이 협회에도 90년 말에야 결성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잊지 않는다. 89년 국립극장 무대대관이 마임이 순수예술이 아니라는 이유로 돌연 취소되었던 쓰라린 기역을. 판토마임 페스티벌은 경연대회가 아니다. 아니 경연대회이기를 거부한다. 한 줌 밖에 안되는 이들이 서로를 견준다는 걸 어쪄면 부질없는 일로 여기는지 모른다. 그러므로 이들에 있어 페스티벌은 축제의 한마당이자 서로를 준엄하게 꾸짓는 성찰의 기회인 것이다. 지난 한 해동안 각자 정열을 쏟아 만든 작품중에서 애정어린 작품을 가려 뽑아 선보이는 것이다. 첫 공연이 벌어지는 같은 시간에 관통로에서 화염병과 최루가스가 바람에 실려와 공욘장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불이 꺼지고 텅빈 무대 위 조명 아래에서 「가을여자」박상숙의 지나온 삶의 비애가 자작의 나레이션을 배경으로 여성 마임미스트만이 갖는 특유의 섬세한 놀림을 통해 객석을 휘감으며 판을 벌여 나갔다. 이들은 각자 독특한 자기 세계를 추구하면서 문제제기를 통해 현재를 확인한다. 이들에게 있어 첫째과제는 무대공연을 통한 문화대중의 인식 확산이다. 판토마임에 대해 무성영화시대 챨리 체플린의 넌센스 코미디 정도로만 인식되는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 보다 다양한 세계를 넉넉하게 보여주고자 하는 흔적들이 이번 공연 곳곳에서 엿보였다. 유진구의 「밤의기행」에서 표출되고 있는 생명의 본질에 대한 끝없는 회의와 질문은 지난날 「머리카락」「건만증」「회사원」등에서 보여 온 덫에 걸린 현대인에 대한 연민의 근저에서 맴돌던 사실주의적 표현기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실험성과 면모를 보여 줌으로써 마임이 한갓 관객들의 찰나적인 여흥에만 머무는 것을 거부하며 한층 연륜의 무게를 더해가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또한 퍼포먼스(행위예술)에서 돌아와 마임과 접점에 서 있는 심철종의 「내가 만약 새라면...」에서 보여주는 세계는 그가 아직은 퍼포먼스에 대한 동경과 탈각의 과제를 안고 서성이고 있음을 엿보게 한다. 유진구의 뒤를 이어 한국마임의 후발세대임을 자임하며 왕성한 의욕을 보이고 있는 유흥영과 임도완은 이번 공연에서 가장 주목 박은 연기자중 하나였다. 단단하고 섬세한 시교와 치밀한 구성으로 마임만이 갖는 상상력을 십분살려 정면돌파를 시도하는 유홍용의 「비」나 임도완의 「흥부와 놀부」에서 우리의 고전 속에 무르익은 해악과 풍자를 재구성하여 극적 긴장과 아울러 대중적 정서와 접목시키고자 한임도완의 노력은 “우리마임”의 가능성과 앞으로의 방향을 가늠래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한 마당으로 기역 되리라 본다. 한국 마임의 역사는 짧다. 그만큼 그 지평은 무한히 넓다. 그러나 그 지평은 마임이스트들의 끈임없는 무대공연을 통한 관객확보와 예술성 제고라는 이중구조 속에서만이 열려질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최규호의 일관된 「광대」놀이는 눈물겹기까지 하다. 그것은 어쪄면 한국 마임의 대중성확보를 위한 첨병으로서의 자기 희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날 비속을 달려온 2000여 관객은 이 어릿광대의 웃음 뒤에 숨은짙은 우수를 놓칠만큼 아둔하진 않았다.
마임회보 창간호에서 유진구에게 왜 마임을 하느냐는 물음에 그는 내가 하지 않으면 마임이 사라지기 때문에 라고 대답 했다. 가시 마임이 사라지면 어떻게 되느냐는 물음에 ‘그러면 한국은 마임이 없는 나라가 된다’ 고 대답했던 걸 기억한다. 그것은 어쪄면 스스로 소외의 길을 걷는 자의 안타가운 미덕일지 모른다. 판토마임의 내일은 결코 어둡지 않다. 다시 92년의무대를 기다려 보자. 그들은 어떤 변모된 모습으로 이 커다란 무대 위 조명아래 말없이 홀로서서 당신을 기다릴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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