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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3 | 연재 [문화와사람]
창작극회- 가치있는 전통의 계승 -
문화저널(2004-01-29 11:42:54)

‘창작극회’가 「창작소극장」을 개관하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출범했다.
기존 ‘창작극회(1961~1983)는 60․70년대의 눈돌릴 짬없이 몰아치던, 경제발전 위주의 사회분위기 속에서 매년 평균 세편정도의 공연을 해냈다. 이 점은 경제성장의 거친 숨소리만 그득하던 시절이 이 지역, 나아가서 나라 전체의 문화행위들의 전반적인 위축을 돌이켜 볼 때,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20여년 동안 공연된 60여회의 작품들은 거의 대부분이 국내 희곡을 무대화한 것이었고, 더욱이 그중 상당수가 직접 창작해서 공연한 순수 창작희곡이었다. 그 작품들은 일관되게 사실주의적 경향을 지향하고 있었다. 연극사적으로 보아 이시기는 서구의 현대 연극사조가 무차별로 유입되는 때였으므로 얼핏보아 고루하고 보수적이라는 지적을 받았을 것이나, 지금의 상황에 비추어 생각해보면, 부조리극이니, 反연극이니 하던 전위적인 사조들에 노출되지 않은 것이 퍽 다행스럽게 생각되기도 한다.
이러한 기존 ‘창작극회’의 업적을 고스란히 짐으로 떠안고 새로이 출범한 창작극회(1983. 6. 재창단)는 옛 창작극회의 예술적 입장에 동의하고 그를 계승하는 것을 기쁘고 영광스런 일로 여긴다. 이 짐을 제대로 감당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옛 ‘창작극회’의 의의와 가치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냉철하게 비판, 반성하는 일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기존 ‘창작극회’의 공연작품들이 사실주의적 경향을 보였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그 동안의 작품들을 모두 모아서 그 대체적인 주제를 정리해 보면, 사회․역사에 대한 관심과 인간성 본연의 참모습을 회복하려는 염원이 나란히 담겨있는 경우가 가장 많다. 그러나, 이런 주제들은 대부분 관념적인 상태에서 머물러 있으면서 현실성의 충분한 뒷받침을 얻지 못함으로써 문명비판의 수준에 그치는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희곡으로서의 이러한 약점에 지방극단으로서의 열악한 창작여건까지 겹쳐 무대예술로의 형상화 과정 또한 초라한 상태였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런 한계와 약점, 그리고 가치있는 전통에 대한 충분하 이해를 전제로 한 ‘창작극회’는 사실주의의 외길을 걸어온 선배들의 연극관을 계승하며, 나아가 진정한 의미의 사실주의 연극을 추구하여, 현실을 올바로 보고, 더 나은 현실로 바꿔가기 위한 여러 방법들에 대해 편견없이 열린 자세를 가지고자 한다.
또한, 창작희곡의 전통을 회복 계승시키기 위해, 전속 작가를 육성․발굴하고, 단원들의 연구와 토론을 통한 공동창작의 방법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사업들의 지속적인 성과를 위해 필수적인 것이 바로 공연장의 확보와 운영이다. 창작소극장(전주시 경원동 아리랑제과 사거리에 위치, 1990. 12. 개관)은 그런 점에서 매우 뜻있는 공간이다. 소극장은 공연을 통한 대중과의 의사소통, 그리고 단원들의 기량 연마 및 실험적인 매체 개발등에 유효하다.
연극의 시대는 갔다. 아니 더욱 비관적으로, 문화 예술의 시대는 갔다고도 하고, 한 해를 뚝 잘라서 ‘연극의 해’라고 선포하기도 한다. 동시에 문예운동의 당파성에 대한 열띤 논란도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이 시점에서 창작극회는 새 발을 딛는다.
창작극회는 현실의 물을 떠나 예술적 허영심에 목말라 하는 잘못을 피해 갈 것이며, 도식화되고 상투적인 전형화에도 맹종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지방극단’이라는 이름의 문화적 변두리 개념에 주저앉기를 거부한다. 모든 예술은 특히 연극은 ‘지금 여기에’(hear and now)자리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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