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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5 | 연재 [전호용의 음식 칼럼 <자급>]
아로니아
다섯번째
전호용(2019-05-31 15:48:08)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반인들에겐 생소했던 아로니아가 전 국민에게 알려진 건 불과 2,3년 사이의 일이다. 아로니아와 관련된 기사를 찾아보면 2013년도에 170톤이 생산되던 것이 4년이 지난 2017년도에는 8779톤으로 급증했다. 4년간 무슨 일이 있었길래 생산량이 50배가 넘게 급증하며 가격폭락을 일으켰을까.


나는 제 작년 여름에 20년도 넘게 키워온 매실나무 20여 그루를 잘라냈다. 산밭이어서 멧돼지가 좋아하는 고구마나 감자는 재배가 불가능했고 여타 채소를 재배하기에도 척박한 땅이어서 매실나무를 삽목하고 20여년을 키워 봄철 수입원으로 자리 잡는 듯했다. 그런데 10여 년 전부터 전국적으로 매실 붐이 일더니 매실 생산량이 급증했고 가격은 폭락했다. 소비가 꾸준하다면 생산량이 많아도 팔로가 있을 테지만 매실을 누가 그리 많이 먹는다고. 집집마다 먹지 않고 쌓여가는 매실발효액이 늘어갈수록 소비량은 급격하게 줄어들었지만 생산량은 더욱 늘어만 갔다. 나무가 자라면 자랄수록 매실은 더 많은 열매를 맺기 마련이지 않은가. 나무를 잘라냈던 그 해 봄엔 매실을 거저 주겠다는데도 찾는 사람이 없었다. 친지들도 더 이상은 매실발효액을 만들지 않겠다며 손사래를 쳤고 시장에 내놓아도 사려는 사람이 없었다. 시장에 들고 나간 매실을 팔지 못하고 다시 집으로 들고 온 어미는 "저것 관 자빠뜨려라."라며 마른침을 삼켰고 나는 매실나무 두 그루만 남기고 나머지를 모두 잘라냈다. 어미는 작년부터 그 자리에 들깨를 심는다. 손이 많이 가고 수입도 변변치 않지만 멧돼지나 고라니의 먹이가 되지 않고 매실처럼 허망하게 세파의 먹이가 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 작년 이맘때 내가 살고 있는 마을길을 지나는데 길옆 너른 밭에 작은 묘목을 심고 있는 것을 보았었다. 오며가며 보아하니 그 나무는 여느 나무에 비해 매우 빨리 자라났고 풀에도 치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더니 가을 무렵에 까만 열매를 맺는 것을 보고는 그것이 아로니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듬해인 작년엔 내 키만큼이나 자란 나무에 아로니아가 다닥다닥 열렸는데 아무도 그 열매를 따지 않았고 겨울이 되자 그대로 말라비틀어졌다. 무슨 농사를 이리 짓나 하는 생각에 마을 사람에게 땅의 주인을 물었더니 외지인이 사들인 땅이라고 했다. 그리고 지난달 어느 날에 그 길을 지나는데 아로니아 나무는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아로니아와 매실만 그러할까. 최근엔 블루베리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더니 요즘엔 노니가 또 난리라고. 그 뿐인가. 조경수가 돈이 된다니 너 나 할 것 없이 남는 땅이 있으면 죄다 조경수를 심어대니 조경수로 밥 벌어 먹고 살던 사람들은 하는 수 없이 나무를 뽑아내고 그 자리에 태양열집광판을 설치하는 풍경이 나날이 이어진다. 어디서 많이 보았던 풍경이지 않은가? 나는 이러한 광경을 지켜볼 때마다 치킨집이 떠오른다. 수많은 편의점이 떠오르고 스폰지카스테라가 떠오른다. 땅이 투기의 대상이 된지는 오래지만 농업 또한 새로운 투기의 한 형태로 출현한듯하여 씁쓸하기 그지없다. 그 이유는 모든 평가의 기준이 돈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과정이나 성격, 이해당사자들의 삶 따위는 안중에 없이 돈이 된다면 아무런 상관이 없다. 농사가 돈 된다더라, 농사지어 억대 연봉 번다더라, 따위의 이른바 카더라통신의 부채질과 농사라고는 호맹이질 몇 번 해본 것이 전부인 사람들의 욕망과 자만심이 결합해 부풀려진 무서운 풍선. 이 풍선이 터질 때는 바람을 불어넣은 사람들만 다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농사를 지어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도 함께 다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오히려 바람을 불어 넣던 사람들은 비교적 작은 상처를 입고 말지만 농사 말고는 해본 것 없는 사람들에겐 치명상인 경우가 많다.


