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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7 | 연재 [마당기행]
‘관광’과 ‘활성화’,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할 때
2020 마당•전주시도시재생지원센터 공동기획 도시문화기행 | 안성•천안
오민정(2020-07-07 13:03:21)

2020 마당•전주시도시재생지원센터 공동기획 도시문화기행 | 안성•천안

‘관광’과 ‘활성화’,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할 때

글 오민정 편집위원



6월 13일(토), 2020년 첫 도시문화기행이 시작됐다. 코로나19로 인해 미뤄졌던 일정이었기에 기행 시작 전부터 기행지에 대한 수시현황파악과 소규모 운영,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더욱 꼼꼼하게 준비한 점들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올해는 도시재생과 더불어 자연지형과 역사, 문화를 담고 있는 ‘골목길’에 대한 내용을 함께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보다는 설렘을 가지고 출발했다.


안성, 상업도시의 흔적이 남아있는 골목
기행의 첫 장소는 ‘안성’이었다. ‘편안한 고을’이라는 뜻을 지닌 안성은 경기도 최남단, 충청도와 만나는 곳에 위치한 도시다. 조선 후기에 장시가 발달하면서 안성은 평양, 대구, 전주, 강경 등과 함께 상업도시로 명성을 날렸다. 지명을 들으면 떠올릴 수 있는 ‘안성 유기’, ‘안성 맞춤’ 등의 단어에서 상업도시로서 안성의 위상을 엿볼 수 있다. 교통 요지에 위치한 덕에 안성은 육운과 더불어 수운도 발달한 도시였다. 이 같은 최상의 입지조건에 힘입어 안성은 농•공•상업이 모두 발달하였다. 그러나 1905년에 개통한 경부선 철도가 안성이 아닌 평택을 거치게 되면서 안성은 교통의 흐름에서 비켜나 내리막을 걷게 됐으며, 일제의 민족산업탄압과 1940년 이후 공업시설이 대도시 중심으로 확대됨에 따라 안성의 수공업은 점점 몰락해갔다.


우리가 도착한 ‘추억의 거리’는 안성의 상업도시로서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었다. 안성에 도착하자마자 추억의 거리 어귀에 마중 나와주신 한필원 한남대 교수님의 친절한 안내로 골목길을 걷기 시작했다. 전통적으로 도시가 형성될 때, 남북의 방향은 의례의 축, 동서의 방향의 상업의 축으로 활성화된다는 이야기는 매우 신선했다. 특히 안성에서는 남북로가 동서로로 불린다는 것과 이런 ‘의례의 축’ 초입에 대장간과 방앗간 등이 존재해왔다는 점에서 안성이 역사적으로 농업과 상업의 도시였다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었다.


변해가는 도시의 풍경
본래 안성의 동서로 동쪽에 번성했던 시장이 1976년 서쪽 서인동으로 이동하면서 서로 안성 상업의 중심이 옮겨지고 동쪽의 옛 장터는 쇠퇴했다. 게다가 서쪽의 새 시장 근처에 시외버스터미널이 들어서고 동서로와 나란히 안성맞춤대로가 개통되면서 서쪽의 접근성이 크게 좋아졌으며 오늘날에는 동쪽은 구시가지, 서쪽은 신시가지의 느낌이 강하다고 한다. 어쩐지 이런 설명을 들으니 전주와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동쪽(원도심)은 점점 비어가고 개발을 통해 서쪽으로 확장해가는 도시의 풍경. 어쩌면 우리나라 재개발의 풍경은 이렇게 찍어낸 듯 비슷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어쩐지 서글퍼지기도 했다.


