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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 | 연재 [마당기행]
작품이 녹아든 그곳에서 나도 쉬고, 강도 쉬었다
한강, 예술로 멈춰 흐르다
이동혁(2019-01-15 12:40:15)

집과 직장, 반복되는 일상에 신선한 자극을 더한다. 낯선 곳에 자신을 내던지고 새로움으로 충만해지는 시간. 12월 8일, 마당기행이 찾은 장소는 흐르던 강물도 잠시 쉬었다 간다는 '한강예술공원'이었다. 서울 한복판을 도도하고 유유하게 흐르고 있는 한강은 자연 경관 이상의, 한국의 역사와 변화, 발전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뜻깊은 장소다. 그 결을 따라 걸으며 한강예술공원의 매력에 한껏 젖었다. 다소곳이 자리잡은 작품들 속에서 삶의 여유와 휴식을 배웠다. '멈춤'과 '흐름'의 예술이 공존했던 시간, 200회째 마당기행은 한강의 예술 작품들과 함께했다. 돌아오는 길엔 '이메진_존 레논전'에 들러 끝나 가는 기행의 아쉬움을 달랬다.



활기차고 여유로운, 설레고 비밀스러운 쉼터
한강의 탁 트인 전경만으로도 오랜 이동의 무료함이 훅 날아갔다. 12월, 바람은 냉했지만, 하늘이 높고 볕은 선명했다.
기행단의 발걸음이 처음 닿은 곳은 한강예술공원의 랜드마크 '스크롤-흐르는 이야기'였다. 거대한 줄자를 원통 모양으로 말아 놓은 듯한 이 설치물은 한강의 무한한 흐름과 쉼을 상징한다고 한다. 가로 8미터, 세로 25미터, 높이 8미터의 위용에 한 번 놀라고, 구조물을 펼쳤을 때의 길이가 90여 미터에 달한다는 설명에 한 번 더 놀랐다. 작품을 기획한 팀 '모토엘라스티코'는 주변에 생명과 번영을 가져다준 한강을 기리기 위해 이 기념비적인 두루마리를 제작했다고 한다. 안쪽의 눈금자 부분에는 한강이 지나온 흐름이 마치 상형 문자처럼 기록돼 있다.
하지만 이 랜드마크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그런 겉으로 드러난 의미가 아니다. 직관적인 생김새가 마치 놀이 기구마냥 호기심을 자극한다. 발을 구르며 달려 보고픈 생김새다. 덕분에 스스럼없이 다가와 뛰노는 아이들도 많다고 한다. 스크롤을 포함한 한강예술공원의 작품들이 각별한 이유는 이처럼 허물이 없기 때문이다. 고고한 예술이 아니라 누구나 다가와 만져 보고, 앉아 보고, 머물 수 있는 예술, 공공예술이 품고 있는 마음이다.
나무 뿌리처럼 얽혀 있는 특이한 모양의 벤치도 눈에 띄었다. '한강한장 시민공개공모' 최우수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작품은 시원하게 뻗어 있는 야외 잔디밭을 배경으로 기행단에게 신선한 시각적 자극을 제시했다. 조형물의 중심에서부터 가지처럼 뻗어나간 뿌리들은 굽이치듯 높낮이를 바꾸면서 시민들이 눕거나 앉을 수 있는 다양한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다음으로 찾은 작품, '과거가 될지도 모르는 이야기'는 멀리서 언뜻 보고 만개한 꽃인 줄 알았다. 수 개의 봉 위에 축음기 나팔관이 줄지어 달린 모습이 과연 가까이서 봐도 '꽃'이었다. 곤충과 새, 오래된 축음기 음악 소리가 더해진 이 작품은 생명애를 표현함과 동시에 머지않은 미래에 멸종위기종의 소리가 오래된 축음기처럼 아득하게 느껴질 것이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작품에는 한 가지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데, 작품에서 흘러나오는 곤충 소리가 다른 곤충을 쫓을 위험이 있어 현재 나오는 소리는 녹음을 다시 한 것이라고 한다. 작은 것 하나까지도 섬세하게 챙긴 배려가 인상 깊었다.
