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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5 | 연재 [보는 영화 읽는 영화]
상실의 아픔을 추스르며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
생일
김경태(2019-05-31 15:42:15)



<생일>은 세월호 참사를 겪은 유가족들의 이야기다. 정확히는, 그 사건이 벌어지고 2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그 상실의 깊은 상처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들의 이야기다. 영화는 상실의 극복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관객에게는 그 참사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만을 제공한다. 흡사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건이기에 더 이상의 설명은 중언부언에 불과하다는 듯이, 혹은 국민적 트라우마가 된 사건이기에 다시 입 밖에 내는 것은 너무 괴롭다는 듯이 말이다. 그처럼 안다고 가정된 주체로 호명된 관객으로 인해, 영화는 오프닝 크레딧이 뜨기 훨씬 전부터 이미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고등학생이었던 아들 '수호(윤찬영)'를 잃은 '순남(전도연)'과 '정일(설경구)' 부부와 그들의 딸 '예솔(김보민)' 역시 말을 아낀다. 그 아껴진 말들 사이로, 다시 말해 그 구체성이 사라진 자리에는 침묵으로 인해 보다 보편화된 상처들이 영화 속을 부유한다.

생일은 본질적으로 기쁜 날이다. 당연하게도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 날이고, 그 당사자에게는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기 시작한 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일의 주인공은 축하를 받는다. 그렇다면 이미 죽은 이의 생일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이제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는 않은 이에게 탄생을 축하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모순이지 않을까. <생일>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수호가 생명을 잃은 날, 즉 전국민적으로 희생자를 추모하는 날이 아니라, 그 한명의 생일, 즉 그가 이 세상에 존재하기 시작했던 날을 향해 나아간다. 그가 죽은 날은 집단적 상실의 기억으로, 국가적 재난의 연대기로 환원되지만, 그의 생일은 오롯이 그만을 위한 날이다. 감독은 상실의 트라우마를 견뎌내기 위해서는 추모의 눈물만큼이나 축하의 미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순남은 그 '모순'의 필요성을 이해하지, 아니 인정하지 못한다. 그래서 시민단체에서 제안하는 수호의 생일잔치를 거절한다. 순남은 추모 공원에서 둘러앉아 음식을 차려놓고 죽은 자식들의 단체 사진으로 장난을 치고 농담을 건데는 유가족들의 태도를 못 마땅해 한다.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순남은 여전히 죽음 앞에서 웃을 수 없다. 그렇다고 깊은 분노와 원한을 품고서 재난 대응에 무능한 정부를 심판하거나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정치적 투쟁으로 나아가지도 않는다. 그녀는 그저 현실을 부정하고 과거에 집착할 뿐이다.

어느 날, 순남은 수호의 방에서 오열을 한다. 그 피맺힌 울음소리는 벽을 뚫고 옆집으로 울려 퍼지고, 창문을 넘어 밤의 적막을 깬다. 아마도 그것은 지난 2년 간 밤낮 할 것 없이 무수히 반복되어왔던 애도의식이리라. 그러나 이웃들은 그 통곡소리에 피로감을 느낀 지 오래다. 그것은 날 것 그대로의 서슬 퍼런 울음이자 공감으로 끌어안기에는 너무 버겁고 지나친 고통이다. 그 통곡소리는 영화 속에서 배제된 참혹한 재난 이미지의 위상을 대신하며 아직 끝나지 않은 감정의 재난 상태, 즉 상실의 아픔을 극명하게 표출한다.


정일은 순남을 설득해 수호의 생일잔치에 데려간다. 둘러앉은 사람들은 수호와 얽힌 각자의 추억들을 털어놓다. 조각조각 흩어져 있던 추억들을 끌어 모으며 그들은 함께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영화는 기억과 감정의 공유를 강조한다. 웃음과 눈물이 뒤범벅 된 잔치에서 삶과 죽음은 보다 너그럽게 서로의 경계를 넘나든다. 삶은 죽음을 따뜻하게 끌어안고 죽음은 삶에게 잠시 자리를 내어준다. 이제는 가슴을 쥐어짜는 듯이 고통스러웠던 상실감도 견딜 수 있을 만큼 길들여지고 치유된다.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다짐하며 세월호 참사를 깊이 각인시키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큼이나, 살아남은 사람들이 아픔을 추스르며 삶을 이어가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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