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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4 | 연재 [보는영화 읽는영화]
질투를 넘어 애도를 위한 연대로 | 사랑 후의 두 여자
김경태 영화평론가(2022-04-11 13:26:24)


질투를 넘어 애도를 위한 연대로

김경태 영화평론가



표면적으로 봤을 , <사랑 후의 여자> 불륜을 다룬 드라마이다. 영국의 도버에 사는 중년의 여성메리(조안나 스캔런)’ 파키스탄인 남편아메드 결혼하기 위해 이슬람교로 개종을 했다. 그만큼 진심으로 남편을 사랑했고, 남편도 같은 마음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녀는 남편의 급작스러운 죽음 후에도 무슬림으로서의 일상을 흐트러짐 없이 영위해 간다. 그리고 항해사였던 아메드가 귀항할 남긴 다정한 음성 메시지를 들으며 그리움을 달랜다. 그녀의 사랑은 대상이 사라진 후에도 어김없이 지속되고 있다. 그러던 어느 , 남편의 지갑을 꺼내어 정리하다가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녀는 절망감에 몸서리를 친다. 남편이 사랑한쥬느(나탈리 리샤르)’ 만나기 위해 프랑스의 칼레로 무작정 향한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속속들이 안다고 자신하곤 한다. 메리가 느낀 절망감은 아마도 아메드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는 사실보다는 자기가 사랑했던 남자를 온전히 안다고 자만했던 자신을 향한 것일지 모른다. 그래서 뒤늦게라도 남편이 숨겨왔던 이면을 알아야만 한다. 막상 쥬느와 마주했을 , 그녀는 자신이 아메드의 부인이라는 사실도, 아메드가 죽었다는 사실도 솔직히 밝히지 못한다. 아메드가 쥬느와 함께 했던 삶은 그저 부차적이고 가벼운 외도, 그러니까 합법적 부인으로서 자신의 우위를 확인할 있는 차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도 자신의 것에 버금가는 무게의 사랑이 있었다. 그리고 중심에는 뜨거운 모성이 있다. 쥬느는 아메드가 유부남임을 알고도 그를 사랑했고 그의 아이인솔로몬까지 낳았다. 



영화는 유부남을 사랑하는 쥬느를 도덕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재단하지 않는다. 오히려 메리가 청소업체 직원으로 속이며 쥬느의 일상에 개입하면서 윤리적 문제를 야기한다. 그들은 오로지 사랑을 향한 욕망에 충실할 뿐이다. 그들 행위에 있어 번째 원칙은 사랑이며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을 지켜가고 있다. 지점에서 메리와 쥬느는 동등한 층위에 놓여 있고, 어느새 서로를 너무 닮아있다. 메리는 쥬느와 솔로몬이 자신처럼 상처를 받을 것이 염려되어 아메드의 부고 소식을 전하기가 힘들어진다. 


영화는 아내를 속인 아메드를 욕정에 눈이 이기적인 가부장으로 비난하지 않는다. 물론 그것이 그의 외도를 용서한다는 뜻은 아니다. 어느 불륜 드라마에서처럼 사랑한 죄는 아니라고 그저 외칠 있지만, 관객의 시선은 일부일처제의 사회적 규범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나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사과를 수도 변명을 수도 없다. 그래서 영화는 아메드의 재현을 최소화한다. 심지어 그는 영화 초반에 등장과 함께 죽어버리며, 이후에는 서사와 분리된 사진이나 음성 메시지, 홈비디오의 영상 등으로 파편화되어 흐릿하게 존재할 뿐이다. 대신, 혼란스러운 사춘기에 접어들며 이제 정체성에 눈을 솔로몬이 등장해 메리와 쥬느 사이를 매개한다. 메리는 함께 살지 못하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고, 과거 낳은 아이를 묻어야만 했던 메리는 아메드를 닮은 솔로몬을 보며 복잡한 감정에 휩싸인다. 



메리와 쥬느는 질투라는 피상적 감정을 넘어 서로의 삶에 깊이 개입한다. 급작스러운 사별과 뒤늦게 발견한 진실을 대면하면서 느끼는 공통의 통증 앞에서 아픔을 나누며 연대한다. 사랑의 무게가 진짜라면 이별의 무게 역시 만만치 않다. 그들은 현재를 견디기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하기로 한다. 이상 사랑의 경쟁자가 아니라 상실의 아픔을 견뎌야만 하는 동지로 서로의 곁에 나란히 선다. 당장은 서로 화해할 없을지 몰라도 함께 슬퍼하며 애도할 수는 있다. 그것만으로도 서로에게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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