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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 | 연재 [윤지용의 두 도시 이야기]
실크로드의 심장과 이슬람 학문의 요람
사마르칸트와 부하라
윤지용(2020-01-15 10:18:40)



구소련 해체 당시에 독립한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들 중에는 유독 ‘~스탄’이라는 이름이 많다. 고대 인도어인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한 ‘스탄’은 ‘땅’ 혹은 ‘나라’라는 뜻으로 같은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영어의 state도 같은 어원을 갖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우즈벡의 나라’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실크로드의 한복판에 자리 잡고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곳이다. 수도인 타슈켄트를 비롯해서 사마르칸트, 부하라 등은 오늘날에도 우즈베키스탄의 3대 도시로 꼽히지만, 실크로드의 오랜 역사를 품은 고대 도시들이다. 윤지용 편집위원


티무르 제국의 수도 사마르칸트, 동방의 진주
우즈베키스탄 제2의 도시인 사마르칸트는 오래전부터 중앙아시아 실크로드의 중요한 거점인 오아시스 도시였다가 14세기에 아미르 티무르가 건설한 티무르 제국의 수도가 되면서 화려한 전성기를 맞았다. 난폭한 점령자였지만, 문화와 예술을 탐닉하기도 했던 티무르는 정복지에서 발견한 ‘모든 아름다움’을 사마르칸트로 가져왔다. 위대한 학자와 예술가들을 데려와 학문과 예술을 융성시키고 웅장한 도시를 건설했다. 중앙아시아의 심장 사마르칸트는 ‘동방의 진주’가 되었다.
웅장한 건축물 구르 에미르는 아미르 티무르의 묘당이다. ‘구르’는 무덤이고 ‘에미르’는 지배자, 절대자다. 당초에 아미르 티무르는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손자 무하마드 술탄을 위한 묘지로 구르 에미르를 만들도록 했다. 그런데 얼마 후 자신도 명나라 원정길에 갑작스럽게 병사해서 이곳에 함께 묻혔다.
웅장한 메드레세들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레기스탄 광장은 이곳이 지난날 대제국의 수도이자 실크로드의 중심이었음을 말없이 증언한다. 찬란한 비취색 돔을 얹은 건물들에 시선을 압도당했다가 가까이 들여다보면 대리석 벽면에 새겨진 세밀한 문양들의 우아함과 정교함에 또 한 번 감탄하게 된다.
레기스탄 광장 뒤편으로 걸어다가보면 아미르 티무르가 가장 사랑했던 왕비 비비하눔을 위해 지었다는 모스크가 나온다. 아름답고 웅장한 비비하눔 모스크는 비극적인 전설을 품고 있다. 티무르는 왕비 비비하눔의 이름을 딴 모스크 건설을 명령한 후 또다시 원정길에 올랐다. 그때 이 모스크의 건설을 책임지고 있던 젊은 건축가는 비비하눔을 연모하게 되어버렸고, 그녀에게 한 번만 키스해달라고 간청했다. 끈질긴 청을 차마 뿌리치지 못하고 그녀는 단 한 번의 키스를 허락했다. 원정길에서 돌아와 이 사실을 알게 된 티무르가 이 건축가를 잔혹하게 처형했고 비비하눔은 첨탑에서 스스로 뛰어내려 자살했다고 한다.


