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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 | 칼럼·시평 [문화칼럼]
성산업을 살찌우는 공범은 누구인가
송경숙(2019-10-15 13:57:40)

도심의 '먹자골목'이나 '유흥가'로 불리는 길을 걷다 보면 성매매를 알선하는 광고물이 전단지 혹은 명함 형태로 뿌려져 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한 노골적인 이미지가 사용된 광고물이다. 성매매를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성매매를 암시하고 있다. '안마' '마사지' '노래 주점' 등의 업소로 홍보하면서 업소의 번호나 개인 핸드폰 번호가 적혀 있다. 일상의 공간에 노출되어 있는 불법 광고물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무감각하다. 별다른 인식과 감수성이 작동하지 않는다.


또한 '유흥가'로 불리는 곳, 즉 전주의 아중리와 중화산동에는 노래방, 단란/유흥주점, 보도방, 안마시술소, 모텔 등의 성산업이 집결되어 있다. 최근에는 서부신시가지와 혁신도시에 외국인 여성이 고용되어 있는 마사지 업소가 확대되고 있다.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의 실태조사에 의하면 아중리는 180여 개, 중화산동에는 160여 개의 성매매 가능 업소들이 집결되어 있고 혁신도시와 서부신시가지에는 각각 20, 40여 개의 마사지 업소가 영업을 하고 있다. 이들 업소의 옥외광고물은 여성의 노출된 신체를 이미지로 사용하면서 노골적인 성적 대상화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광고물에도 사람들은 그러려니 하면서 무감각하다. 이러한 현실이 성매매 구조를 일상화하고 있다.


2015년 형사정책연구원의 조사에 의하면 한국의 성산업 규모는 연간 37조 6천억에 달한다. 2017년 커피 시장규모가 6조 4041억이라고 한다. 매일 마시는 커피산업의 6배에 달하는 성산업 규모이다. 2015년 미국의 암시장 전문 조사 업체인 하보스코프닷컴의 조사에 의하면 한국의 성산업은 세계 6위의 규모이다. 2016년 여성가족부의 실태조사에서 한국 남성 둘 중 한 명인 51.6%가 성구매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성산업의 약 70%가 '유흥접객원'이 있는 유흥주점이다. 성매매 여성들의 증언이나 일반 시민들의 인식에서 유흥접객원이 있는 업소는 2차를 통해 성매매를 할 수 있는 곳이다. 법적으로 유흥주점으로 허가를 받지 않고 불법적으로 도우미 등을 불러 영업하는 노래방이나 단란주점조차 성매매가 가능한 곳으로 생각한다.


한국은 법으로도 이러한 여성들의 존재를 명문화하고 있다. 식품위생법 시행령에는 유흥종사자를 둘 수 있는 시설로 유흥주점을 규정하고, "'유흥종사자'란 손님과 함께 술을 마시거나 노래 또는 춤으로 손님의 유흥을 돋우는 부녀자인 유흥접객원을 말한다"고 되어 있다. 이 법은 성차별적인 법이 분명하다. 그러나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한국 사회의 독특한 영업 형태인 속칭 '룸살롱'으로 대표되는 유흥주점은 남성들의 '유흥과 접대'를 위한 대표적 공간이다.


최근 지역 대학의 한 교수가 수업 중에 "가끔 유흥주점에 가는데 화류계에 여기 여학생들도 많이 다닌다. 술을 줄 수 없어 콜라를 준다며 나쁘게 보지 않으니 여기 있는 학생들도 유흥업소에서 만나면 인사해라"라고 말해 징계를 당한 사건이 있었다. 교수가 제자를 성적 대상으로 여기는 성차별적 발언을 한 것도 문제이고 자신이 여성들의 성을 착취하는 유흥주점을 다닌다는 것을 공공연히 말하는 것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남성들에게 유흥업소에 가는 일은 너무나 자연스러울 정도의 일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남성들에게 성매매 없는 '유흥'과 '접대'는 상상하기 어렵다. 남성들의 연대는 유흥업소에서 다 같이 성구매를 하며 이루어지고 각종 로비는 '성접대'를 통해 이루어진다. 즉 여성들을 거래하며 남성들의 돈독한 연대가 구성되는 것이다. 남성들의 성차별적인 성문화는 이렇게 작동한다.


유흥주점은 성매매 알선 업종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대표적 업종이지만 경찰은 수사를 힘들어한다. 불법 성매매가 가시화되지 않기 때문에 단속이 어렵다고 말하지만 업주들이 지역 유지로 행세하거나 협회 등 업주 간 모임을 통해 힘을 과시하고 권력층과 대놓고 친분을 과시하는 이들이기 때문에 이들을 수사하는 것은 지금의 경찰 시스템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대중문화의 재현에서 유흥과 접대를 제공하는 여성들의 존재는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유흥과 접대가 이뤄지는 장소는 맥락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남성 사회 권력과 연대를 나누는 모든 장면에 필수적 요소였다. 영화 '내부자들'과 '베테랑' 같은 영화뿐 아니라 한국의 근•현대를 아우르는 대표적 영화들에 이것은 전면적이든 부차적이든 매우 주요한 사건의 맥락을 보여주는 장소로 묘사됐다.


'장학썬'이라 불리는 고 장자연 사건, 김학의 사건, 버닝썬 사건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존재한다. 남성들의 유흥과 접대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착취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다. 남성들의 근본적인 각성이 필요하다.


얼마 전 회원이 70만 명에 달하는 국내 최대 규모 성매매 포털사이트가 경찰에 의해 폐쇄되고 사이트 운영자 등이 구속되었다. 사이트 운영자는 광고비로만 200억 원이 넘는 광고 수익을 벌었는데 전국 2,613개 성매매 업소로부터 매달 30만~70만 원의 광고비를 받고 사이트에 접속한 회원 70만여 명이 지역별 형태별 카테고리(오피스텔, 안마, 풀싸롱, 키스방 등)를 선택해 접속할 수 있도록 광고를 제공했다. 운영진은 게시판을 잘 관리하는 각 방장에게 업소로부터 받은 월 4회 성매매 무료 쿠폰을 지급했고, 성매매 후기를 잘 작성한 회원들에게 성매매 무료 쿠폰과 할인 쿠폰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게시판을 관리했다. 회원들은 여성의 신체 사진을 올리고 품평을 하는 등의 성구매 후기를 올려 공유하였다.

성산업의 문제는 수요가 핵심이다. 수요는 남성들의 유흥과 접대 문화가 주요한 축을 이룬다. 이와 함께 성산업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이득을 얻는 모든 집단이 수요를 함께 구성한다. 성매매 알선업자, 숙박업소, 임대 소득을 얻는 성매매 업소 건물주, 사채업자, 광고업자, 성매매 포털사이트 운영자, 성산업과 유착되어 있는 공권력 등등이 성산업을 살찌우는 공범이다. 수요는 공급을 필요로 한다. 더 취약한 조건에 놓인 여성들이 타깃이 되어 성산업에 유입된다. 성매매는 여성의 문제가 아니고 남성의 문제이다. 남성 개인 및 집단의 성찰과 실천이 성매매 카르텔에 균열을 낼 수 있다.


유흥주점은 성매매 알선 업종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대표적 업종이지만
경찰은 수사를 힘들어한다. 지역 유지로 행세하거나 협회 등 업주 간 모임을 통해 힘을 과시하고
권력층과 대놓고 친분을 과시하는 이들이기 때문에 이들을 수사하는 것은
지금의 경찰 시스템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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