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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5 | 연재 [이휘현의 책이야기]
나도, 아미가 될 수 있을까?
김영대 『BTS THE REVIEW_ 방탄소년단을 리뷰하다』
이휘현(2019-05-31 15:49:43)



초등학교 3학년 5학년인 내 두 아들은 BTS의 열렬한 팬이다.
그들의 음악은 물론이고, 각 멤버의 신상도 두 아들은 세세하게 꿰뚫고 있다.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는 우리 집 안 거실에서 끊임없이 BTS 노래가 흘러넘친다. 아이들은 TV를 앞에 두고 몇 해 전 방영된 BTS 출연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또 본다.
저녁이면 두 아이는 BTS 노래에 맞춰 댄스 배틀을 벌이고(심사는 주로 내가 맡는다), 잠자리에 들 때쯤이면 두 아들의 방에서 BTS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꽃이 만발하는 광경을 쉼 없이 목격한다. 어디 저 멀리 미국이나 중남미, 유럽에서 뿐이랴. 우리 집안에서도 이렇게 BTS 광풍은 불어 닥치고 있다!!


두 아이의 팬덤(?)이 좀 심하다 싶었는지 며칠 전 아내가 BTS 금지령을 선포했다. 평일 금지어 목록 최상위에 'BTS'가 올랐고, 주말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는 BTS 음악을 듣는 것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엄포를 놓았다. 큰 아이가 졸라서 주문한 BTS 최신 앨범은 서재 한 켠에 숨겨진 채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다. 당연한 반응이지만, 아이들의 표정은 침울하다.
그렇게 시무룩해진 두 아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나는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우리 집 아이들에게 BTS라는 존재를 알린 사람이,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이라는 이름을 나는 그들의 데뷔 초부터 알고 있었다. 다만 딱히 관심이 가지는 않았다. 굳이 방탄소년단이어서 관심을 갖지 않았다기보다는 한국의 아이돌 문화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고 말하는 게 더 맞는 표현일 게다. 걸그룹의 소위 섹시 댄스라는 게 언제부턴가 내 눈에 매우 천박한 스트립쇼처럼 보이기 시작하자 '아 나도 이제 꼰대가 다 되었나 보다!!'라는 장탄식과 함께 한국 최신가요의 트렌드를 외면했던 것이다.


그랬던 내가 방탄소년단 혹은 BTS라는 이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약 2년 전의 일이다. 우연히 포털 뉴스기사로 뜬 방탄소년단의 '빌보드뮤직어워드 탑 소셜 아티스트 부문 수상' 소식이 내 관심을 잡아 끈 것이다. 이 친구들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하길래 콧대 높기로 유명한 팝의 본고장 미국에서까지 상을 준단 말인가!!
그리하여 유튜브 검색을 통해 그들의 뮤직비디오를 보고야 말았는데…, 아뿔싸! 나는 속된 말로 '덕통'사고를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건 뭐지?'라는 놀라움과 함께, 그들의 화려한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는 수많은 나라 팬들의 리액션 영상이 또한 나를 신선한 충격에 빠뜨렸다.


그렇게 '입덕'하게 된 나는 종종 소파에 누워 BTS 관련 유튜브 영상을 감상했고, 그걸 슬쩍 훔쳐 본 큰 아이가 얼떨결에 덕통사고를 겪었으며, 그렇게 입덕한 큰 아들이 엄마 몰래 영상을 감상할 때 또 그걸 슬쩍 훔쳐보게 된 둘째 아이가 역시나 덕통사고를 당했다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K팝의 인기가 정말 세계적인 현상인가?'라는 오랜 물음을 더 이상 의미 없게 만들어버린 'BTS 센세이션'을 목격하면서, 나는 한 권의 책을 펴들었다. 나를 혹은 우리를, 아니 인종과 문화를 초월해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을 열광시키는 그 문화 현상의 이면을 좀 이성적이고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싶었달까.
지난 몇 년 사이 BTS 열풍을 분석한 여러 권의 책이 출간되었지만, 그 중 내 눈에 띈 것은 십 여 년 째 미국 시애틀에 거주하며 음악평론가로 활동 중인 김영대의 비평서 <BTS THE REVIEW / 방탄소년단을 리뷰하다>였다. 구입 직후 큰 아들이 먼저 읽었고, 곧이어 내가 읽었다. 읽는 재미가 어땠냐고? 아주 좋았다.


