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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5 | [문화저널]
사랑의 화신, 우리 어머니와 <농>
이운용․시인(2004-01-29 13:36:04)

 

지금 나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어머니를 생각한다. 경건하고 조심스러운 시간이다. 그 시간은 어머니의 거룩한 사랑과 어머니의 지난날을 다시 만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아내가 시집을 때 들여 온 호마이카 농은 구식 가구라서 어머니와 아이들 전용으로 사용해 왔다. 그러나 수년 전에 그 호마이카농은 아예 없애버리고 새 농을 들여 놓았다. 어머니와 함께 말없는 대화를 나누었던 그 호마이카농에 애착이 가고 아까웠지만, 아내의 뜻대로 불태워 버렸던 것이다. 아이들이 다 크기 전까지는 어머니는 아이들과 함께 한 방에 기거하셨다. 온 세상이 깊이 잠들어 있는 밤, 불이 켜진 어머니 방문을 열고 들여다보면, 거기 그호마이카 농 앞에 쭈그리고 앉아 이것저것 옷가지들을 방바닥에 꺼내 놓고 계신 어머니를 목격하게 된다. 이런 일은 한두 번이 아니고 종종 있었다. 처음에는 잃어버린 물건을 어디에 간직해 두었는지 몰라서, 또는 옷을 갈아입으시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려니 하고 생각했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초저녁에 한숨 주무시고 나면 잠을 못 이루는 어머니의 밤은 온갖 추억과 회한에 잠기는 시간이었으니, 매일매일의 밤시간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지루하셨겠는가. 어린 손자들은 철없이 뛰어 놀다가 제풀에 지펴 깊은 잠에 빠지고, 자식은 자식대로 자기 방에 파묻혀 있으니, 대화상대가 없는 어머니의 일상은 심심할 정도가 아니라 소외된 고독감을 어떻게 감당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호마이카 농만은 언제나 어머니 곁에 있었고, 농 속에는 지난날의 눈물과 웃음, 그 모든 실재(實在)가 차곡차곡 개켜져 들어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것저것 모두 꺼내 보시고는 거기서 고희를 넘긴 황혼기의 당신의 체취와 회노애락 그 전부를 다시 만나시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시는 어머니의 눈빛과 마주쳤을 메, 그때 나는 보았다. 어머니의 계면쩍은 미소 안에 숨어있는 외롭고 쓸쓸한 인생의 적막을, 그리고 인생의 말년에 드리워진 짙은 고독의 그늘을. 기름기 없이 깡마른 주름살의 얼굴, 좁은 어깨, 숱이 적은 횐 머리카락, 이모든 것은 분명히 옛날의 우리어머니의 모습이 아니다. 아 그 고요한 밤, 농 속의 옷가지들을 꺼내 놓고 어머니는 무엇을 생각하셨을까. 1982년, 나는 이러한 어머니를 보면서 (농)이라는 시 한 편을 얻게 된 것이다. 방문을 열었을 때 어머니는 혼자 농문 앞에 쭈그려 앉아 농 속을 뒤적뒤적하고 계셨다. 이따금 심심할 때 외로울 때면 혼자 농문을 열어놓고 70년의 눈물을 이것저것 꺼내보시고 다시 눈물을 닦아 좀약 싸서 개어 넣으시는 어머니 아버지는 안 계시고 자식 며느리는 딴방을 차리고 있고 손자 손녀는 제멋대로 뛰놀다 잠드니 그 누구와 이야기할꼬? 오직 농 하나만은 말할 것이다. 철커덕 철커덕 들려오는 베틀소리 삐그덕 쿵 삐그덕 쿵 졸음을 찧는 방앗소리 새벽밥 짓는 나무 타는 소리 콩밭에 배어 있는 땀냄새 호미끝에 부딪치는 먹먹한 불꽃 어느 것 버릴 수 없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오직 농 하나만은 지킬 것이다. 웃음보다 울음이 많았던 너무도 울음이 많았던 어머니의 일생이 차곡차곡 개켜져 있는 농 초저녁에 한숨 주무시고 나면 잠이 없어 부스스 일어나 앉으시고 한밤내 옷을 꺼냈다 넣었다 날이 새는 긴 겨울밤 오늘도 어머니 방엔 불이 켜져 있으니 어머니는 혼자 농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 삼베옷 무명옷을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고 골백번 한숨에 날이 새려는가. 어머니의 농 속에는 어머니의 인생이 들어 있다. 괴로웠던 일, 슬펐던 일, 아름다운 자화상이나 작은 보람까지도 모든 것이 소중하게 간직되어 있다. 전답 몇 마지기의 농사꾼, 2남 2녀의 어머니, 무학, 초가 삼간, 일제 핍박, 6․25동족 상쟁, 이런 외적 환경과 역사의 질곡과 신상의 문제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삶의 고뇌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 이는 너무나 피상적이고 단편적인 설명이다. 어찌 몇 마디로 어머니의 인생을 이렇다 말할 수 있으랴. 지금은 여든 둘의 고령이지만 허리가 전혀 굽지 않고 건강하셔서, 이곳 저곳 아들딸네 집을 휠훨 날아다니신다. '모성애'라는 단어로 어머니의 사랑을 대신하기에는 죄송스러운 느낌이 있다. 이보다 더 확실하고 절실하고 거룩한 사랑, 원천적이고․궁극적인 힘, 존재의 총화, 아니 질량의 무게와 크기와 한계를 초월한 원소, 그 불변의 법칙성, 무조건의 헌신과 희생과 살신, 삶의 의미와 가치의 전부이며 전체, 절대 사랑, 사랑의 본질 그 자체, 이러한 언어 나열로 우리 어머니의 사랑의 전부, 전모를 요약했다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 우리 어머니를 아는 사람들은 안다. 나의 서투른 글이 결코 과장됐거나 실없는 언어 유희가 아니라는 것을. 이 세상 어머니, 그 모든 어머니는 위대하다. 그러나 어머니, 우리 어머니는 위대하지 않으나 거짓이 없고 미움을 모르고 꾸밈이 없으시다. 자식을 위한 일이면 아까운 것, 두려운 것, 못할 일이 없으시다. 무덤을 파헤치는 일이 무섭지 않고, 천리 걸음이 멀지 않으시다. 고등학교 졸업 때까진 한달이 멀다 하고 학교를 방문하셨다. 교문 밖에 우리 어머니 모습이 보이면 동급생들이 먼저 알고 모시고 들어오는 것이다. 어머니가 이고 오신 봇짐 속에는 담임선생님께 드릴 담배 두서너 갑, 때론 교무실의 전교 선생님이나 친구들 몫으로 빚어오신 달떡이 들어 있다. 심지어는 대학에 다닐 때도 그러셨다. 어머니의 달떡을 맛보지 못한 친구는 거의 없다해도 지나친 속단이 아닐 것이다. 나는 인절미보다 이 달떡을 좋아했다. 전북대 이희권 박사는 그의 이름보다 '떡 잘 먹는 친구'라고 말해야 어머니와 잘 통했다. 나의 학비는 전적으로 어머니의 행상으로 조달되었다. 무거운 그릇을 이고 고을마다 찾아다니셨고, 메리야스나 모시를 이고 장사를 다니셨던 것이다. 어머니의 모진 고생과 남모르는 설움과 세월의 무상함을 어찌 <농>의 형상화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어머니의 순수사랑을 또 욕되게 하는 것 같아 죄송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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