행정도시에서 출발해 상업도시가 된 안성의 도시공간에 존재하는 2개의 축은 행정과 상업이라는 2개의 기능과 대응한다. 우리의 역사도시에서 남북방향으로 난 가로는 도시의 공식적인 정문인 남문과 왕권의 상징인 객사를 잇는 정치의 축이자 의례의 축이다. 그런데 안성에서는 ‘동서로’로 칭하고 있다. 다른 도시 같으면 중앙로라고 했을 만한 길이다. 지금은 동서로 서쪽에 안성맞춤대로가 나 있지만 그것은 기존에 있었던 작은 길을 확장한 가로이고, 역사적으로 도시의 중심 가로는 동서로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가 방문한 동서로, ‘추억의 거리’는 한산했다. 기행에 참여한 사람들과 함께 걸으며 문득 이러한 풍경이 단순히 코로나19의 여파뿐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리 초입에 아직 영업을 하고 있는 대장간과 방앗간이 민속체험의 장소가 아니라 여전히 생산을 하고 있는 공간이기는 했지만, 간판이며 디자인들이 세트장 혹은 흡사 박제된 근대사 박물관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길, 도시의 휴머니티를 담아내는 방향
직선으로 이어지는 길을 걸으며, 중간중간 곡선을 이루고 있는 좁은 골목길도 눈에 띄었다. 물길을 따라 자연스럽게 조성된 길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을 띄고 있다고. 길을 거르며 주변의 풍경에 대해 이야기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길을 걸으며 한필원 교수님은 ‘길의 폭’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전면적인 재개발이 아니면 구시가지의 다른 것들은 변해도 길의 폭은 잘 변하지 않으며, 이 정도 길(중로)의 폭에 안정감을 주는 것은 2~3층 높이의 건물이라고. 하지만 길을 걷다 보니 앞으로 걸어갈수록, 건물의 높이와 1층의 풍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갑자기 들어선 5층 이상의 상가건물과 1층을 주차장으로 활용하는 원룸과 빌라. 도시의 풍경, 균형이 깨진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으며 한편으로 상업이 중심이 되는 공간에서 1층을 주차공간으로 활용한다는 것은 공간 효율성이 떨어질뿐더러, 역설적으로 상업기능이 쇠퇴하고 있다는 의미로 다가와 한편으로 안타까웠다. 문득 길을 걸으며 이렇게 길의 가로폭에 신경을 써보면서 걸어본 적은 없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러한 길의 ‘가로’가 도시와 보행자가 소통하는 공간의 방향이며, 분위기, 도시의 휴머니즘에 접근하는 방향임을 다시금 깨닫는 시간이었다.


조각광장의 풍경
안성에서의 점심 이후 방문한 곳은 천안이었다. 직관적으로 천안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아직도 두 가지이다. 호두과자와 천안 삼거리. 아빠의 고향이기도 한 천안은 종종 방문하기는 했으나, 어릴 적 나에게는 그다지 인상 깊은 도시는 아니었다. 하지만 자라고 나서 보니 천안은 어릴 적 기억보다는 큰 도시였다.


특히 십수 년 전, 터미널 일대에 있는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처음 조각광장을 보고는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어릴 때에는 미처 보이지 않았던 풍경이었다. 길거리에 무려 데미안 허스트라니. 단순히 작품을 나만의 컬렉션으로 만들기보다 고객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거리에 조각광장을 조성했다는 점이 특별하게 다가왔다. 천안에 올 때마다 한 번씩은 우회하더라도 지나가던 조각광장을 오랜만에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도시재생, 질문을 다시 해보기
아라라오 갤러리와 도시재생뉴딜체험관을 잠시 들른 후 ‘천안청년들’의 최광운 대표를 만났다. 처음 청년활동으로 주목받았던 최광운 대표는 이제 천안지역의 도시재생을 연결하고 매개하는, 도시재생을 산업적 생태계로 조성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청년활동을 하면서 청년들을 세대별로 지역의 현안을 다루는 자리에 참석할 수 있게 공식적인 인원할당을 마련(25% 청년 쿼터제)하고, 도시재생의 주체로서 청년뿐 아니라 중장년 세대를 적극적인 주체로서 함께 하는 방법은 배울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청년문제에서 시작했지만, 확장해해서 청년들이 천안에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생태계를 접목시키고 사례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들이 인상 깊었다. 한때 볼트 상가였던 곳을 10명의 청년들이 함께 투자해 문을 연 카페, 한때 할렘가와 같았던 원도심 골목을 변화시킨 ‘인 더 갤러리’ 등 재생공간을 둘러보고 이들로 인해 변화되고 있는 현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 1조 이상의 민간과 공공기금이 유입되는 시점에서 그런 활동을 지켜내는 것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문득 도시재생에 대한 물음이 떠올랐다. 여러 가지 유형으로 도시재생을 진행해오고 있지만 우리는 ‘관광’을 염두에 두고 재생이라는 이름으로 개발하는 재생을 너무 반복해오지는 않았는지. 재생 이후의 황폐화는 더는 재기할 수 없는 지역이 된 사례가 너무 많았는데도 왜 우리는 이 과정을 반복하고 있는지 말이다. 안성의 골목길로부터 이어 온 고민 끝에 불현듯 영화 ‘올드 보이’에서의 대사가 떠올랐다. “당신의 진짜 실수는 대답을 못 찾은 게 아니야. 자꾸 틀린 질문만 하니까 맞는 대답이 나올 리가 없잖아.”


우리는 어쩌면 아니라고 하면서도 도시재생에 있어서도 늘 ‘관광’과 ‘활성화’라는 대답을 염두에 두고 질문을 반복해오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우리에게 도시재생이란, 이제는 질문 방법을 바꿔야 하는 문제는 아니었을까. 지금의 도시재생에서 우리에게 극적인 성공보다는 원도심을 터전 삼아 지속가능하게 먹고 살 수 있고, 그러한 공간들이 오래도록 유지되는 것,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질문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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