1,400년 전 인연의 흔적 아프로시압 벽화



티무르 제국 이전에도 사마르칸트는 중앙아시아 문명의 중심지였다. 사마르칸트 도시 외곽에 있는 아프로시압 박물관은 한때 이 일대에서 번성했던 소그드 왕국의 수도인 아프로시압의 유적지이다. 이 박물관에 복원되어 있는 벽화에는 그 당시 여러 나라의 사신들이 소그드 왕을 알현하는 모습이 있는데, 그중 두 명의 고구려의 사신들도 있다. 이 사신들이 머리에 쓴 새 깃털 장식 모자(조우관)와 손잡이에 둥근 고리가 있는 칼(환두대도)로 미루어 고구려의 사신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당시 당나라의 패권에 도전하고 있던 고구려가 당나라를 동서 양쪽에서 견제하기 위해 이 지역의 맹주였던 소그드 왕국에 동맹을 제안하는 사신을 보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마르칸트는 제지업의 중심지로도 유명했다. 사마르칸트에서 만든 종이는 중앙아시아 일대는 물론 유럽에서도 인기 있었다고 한다. 사마르칸트에서 종이가 만들어진 사연도 우리와 인연이 있다. 고구려가 멸망한 후 당나라에 끌려간 유민의 후예인 고선지 장군이 당나라군대를 이끌고 서역 정벌에 나섰다. 파미르고원을 넘어 승승장구 서진(西進)하던 고선지 장군이 서기 751년의 탈라스 전투에서 대패하고 수만 명이 이슬람 연합군의 포로가 되었다. 이 포로들 중 일부가 사마르칸트에 정착했는데 그중 제지공들이 있어서 중국의 제지기술이 전해졌다는 것이다. 사마르칸트 근교에 시압강의 강물로 전통 종이를 만드는 제지소가 있다기에 가봤는데, 닥나무가 아닌 뽕나무 껍질 섬유가 주재료인 것 말고는 우리 전통 한지를 만드는 과정과 비슷했다.


메드레세의 도시 부하라
우즈베키스탄 중부지역에 있는 부하라(Bukhara) 역시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이다. 당나라의 수도 장안(지금의 서안)을 출발해서 천산산맥을 넘어온 천산북로와 파미르고원을 넘어온 천산남로가 부하라에서 만나 키질쿰사막과 카라쿰사막을 지나 페르시아로 이어졌다. 부하라라는 이름은 ‘수도원’이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천축국(인도)으로 가는 길에 이곳에 들렀던 당나라 고승 현장법사의 <대당서역기>에도 이를 음차(音借)한 ‘포갈국(捕喝國)’이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코란은 메카에서 계시되고 카이로에서 낭송되며, 부하라에서 만들어진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부하라는 이슬람 세계 종교와 학문의 중심지였다. 한때 360여 개의 모스크(사원)와 113개의 메드레세(신학교)가 있었다고 한다. 이 메드레세들에서는 이슬람 신학만 공부했던 것이 아니다. 유럽이 중세의 암흑기를 헤매고 있을 당시에 부하라의 메드레세들에서는 철학, 과학, 수학, 의학 등 당시로서는 ‘모든’ 학문들이 지성의 꽃으로 피어났다. 오늘날 널리 쓰이는 ‘알고리즘’이라는 말의 어원이 되기도 한 ‘대수학(代數學)의 아버지’ 알 콰리즈미가 바로 부하라 출신이다. 역시 부하라 출신인 이븐시나는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큰 영향을 준 위대한 철학자이자 의학자였다. 그가 집대성한 <의학전서>가 아라비아를 거쳐 유럽에 건너가서 현대 서양의학의 기초가 되었다고 한다.


사막의 등대 칼란 미나렛
부하라 구시가지의 랜드마크는 ‘칼란 미나렛’이다. 미나렛은 이슬람사원 건물에 딸려 있는 첨탑이다. 칼란은 ‘크다’라는 뜻이다. 높이 47m에 이르는 칼란 미나렛은 실크로드의 대상들에게는 등대이기도 했다. 막막한 사막을 건너던 대상들이 멀리서 칼란 미나렛의 불빛을 보고 막바지 힘을 내어 오아시스를 찾아왔었다고 한다. 잔혹한 처형 도구이기도 했다. 사형수를 자루에 담아 탑의 꼭대기에서 떨어뜨렸다고 한다.
칼란 미나렛에는 칭기스칸에 얽힌 일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13세기에 부하라를 침공한 몽골군은 부하라를 닥치는 대로 파괴하고 약탈했다. 그런데 이 탑 앞에 선 칭기스칸이 탑을 올려다보려고 고개를 쳐들다가 머리 위에 있던 투구가 땅에 떨어져 모자를 줍기 위해 허리를 구부렸다. 투구를 주워든 칭기스칸이 “칸의 허리를 굽히게 한 위대한 탑이니 파괴하지 말고 남겨 두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히바의 석양과 아잔소리