본디 농사는 매우 보수적인 것이다. 그 땅에 맞는 작물을 찾아내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 작물을 길러내는 방법을 찾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매뉴얼이 있다 하여 항상 맞아들어가는 것도 아니어서 자기만의 방식을 찾아내고 고수하기 마련이다. 단년생 작물이라도 보수적으로 접근하는데 다년생 작물이나 과수, 조경수와 같은 경우에는 그 보다 훨씬 더 신중하게 접근해서 농사를 짓는다. 그래서 평생 농사를 지어온 사람들의 땅을 보면 한 가지 작물만 심어져 있는 경우는 흔치 않다. 매실이 돈이 된다 해서 모든 땅에 매실나무를 심지 않는다. 감나무도 심고 밤나무도 심는 와중에 매실나무 몇 그루를 더 늘려 심는 수준으로 변화를 꽤한다. 그렇게 시간을 들이고 작목을 관리하고 지켜보며 풍요를 기대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물엿이라고 부르는 것의 본명은 고과당옥수수시럽이다. 옥수수전분을 산분해하고 효소처리해 당도를 높인 이 식품은 1970년대에 미국에서 만들어져 21세기 초반까지 승승장구하다 비만의 원인으로 지목되어 지금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60년대 미국에선 너무나도 많이 생산되는 옥수수가 문젯거리였다. 공적자금을 투입해 극빈국에 무상원조를 보내는데도 남아돌았다. 이 남아도는 옥수수를 어떻게든 소비해보려는 요량으로 개발해낸 것이 고과당옥수수시럽이다. 설탕보다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입에 짝짝 달라붙는 것이 여간 아니어서 그동안 설탕을 넣어 만들었던 콜라와 과자를 비롯해 단 맛이 나는 대부분의 식품이 설탕 대신 고과당옥수수시럽을 사용했고 그렇게 옥수수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렇게 위대한 물엿이었는데 이건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았다. 물 한 컵 마시기는 버거워도 콜라 2리터 마시는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꾸만 살이 쪄갔다. 알고 보니 옥수수시럽은 세상에 없던 새로운 물질이어서 신체는 그것을 거부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인류에게 혹은 미국에게 축복인줄 알았던 고과당옥수수시럽은 비만이라는 재앙으로 돌아왔다. 생각해보면 옥수수는 그저 여름철 별미로 맛 볼 수 있는 고소한 옥수수일 뿐인데 거대한 탐욕에 의해 재앙이 되었다. 아로니아도 시고 떫고 씁쓸한 맛을 내는, 그렇게 생겨먹은 열매였고 약용으로 가끔 쓰이던 것이었는데 사람들의 탐욕으로 인해 재앙이 된 것 뿐이다.


나는 올 해 아로니아 나무 한 그루를 심을 생각이다. 다 자란 아로니아 나무 한 그루에서 나는 열매를 가지면 온 가족이 항산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나는 배탈이 자주 나는데 그 때마다 매실고 한 숟가락을 먹으면 배탈이 낳아서 항상 매실고를 옆에 두고 살지만 1년에 열 번 먹을까 말까다. 지금 먹고 있는 매실고가 떨어질 때쯤에 남겨둔 매실나무 두 그루에서 매실을 따 매실고를 만들어 먹을 수 있다. 매실나무 두 그루면 온 가족이 죽을 때까지 배탈걱정은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사과나무도 두 그루가 있어서 가을이면 사과를 따먹고, 감나무에선 홍시와 단감이 열려 그것으로 겨울을 난다. 그 옆에는 대추나무가 있고 여름에 따먹을 수 있는 오디나무도 있다. 무화과나무도 한 그루 있고, 보리수나무도 한 그루 있으며 밤나무도 있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욕망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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