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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5 | 인터뷰 [인터뷰]
골목길 작은 책방의 '오지랖'
'잘 익은 언어들' 이지선 대표
윤지용(2019-05-31 15:38:18)

우리나라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1년 내내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고 한다. 그나마 책을 사서 읽는 사람들도 대부분 온라인을 통해 책을 산다. 스마트폰 화면을 몇 번의 누르기만 하면 원하는 책이 다음날 집에 도착하는 세상이다. 이 와중에 책방을 여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반가운 일이지만, 걱정이 앞선다. 큰길가에 터 잡고 다양한 책들을 구비해놓은 대형서점들도 어렵다는데, 골목길의 작은 책방들은 어떤 힘으로 버텨내고 있을까?


도서관이 지역문화의 '심장'이라면 골목길의 책방들은 '실핏줄'이다. 전주 송천동에 있는 <잘 익은 언어들>도 그런 동네 책방들 중 하나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다 말고 책방 앞에 서서 앞유리에 새겨진 글을 천천히 읽었다.


"설익고 섣부른 언어들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기도 하지만 성숙하고 깊은 생각에서 나오는 언어들은 누군가를 위로하고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잘 익은 언어들'은 그 위대한 언어들의 힘을 알기에 한 문장 한 문장 잘 읽은 글들을 당신께 전하고자 합니다."


책방지기인 이지선 씨가 쓴 글이다. 책방 이름에 대한 설명인 셈이다. 책방을 열 때 좋은 이름들을 추천해준 지인들이 많았지만, 미안함을 무릅쓰고 직접 만든 이름을 고수했다.



잘 나갔던 카피라이터 '지카피'
예사롭지 않은 책방 이름에서 짐작했듯이 지선 씨는 본래 글 쓰는 사람이다. 대기업 계열 광고기획사의 카피라이터였다. 그 시절에는 '지카피'로 불렸다. 글쓰기를 좋아했던 지선 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일찌감치 광고 카피라이터를 꿈꿨다. 대학에서 광고창작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당시에 유일했던 관련 학과가 서울에 있었고 야간학부라서 부모님이 한사코 반대하셨다. 어쩔 수 없이 지방대학 국문과에 진학했지만, 꿈을 포기한 적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무작정 상경'을 감행했다. 고시원, 옥탑방, 반지하방을 전전하고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광고전문학원에 다녔다. 유명 영어교재 회사에서 전화홍보로 회화테이프를 파는 아르바이트도 했었는데 남달리 판매실적이 좋았다. 당시로서는 적지 않은 수입을 올렸고 회사에서도 붙잡았지만, 광고일을 하겠다는 꿈 때문에 뿌리쳤다.


처음 들어간 광고기획사는 어느 제과회사의 사보 발행을 대행해주는 영세한 업체였다. 박봉을 받으며 글만 쓰는 게 아니라 편집 디자인 파일이 담긴 외장하드를 들고 충무로의 인쇄소를 오가는 잔심부름을 도맡아했다. 그렇게 광고계에 입문한 후 옮겨간 두 번째 회사는 직원이 수십 명 있는 중견 업체였다. 비슷한 또래의 직원들끼리 함께 광고를 공부하는 모임도 만들고 동료애도 깊었다. 그렇지만 큰 회사에 가서 제대로 일해보고 싶은 욕심에 대기업들에 계속 입사지원서를 냈는데 번번이 서류전형에서 탈락했다. 지방대 출신인데다가 업계에서 별 존재감 없는 영세업체 경력이 전부였으니, 면접보자고 불러주는 회사가 없었다. 며칠 밤을 새워가며 공들여 만들어서 제출했던 포트폴리오라도 되돌려달라고 찾아간 어느 회사에서 말단 직원이 귀찮다는 듯이 "그거 폐기해서 없죠." 했을 때의 모멸감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렇게 몇 년을 고생한 끝에 대기업 계열 광고회사로 옮겨갈 수 있었다. 나중에 어느 정도 가까워진 후에 그 회사의 국장님이 그랬다. "그때 너 왜 뽑은 줄 알아? 너무 간절해보여서 뽑은 거야. 뭐든 시키면 열심히 할 것 같아서."


