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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5 | [저널초점]
대권주자들의 편갈라먹기
윤덕향․발행인 (2004-01-29 13:42:10)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자동차의 급격한 증가로 전주에서도 심심찮게 길이 막히곤 한다. 덕분에 거리, 시간 병산제가 도입되었음에도 택시 기사들의 짜증은 날로 심해지고 러시아워에 효자동쪽으로 가자는 말은 온갖 아부의 눈길로 뜸을 들인 다음에야 기어들듯 입에서 낼 수 있는 지경이다. 아침저녁으로 겪는 교통 혼잡을 덜기 위한 방안중 승용차 10부제 운행이 있는데 별로 큰 성과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10부제 운행은 에너지도 절약하고 교통의 혼잡도 덜고 따위를 명분으로 하고 있음에도 성과가 별로 없는 것은 권장사항인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이같은 교통혼잡이 승용차를 몰고 다니며 10부제 운행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야기된 것인가? 집이 없어도 차를 장만한 것을 그들의 허영심과 자기 과시 개인주의적인 속물 근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몰아칠 수가 있는가 따져볼 일이다. 예측할 수 없는 각종 위험을 감수하면서 운전하는 것보다 택시를 타고, 버스를 타는 것이 마음 편하며 경제적으로도 훨씬 절약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찌어찌 차를 운전할 수 밖에 없는 적잖은 사람들을 이기적이고 허영에 들뜬 부류로 몰아칠 수가 있는가? 때 이르게 샴페인을 터트리도록 부추기고 국가 백년 대계를 위하여 각종 국민의 권리를 유보한 사람들은 지금 10부제에 동참하고 있는가? 각종 차량의 증가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차량이 증가함에 따라 교통이 막히고 그러니 차를 구입하고 그래서 더욱 차가 막히니 너도나도 차를 몰 수 밖에 없는 것이 오늘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택시를 타려니 소위 ‘따불’ 또는 ‘따따불’을 외쳐야하고 조금만 불편한 곳으로 가려해도 기사의 안색을 살펴야만 하는 판에 누구라서 차를 사지 않겠는가 말이다. 속된 말로 ‘조리장수 체계빚을 내서라도’차를 살판이다. 입만 열면 국민을 위하고 국가와 민족의 번영을 외치는 분들은 사회간접시설로써 도로망의 확충을 얼마나 챙겼으며 국가 백년대계가 아니라 당장 요 10년앞도 바라보지 못한 안목으로 지금의 교통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차량의 증가를 서민들에게서 이유를 찾기 전에 아기를 안은 부인을 데리고 조금 큰 놈의 손을 잡고 택시를 잡아보라. 그리고 삼천동이나 효자동 어디쯤 가자고 당당하고 큰 목소리로 말한 다음 기사의 눈 부아림을 참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난 다음에야 주제넘게 차를 구입한 사람들을 비난할 수 가 있다. 두손들 수밖에 없는 지금, 도로 교통문제가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이 알아서 해결하도록 방치하려는 것이나 아닌지 의심쩍다. 10부제로도 교통문제가 해결될 것으로는 보이지 않으니 그 다음에는 홀짝수운행을 권장하고 그리고도 안되면 매사 문제가 있는 것은 안하고 못하게 되는 것이라는 발상으로 자가용 전면 운행 중지로 이어지는 것이나 아닌지 걱정이다. 정책부재와 단견으로 인한 이런저런 문제의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기는 것은 비단 교통문제만은 아니다. 각종 금융부조리로 인한 책임은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해결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최근 있었던 총선에서만 해도 그렇다. 집권여당을 비난하거나 야당은 편드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눈앞의 밥그릇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느낌이다. 선거 과정에서의 여러 가지 일들-군에서의 부재자 투표부정, 안기부직원의 흑색선전물 살포, 한맥회사건등- 그 전후 사정과 내막을 이심전심으로 알고 짐작하는 바였으니 그걸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그같은 일 쯤이야 관권의 개입이나 행정 선심과 마찬가지로 집권여당이 누려야되는 기득권으로 치부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같은 일련의 사건들이 어떻게 처리될 것인지도 이를 다루는 관계 당국자들의 수법을 이미 경험한 바가 있어 TV연속극처럼 그 결말을 뻔히 알 수 있는 것이니 이를 가지고 번거롭게 흠을 잡고 시비를 걸 필요도 없다. 근본적인 문제는 자신들의 말마따나 참패를 한 다음에 있다. 왜 참패를 했는가를 도무지 반성하려 하지 않는다. 