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1992.3 | 연재 [문화저널]
김두경의 옛말사랑엽전에 구멍 뚫린 줄 모르는 놈 엽전으로 망한다
김두경 서예가(2004-01-29 11:45:43)

지금은 동전에 구멍이 뚫려 있지 않지만 옛날 엽전에 구멍이 뚫려 있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고 왜 구멍을 뚫어 놓았을까를 생각한다면 몇 가지 이유를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한복에는 호주머니는 많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있다 하더라도 동전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옷 맵씨를 잃게 될테니 구멍에 끈을 꿰어 허리춤에 매는 휴대의 편리성이 첫째일 것이요, 구멍을 뚫은 만큼 무게가 가벼워질 수 있었을테니 이것이 둘째요, 금속이 부족하던 시절에 구멍만큼 금속을 줄일 수 있었으니 그 셋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1920년대 30년대에 휴대의 편리성도 무게의 부담도 현대의 그것과 다를바 없었던 시절에도 조그맣게라도 구멍을 뚫어 놓았으니 이것을 앞에서 말한 세가지에 대한 단순한 관행의 퇴보현상으로만 보아야 할 것인지 아니면 본래에 부여했던 철학적 의미를 잃어버리고 모방현상으로 구멍을 뚫어 놓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더욱이 나 자신이 화폐사를 전문으로 연구해 보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기본적이 자료 조사도 해보지 않았고 전문가에서 이에 관한 이야기를 한마디 들은 일 없으니 감히 뭐라고 단정지어 말 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엽전에 구멍 뚫린 줄 모르는 놈 엽전으로 망한다”나 또는 “엽전에 구멍 있는 줄 모르는 놈 엽전에 깔려 죽는다”라는 짧은 속담 한마디가 풍겨주는 의미는 어떤 속 깊은 의미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판소리 흥부가 중에서 돈타령을 들어 보면 “이 돈을 눈에 대고 보면 삼강 오륜이 다 보여도 조금 있다가 떼고 보면 보이는게 돈밖에는 또 있느냐”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돈을 눈에 대고 보면’이라는 말은 돈을 『통하여』즉 돈을 수단으로 하여 인륜을 실현 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지만 실제 구멍이 없는 돈을 눈에 대고 볼 때와 구멍이 있는 돈을 눈에 대고 볼 때의 차이점은 단순한 현상계의 보임과 막힘으로 끝나지 않고 돈 너머의 세계, 돈이상의 세계를 볼 수 있음과 없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돈이 만들어진 이래 돈은 기본적으로 생명 활동을 유지하는 수단이기도 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인륜을 실현하고 인간의 이상을 실현하는 하나의 수단으로서 절대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특히 돈으로 대변할 수 있는 물질의 가치가 정신의 가치를 완전히 압도하고 있는 요즈음에는 돈을 통한 인륜이나 인간의 이상적 정신세계의 실현이 아니라 물질을 위한 물질의 세계가 되어 버린 것은 물질을 대변하는 돈 너머의 세계를 못보는 돈이 전부인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돈에 구멍을 뚫어 잃어버린 정신을 일깨움은 어렵다 할지라도 이 속담 한마디 잊지 말고 살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