부하라에서 서쪽으로 450km 떨어진 히바 역시 우즈베키스탄을 찾은 여행자가 빼먹기 아까운 곳이다. 사막의 색깔을 닮은 히바는 도시 자체가 하나의 유적이다. 옛 토성인 이찬칼라 성곽 안쪽 구시가지 골목의 노점들을 둘러보며 주민들이 만든 소박한 공예품들을 흥정하다 보면 날이 저물기 시작한다. 그때쯤 이찬칼라 성곽에 올라가 황홀하게 사막을 물들이는 석양을 바라보았다.
경건한 무슬림들은 하루에 다섯 번씩 신께 예배드린다. 예배 시간이 되면 무아진들이 이 첨탑에 올라가 낭랑한 목소리로 ‘아잔’을 낭송한다.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로 시작하는 아잔은 예배 시간이 되었으니 어서 와서 기도하라는 내용이다. 히바에 묵는 동안 날마다 새벽 다섯 시쯤에 구시가지를 산책하면서 아잔소리를 들었다. 덩달아 경건해졌다.


‘배들의 무덤’ 무이나크
무이나크는 우즈베키스탄의 북서쪽 끄트머리쯤 황량한 사막 한복판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언뜻 보면 그렇다. 그러나 몇십 전까지만 해도 내륙 국가 우즈베키스탄의 유일한 ‘항구도시’였다. 지금은 사막이 되어버린 이 일대는 본래 아랄해였다. 천산산맥의 만년설이 흘러내려 우즈베키스탄을 동에서 서로 휘감아 도는 두 개의 강, 아무다리아강과 시르다리아강이 아랄해로 흘러들었다.



구소련 시절에 우즈베키스탄은 목화와 밀을 재배하는 농업생산기지였다. 그런데 목화는 쌀 못지않게 물을 많이 먹는 작물이라고 한다. 구소련 당국은 강을 막고 목화농장들로 물줄기를 돌렸다. 내륙의 호수였지만 바다라고 불릴 만큼 광대했던 아랄해는 점점 말라가더니 지금은 손바닥만큼 남았다.
1960년대에 무이나크는 아랄해에서 잡은 생선이 넘쳐나 북적이는 항구도시였다. 그런데 아랄해가 말라붙으면서 해안선이 100km나 뒤로 물러나 무이나크 일대는 졸지에 사막 아닌 사막이 되어버렸다. 풍부한 어획량으로 번성했던 항구와 생선통조림 공장들은 간 데 없고 아랄해 푸른 바다를 넘나들던 배들만 사막 한복판에서 덩그러니 소금기 섞인 모래바람에 녹슬어가고 있다. 무이나크 옛 항구의 녹슨 배들은 인간의 무지와 탐욕이 빚은 최악의 환경재앙인 아랄해의 비극을 상징하는 쓸쓸한 풍경이다.

전 세계 무슬림들의 공통적으로 쓰는 인사말인 ‘앗살람 알라이쿰(السلام عليكم)’은 아랍어로 ‘신의 평화가 그대에게’라는 뜻이다. 우리말의 ‘안녕하세요’처럼 일상적으로 쓰이는 인사말이다. 상대방은 ‘알라이쿰 앗살람’이라고 화답하는데, 아마도 ‘그대에게도 평화가’ 아닐까 싶다. 이 인사를 주고받을 때는 우리가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할 때처럼 경건하게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얹는 몸짓을 하기도 한다. 재미없는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새해 인사를 전한다. 앗살람 알라이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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