1990년대 서태지의 등장 이래 한국대중음악계에도 한 때 '음악 비평'이 활기를 띈 적이 있다. 그 중심에는 강헌과 임진모, 신현준 등 소위 학벌 좋은 비평가들이 포진해 있었다. 무쇠라도 씹어 먹을 듯 책을 읽어대던 그 시절의 나도 그들이 써갈긴 책을 이것저것 구입해 읽어보았다. 대중음악을 하나의 문화 장르로서 보다는 일종의 계보학에 끼워 넣어 보려 한 나의 지적 쇼비니즘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나의 20세기는 그렇게 저물어 갔다.
지식의 차원이 아니라 일상의 감흥으로 자연스레 다양한 음악을 받아들이게 된 20대 후반에 이르자(21세기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내가 치기 어린 시절에 읽었던 비평서들이 다 덧없어 보이기 시작했다. 서재의 전면에 포진되어 있던 그 책들은 자연스레 후방으로 물러나고, 대신 그 자리에 수많은 음악 CD들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중음악 비평서와는 담을 쌓고 살 줄 알았는데… 그 누구도 아닌 어느 아이돌 그룹 비평서를 내가 펴들게 되다니! 그것도 마흔여섯의 나이에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BTS THE REVIEW / 방탄소년단을 리뷰하다>는 장점과 단점이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의 치킨 메뉴처럼 적당히 잘 섞여있는 책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BTS의 음악을 지나치게 연대기 순으로 나열한, 더군다나 각 앨범에 수록된 곡들을 너무 세세하게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친절함이 내 눈에는 이 책이 지닌 치명적인 약점으로 보인다. 속된 말로 BTS 'TMI'가 빼곡한 지면은, 방탄소년단 비평서에 손을 댈 정도의 덕후라면 거의 무의미한 대목으로 느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반면, BTS 현상을 분석한 저자의 다양한 칼럼, 그리고 문화 관련 각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한 인터뷰들은 이 책을 허투루 넘길 수 없는 가치로 채워준다. 음악 혹은 대중문화라는 하나의 장르를 넘어서서 그들의 존재가 지금의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단순한 텍스트 분석이 아니라 하나의 담론이자 컨텍스트로 읽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20여 년 전 서태지 세대 비평가들이 가지고 있던 '관념성'이 어느 정도 배제되고, 현 시대의 현상을 읽어내되 그 주체를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당위가 아닌 순수한 팬심으로 상당 부분 채웠다는 건 박수쳐 줄 만한 성과로 보인다.
BTS도 끊임없이 말하듯, 지금의 그들을 있게 한 것은 한 시대의 큰 조류라기보다는 팬들의 소박한 열정이 하나하나 모여 완성한 전지구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소위, 밑으로부터의 센세이션!!


BTS 팬클럽을 일컬어 '아미'라고 한다는 건 다들 알고 계실 것이다. 그 커뮤니티 근처에도 기웃거려 본 적 없지만, 나는 BTS에게 빠져든 2년 전부터 이미 심정적으로는 아미로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앞으로도 한동안은 아미로 살아가지 않을까? 내 두 아들과 함께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국뽕'이 아니라 BTS의 '선한 영향력'을 코스모폴리탄의 관점에서 잘 비평해주는 책이 조만간 나오길 기대해 본다(아!! 어쩔 수 없는 이 꼰대 기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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