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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5 | [문화저널]
새 버선을 신겨서 맹자를 읽히랴
김두경․서예가 (2004-01-29 13:38:57)
옛날 어떤 마을에 만석꾼 부자가 아들 둘을 두었는데 작은 아들은 천성이 고요함을 좋아하여 학문에 정진하였으나, 큰아들은 공부보다는 농사일 거들기와 봉노에서 잡담하고 놀기, 산으로 들로 쏘다니며 사냥하고 고기잡기를 더 좋아하다 보니 장성해서 집안의 대소사와 농사일 관리 및 자질구레한 잡심부름 따위를 일꾼들과 더불어 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자신은 모내기와 물품기 등 농사일로 정신 없이 바쁜데 동생은 좋은 한산세모시 옷을 입고 정자에 앉아 글을 읽고 낮잠도 자고 한가하게 노니는 꼬락서니에 배알이 뒤틀린데다가, 좋은 보약과 좋은 반찬도 힘은 하나도 안들이고 놀기만 하는 동생에게 으레 돌아가고, 뼈빠지게 일하는 자기에게는 특별히 보약한점 없는지라 어느 날 아버지께 이를 강력히 항의했다. "오늘부터 농사일 안하고 새 옷입고 시원한 그늘에 앉아 공부를 하겠습니다"라고…… 부자 아버지는 큰아들이 늦게나마 철이 들어서 공부를 하겠다니 대단히 기뻐하며, 당장 최고급 옷감으로 옷을 짓고 개인교사를 모셔오고 야단 법석 끝에 옷을 단정히 입고 시원한 정자에 앉은 큰아들이 천자문을 배우는데 오금은 저려오고, 북두를 쓴 머리는 지끈지끈, 한산 모시 바지저고리는 부석부석, 무명버선은 꽉꽉 조여오고 사지는 나른하고 졸음은 정신없이 몰려오는데…… 첫날은 그래도 기를 쓰고 버텼지만 이틀 삼일이 되니 죽을 것만 같고 견딜 수가 없는지라 다시 헌옷을 갈아입고 뛰쳐나와 소를 몰고 들판으로 나갔으며 이때부터 소가 말을 듣지 않고 한눈을 팔면 하는 일이 "예끼 이놈의 소 새버선을 신겨서 맹자를 읽히랴"하며 나무랬단다. 새 버선을 신고 천자문을 읽어도 죽을 맛인데 더 어려운 맹자를 읽으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그렇다. 사람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렇게 동적(動的)으로 살던 사람이 정적(靜的)으로 살기는 쉽지 않다. 마이클 잭슨과 블랙 타이거, 뉴키즈 온더 블록에 먼저 길들여진 사람은 브라암스나 모짜르트, 베에토벤을 듣고 감동 받기는 상당시간의 노력을 거쳐야하고 더우기 우리의 국악, 그 중에서도 정악을 듣고 감동하기에는 인고의 노력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로 정악에 감동할 줄 알고 브라암스나 모짜르트에 감동할 줄 아는 사람이 어느 날 친구들과 어울려 마이클 잭슨이나 뉴키즈 그룹의 노래를 들으며 춤을 추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1970년대 아니 80년대 초까지도 초․중․고등학교 야유회때면 학생들은 대중가요를 부르려 했고 선생닝들은 의레 애써 말리려 했다. 단순한 학교 방침이기도 하였겠지만 뭔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가장 들뜨게 하고 열광시키는 것이 음악인 까닭에 청소년 시절 열광과 광란의 음악을 먼저 배우기보다는 고요히 자기를 바라보며 자기 발산보다는 자기 수렴을 먼저 배울 수 있는 음악을 들어야 됨을 알게 모르게 전해져왔고 전하려 했던 것 아닐까 ? 헌데 요즈음은 국민학교 야유회에서조차 TV에서 본 가수의 몸짓과 무용수들의 현란한 몸짓 흉내냄을 경쟁하듯 부추기고, 심지어 며칠 전부터 교실에서 선생님 지도 하에 연습을 한다하니 이 나라의 앞날이 심히 걱정스럽다면 고루한 사람의 기우일까? 새버선 신고 맹자는 어려울지라도 천자문만 읽을 수 있어도 세상이 좀 더 밝아질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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