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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5 | 연재 [백희정의 음식 이야기 ]
국수
백희정 (2023-05-09 14:06:07)

국수 


백희정



 



내가 병실에 들어섰을 때 엄마는 식사하고 있었다. 헐렁한 환자복, 작고 왜소한 어깨, 두 손으로 꼭 잡은 그릇, 푹 숙인 고개가 밥을 먹는 것도 같고, 멍하니 그냥 앉아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엄마!”


엄마는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그대로 먹는 것을 멈추었다. 엄마의 시선이 내게 고정된 채, 신음처럼 입 밖으로 무슨 말인가가 흘러나왔지만, 나는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한없이 서글퍼 보이는 엄마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순간 나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2018년 1월 엄마는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엄마는 병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고, 불안해했고, 잘 먹지 못해 많이 수척해진 상태였다. 일주일에 두세 번 나는 엄마에게 갔다. 나는 운전하고 가는 내내 ‘무엇을 사서 갈까?’, ‘입맛이 당기는 게 뭘까?’ 고민했지만, 아무것도 사지 못하고 빈손으로 병실에 들어섰다. 흔들리는 엄마의 눈빛 때문이었을까? 미처 알아듣지 못한 엄마의 말 때문이었을까? 나는 가방도 내려놓지 못한 채, 엄마의 손에 들려있던 대접을 서둘러 받아서 들었다.


국수였다!


나는 침대 위 간이식탁에 그릇을 내려놓고서야, 겨우 등에 메었던 가방을 벗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나는 외투도 벗지 못한 채, 조금 남아있는 국수를 마저 엄마에게 먹였다. 국수는 이미 퉁퉁 불어 있었고 국물은 차가웠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에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얼마 남지 않은 국수를 먹는 내내 엄마의 눈빛은 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울음 반, 국수 반 서글프고 가슴 아픈 엄마의 밥상이었다.


평상시 워낙 국수를 좋아하는 엄마였기에 나는 좀 더 국수를 드리고 싶었다. 병원에 부탁해 보았지만, 이미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버린 탓에 남은 국수는 없다고 했다. 대접에 담긴 국수 양이 그리 많지 않아 턱없이 빈약한 식사처럼 느껴졌다.


나는 밥을 조금 더 드리고 싶었지만, 엄마는 고개를 저으며 먹는 것을 거부했다. 나는 다른 무엇이라도 엄마에게 조금 더 먹여야 할 것 같았다. 문득 지난주에 사다 놓았던 간식이 생각났고, 나는 서둘러 빵과 두유를 찾아 엄마에게 주었다.


늦은 점심 뒷정리를 하고, 엄마의 틀니를 빼서 닦고, 막 엄마 곁에 앉으려는데 쿵쿵한 냄새가 코끝에 느껴졌다. 엄마의 눈가에 잔뜩 끼어있는 눈곱도 보였다. 나는 그대로 다시 일어나 침대 밑에 놓아두었던 대야를 꺼내어 들고 병실 안 화장실로 향했다. 대야에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물을 받아 나와서 엄마의 얼굴과 손을 씻겨 주었다.


그래도 냄새는 여전했다. 엄마를 돌아 눕히고 기저귀를 살짝 열어보았다. 아무 흔적이 없었다. 다른 어르신한테서 나는 냄새인가? 나는 애써 흔적을 찾는 것을 포기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있는 엄마의 곁에 앉았다. 그러자 엄마가 내게 밥은 먹었는지 묻는다. 불안하게 흔들리던 엄마의 눈빛도 조금 편안해진 듯 보였다.


그녀가 국수를 삶는다. 오늘 그녀가 만드는 국수는 물국수다. 그녀는 항상 국수를 삶기 전에 먼저 국물을 만든다.


그녀는 마른 다시마 3~4조각과 표고버섯을 넣고 반나절 정도 우려낸 육수통을 냉장고에서 꺼내 싱크대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냄비에 육수용 멸치 한주먹을 넣고 불을 켜서 비린내를 날려 버린다. 그런 다음 멸치에 우려낸 다시마 육수를 넣어 20분 정도 팔팔 끓인다. 마지막으로 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하고 마늘, 후추, 채 썬 애호박과 파를 넣으면 끝이다.


국물이 만들어지는 동안 그녀는 냄비 하나를 더 준비한다. 이제 국수를 삶아야 한다. 손잡이가 있는 냄비에 물을 부어 가스 불 위에 얹고, 물이 끓어오르면 먼저 소금을 약간 넣는다. 그리고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오백 원짜리 동전보다 약간 크게 마른국수를 쥐어서 냄비에 넣는다. 그녀는 국수를 넣고 재빠르게 기다란 나무젓가락을 이용해 휙! 휙! 저어준다.


바글바글 하얀 거품과 함께 국수가 끓어오른다. 그녀는 끓어오르는 냄비에 차가운 물 반 컵 정도를 붓는다. 다시 국수가 끓어오르고, 다시 찬물을 붓고, 국수가 퍼지지 않고 잘 삶아질 수 있도록 끓고 있는 물의 온도를 떨어뜨려 주는 것이다.


그녀는 찬물을 한 번 더 부어준 후에야 재빠르게 국수를 건져낸다. 건져낸 국수는 찬물에 넣고 손으로 비벼 씻는다. 삶아낸 국수에 엉켜있던 미끈미끈한 전분기가 씻겨 나와 맑았던 물이 뿌옇다. 씻은 국수는 바구니에 담아 물기를 뺀다.


그녀는 면이 붇기 전에 오목한 그릇에 국수를 넉넉히 담고, 팔팔 끊인 국물을 부어 쟁반에 받쳐 들고 방으로 향한다.


그녀가 국수를 먹는다. 국물은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다. 그녀의 오른손과 왼손은 서로 협력하여 포크로 국수를 건지고, 건져진 국수를 돌돌 말아 천천히 입에 넣는다.


언제부터인가 음식을 먹을 때마다 자꾸 흘리고 젓가락질이 서툰 그녀에게 딸은 포크를 쥐여 주었다. 국수는 특히 젓가락 보다 포크를 사용하는 것이 편했고, 이도 여의찮으면 눈치 볼 것도 없이 자연스레 양손을 다 사용한다. 그녀의 주름투성이 얼굴이 그리고 입술이 오물오물 국수를 먹는다.


머리가 백발이 되고, 자꾸만 빠져나오려는 반쪽짜리 틀니여도 그녀에게 국수는 여전히 별미이다. 가끔은 호되게 사례에 걸리고 기침이 나기도 하지만, 그녀는 국수를 남기는 법이 없다.


기다랗고 가는 국수 가락이 주르륵 미끄러져 다시 사발에 주저앉는다. 그래도 그녀는 괘념치 않고 다시 국수를 먹는다. 


그녀가 길고, 뽀얗고, 보드라운 국수를 맛있게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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