돈이 없어서, 권력기관의 비호를 받지 못해서, 조직이 열세하여 진 것이 아니다. 인물이 야당에 비하여 모자라서 진 것도 아니다. 장차관을 지낸 화려한 경력의 인물들을 거의 독점적으로 내세우고도 진 것이다. 국민들의 의식성향이 진보일 변도로 변한 탓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진보세력의 유수한 대표자들이 의회에 진출하지 못한 것에서, 소위 운동권 출신 후보들이 자신들의 과거의 이미지를 탈색시키려 하였다는 점에서 분명한 것이다. 이유는 한가지 밖에 없다. 나라 살림을 잘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총선 패배는 앞으로 잘 좀 하라는 국민들의 질책이며, 그같은 질책에 대하여 입에 발린 말만으로 겸허히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당연히 잘못된 것을 고치려는 시늉이라도 하고 잘못에 대한 반성을 하는 것이 입만 열면 국민의 대표, 공복을 자처하는 무리들의 자세이다. 그럼에도 아무도 그 책임을 지지 않았고 아무 것도 반성하지 않는다. 하늘이라는 국민의 의사를 수렴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하늘 아래서 딴 판을 벌려 하늘의 눈길을 옮기려 한다. 언필칭 국민을 위한다는 정부 여당이 총성 참패후에 한 일은 외형상 두가지 밖에 없다. 하나가 소위 대권노름이고 다른 하나가 현대그룹과의 추잡한 싸움질이다. 대권놀음을 노름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는 심정을 그들은 전혀 모른다. 국민들이 소위 대권을 누가 가지는가에 대해서 비상한 관심을 가질 것으로 생각하고, 아니 그럴 것으로 상정하고 그 추악한 노름판을 벌임으로써 자신의 잘못을 가리려한다. 벌거벗은 여자를 내세우는 황색잡지보다도 더 저질스러운 노름판 수법이다. 고스톱판에서도 잘못 고를 부른 책임을 지게 되어있는데 이는 그보다도 더한 수법이다. 고를 불렀다가 잘못바가지를 쓸 것 같으니까 맘에 맞는 사람을 불러 따로 판을 차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같은 면피작전은 언론의 대대적인 지원으로 확실하게 자리잡고 모든 국민들은 그들의 대권 다툼을 위한 전초전에 눈과 귀를 온통 기울이고 있는 것처럼 선전되고 있다. 총선 후 잠깐 동안 집권여당의 참패에 따른 원인과 그에 따른 시정방안이 언론에서 취급되었을 뿐 집권여당의 차기 대권주자를 결정하는 것이 엄청나게 중요한 것으로 우리에게 아침저녁으로 강조되고 있다. 언론들은 그 노름판에 곁들여서 아침 저녁 국민의 눈과 귀를 혹사하고 그러면서도 정작 소위 ‘대권주자’들의 정치적인 경륜이나 정치 철학, 또는 그 흔한 스캔들조차 전해주지 않는다. 현대그룹과 정부와의 갈등은 현대그룹의 배후에 있는 국민당과의 갈등이다. 현대그룹의 각종 비리가 긍정적이고 그들이 도덕적으로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또 애매하게 남들도 다같은 잘못을 저질렀는데 왜 우리만 당하느냐는 식의 대응도 설득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정부의 대응으로 국민당은 탄압을 받고, 그 대표는 용기와 소신을 가진 투사로 부상되고 있다. 특정인을 부각시키기 위한 고도의 정략이 숨어있는 것이 아니라면, 작금 있었던 현대그룹에 대한 정부의 각종 대응은 총선참패에 따른 분풀이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 일개 재벌그룹을 상대로 이런 저런 갈등을 보일 때인가? 그럴 만큼 우리의 경제사정이 여유가 있는가? 당국자들의 말대로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하느냐, 후진국으로 전락하느냐하는 시기에 말이다. 그런 한편으로 우리 경제를 살리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노동자들에게 총액임금제를 강요하고 애꿎은 공무원들에게는 내년도 봉급동경을 요구하고 있다. 벌써 대권을 위한 싸움은 시작되었다. 대권이라는 것이 우리의 생활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라면 우리의 보편적 정서와 합치되는 수준에서 결정되고 선택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난 몇차례 경험한 바와 같이 우리의 의지와는 달리, 좀더 정확히 말하면 적극적 지지에 의한 선택이 아니라 소극적 부정에 기인한 선택이어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선택을 할 수 있는 기준이나 여건이 주어지지 않았고 소위 ‘대권주자’ 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숨긴채 증오스러운 지역감정을 부추겨 또다시 편갈라먹기를 획책하려한다. 진실을 밝힌다는 언론은 인물개개의 정견, 철학, 인물됨을 전하지 않고 그저 주어지는 기사거리를 나열하고 앵무새처럼 되뇌이기에 여념이 없을 뿐이다. 두손 들 수 밖에 없는 교통체증보다 더한 정치의 정체가 있을 뿐이다. 언제까지 이럴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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