마침내 꿈꿨던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너무 기뻐서 열정적으로 일했다. 광고업계에서 제법 인정받고 히트작도 여럿 만들어냈다. 그러나 주말도 없이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생활이 너무 힘겨웠다. 본인의 과로야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지만, 아직 어린 아이들이 문제였다. 아이들에게 제대로 정성을 쏟을 시간과 에너지가 늘 부족했다. 특히 둘째인 아들은 아토피 증세가 심해서 엄마의 손길이 절실했다. 고민 끝에 귀향을 결심했다. 그 동안 업계에서 인정받아온 실력 덕분에 전주에 돌아온 후에도 프리랜서로 일할 수 있었다. 아이들과 건지산 숲길을 산책하고 틈나는 대로 함께 책을 읽었다. 아들의 아토피 증세가 눈에 띄게 좋아졌고 아이들은 행복해졌다. 아이들과 숲길을 걸은 이야기를 산림청의 '숲이야기 수기 공모'에 보내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우리 동네에도 책방 하나 있었으면'
책을 좋아하는 엄마 덕분인지 중학생인 딸과 초등학생인 아들도 책을 좋아한다. 그래서 지선 씨네 집에는 TV가 없다. 저녁시간에 가족들이 거실에 모여 함께 책을 읽거나 각자 읽은 책 이야기를 나눈다. 어느 날 문득 생각했다. '우리 동네에도 책방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우리 식구 모두 단골 될 텐데' 그러다가 또 생각했다. '아무도 안 하면 나라도 해볼까?' 오래 전에 카피라이터의 꿈을 안고 고향을 떠날 때 그랬던 것처럼, 지선 씨는 새로운 도전에 망설임이 없다. 지선 씨가 책방 여기저기에 붙여놓은 손글씨들 중에 이런 쪽지가 있다. "책방을 하기 위해 가장 많이 준비했던 것은? 마음의 준비!" 일단 마음의 준비를 야무지게 하고 마음이 준비되면 머뭇거리지 않는다.


지선 씨는 이 책방이 누구나 와서 위로받고 용기를 얻어가는 곳이 되면 좋겠단다. 동네 아이들과 엄마들이 편하게 놀러오는 곳, 젊은이들이 아무 때나 와서 제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곳으로 만들고 싶단다. 동네 아주머니가 집에서 만든 빵을 갖고 와서 나눠먹기도 하고, 식물 세밀화를 배우는 동아리모임도 있다. 우쿨렐레를 좋아하는데 집에서는 부모님이 "딴따라 되려고 그러느냐"고 타박해서 마음대로 연주하지 못한다는 젊은이가 시시때때로 와서 우쿨렐레를 연주하고 간다. 골목길을 지나는 동네 중고등학생들을 불러들여서 사이다를 따라주며 책을 읽어주다가 일명 '사이다 모임'이 만들어졌다. 지난해부터는 매월 '작가와의 대화' 같은 문화행사도 연다. '잘 익은 언어들'은 오지랖 넓은 동네 사랑방이 되어가고 있다.


지선 씨의 책방이 책을 사러 오는 손님들에게 위로를 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위로라는 게 본디 서로 주고받는 것, 책방 손님들에게서 지선 씨가 위로받을 때도 많다. 책방 문을 연 지 두어 달쯤 됐을 때 근처 식당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 한 분이 앞치마를 두른 채로 수줍게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책방이라는 곳에 와본 지 10년도 넘었다고 멋쩍어하면서 쉬운 책 한 권만 권해달라기에 골라드렸다. 얼마 후에 다시 오셨다. "내가 책 읽는 사람이 될 줄 정말 몰랐어요. 평생 이렇게 일만 하다가 죽을 줄 알았는데."하면서 또 한 권을 골라달라고 했다. '아, 이런 게 바로 동네 책방이 필요한 이유구나. 나 때문에 책 읽는 사람이 한 명 늘었구나!' 개업 초기에 고군분투하고 있던 지선 씨에게 감동과 위로였다. 가끔 책방에 와서 조용히 책을 사가던 아저씨가 동네 통닭집 사장님이었다는 사실을 몰랐다가 집에서 주문한 통닭을 배달오셨을 때 마주쳐서 서로 반가웠던 적도 있다.


지선 씨가 '잘 익은 언어들'을 연 지 어느새 일 년 반이 되어간다. 얼마 전부터 적자는 벗어났지만, 아직 갈 길이 멀고 하고 싶은 일이 많다고 한다. 아이들이 어서 자라서 저녁 늦게까지 책방에 불을 밝히고 싶단다. 다양한 독자층을 위해 여러 분야의 책들을 두루 챙겨놓고 싶다고도 한다. '동네책방'의 오붓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서점'으로서의 면모를 갖추는 것이 지선 씨의 욕심이다. "재작년에 씨를 뿌렸고 작년에 싹이 돋았어요. 이제 튼튼하게 자라서 열매를 맺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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