또 얼마쯤 걷자 이번에는 화려한 핑크색 펭귄과 노란색 거대 달팽이가 기행단을 반겼다. 플라스틱 문제가 심각하게 불거진 요즘, 이 작품이 주는 메시지가 무척 특별하게 다가왔다. 자연을 보존하고 복원하는 것만큼 플라스틱과 같은 인공 자원의 재활용 또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며, 업사이클링(up-cycling)을 통해 환경 변화에 대한 지역 사회의 대화를 독려하는 작품이었다. 특히 '서빙고'라는, 과거 얼음 창고의 역할을 하였던 한강을 바라보며 설치되어 우리에게 잠시 잊혀졌던 이곳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겼다.
작품을 쫓는 여정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행복했지만, 네 개로 나뉜 공간의 의미까지 알면 작품 감상의 폭은 더욱 넓고 풍성해진다. 맥락 없이 배치된 작품들이 아니라 공간 하나하나에 의미를 두고 장소의 매력을 부각시키기 위해 고민한 흔적들이 느껴졌다. 기행단이 돌아본 이촌 강변에는 세 개의 FLOW가 있는데, 각각 '여유로움', '설렘', '비밀스러움'이란 주제를 담고 있었다.
기행단이 처음 내려선 'FLOW2-여유로운'은 잔잔하고 느긋하게 흐르는 한강의 물결처럼 시민들의 삶에 한가하고 여유로운 휴식을 줄 수 있는 작품들이 배치돼 있었다. 앞에서 살펴본 '스크롤-흐르는 이야기'와 '뿌리벤치'가 이 공간의 대표적인 작품들이었다. 바쁜 도시적 삶을 잠시 뒤로한 채 드넓은 한강변의 풍경과 자연을 바라보며 쉬어 갈 수 있는 여유가 부러운 한편, 우리 지역에도 이런 공간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강하게 일었다.
핑크 펭귄과 노랑 거대 달팽이, 과거가 될지도 모르는 이야기 등의 작품이 배치된 'FLOW3-설레고'는 생태공원으로 새롭게 조성되고 있는 이촌 지구의 장소적 특성에 맞춰 설레는 호기심으로 자연과 낯설게 조우할 수 있는 작품들이 펼쳐져 있었다. 도시에서 접하기 어려운 비밀스러운 자연과 생명의 의미를 되짚어 볼 수 있는 특별한 공간으로, 비닐 봉투에 갇힌 홍학을 통해 환경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플라밍고', 역동적인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북극곰', 인간과 동물의 조화를 다룬 '상상' 등 환경 문제에 경종을 울리는 열다섯 개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오전의 마지막 일정이었던 'FLOW4-비밀스러운'은 한강의 장소성과 역사성에 주목한 공간이었다. 작품 '궁극공간'은 노후한 어선을 통해 한강과 그 주변부의 지나간 시간을 다루었고, '강변호 상경기'는 목포에서 홍어를 싣고 오다 한강에서 사라진 홍어장수 고 씨의 배라는 가상의 이야기를 엮어 한강과 어선이 살아온 이야기를 전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옛것의 가치를 다시금 상기시키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식사를 마친 오후에는 여의도 강변에 자리잡은 'FLOW1-활기차고'를 방문했다. 전체적으로 밝고 환한 작품들이 주를 이뤄 서울 시민들의 활기찬 삶을 그려 볼 수 있었다. 이곳에 전시된 열세 작품 모두 각별했지만, 그중에서도 특별히 눈길을 끌었던 작품은 '한강 포엠 파빌리온'이었다. 햇볕이 이중 패널의 파빌리온을 통과하면서 그리는 한 편의 시는 그야말로 자연이 그려낸 아름다움이었다. 하루를 통과하며 한 편의 시가 흐르고, 계절의 변화에 따라 또 다른 시가 드러난다고 한다. 문자 그래도 1년에 걸쳐 전하는 태양의 메시지인 셈이다.
작품 '둥지'에 담긴 의미도 인상 깊게 다가왔다. 자연의 힘은 때때로 인간의 상상력을 넘어선다. 1960년대 여의도 개발 당시, 한강의 원활한 흐름을 위해 폭파되었던 밤섬이지만, 자연은 인간의 이기조차 뛰어넘어 밤섬을 다시 재생시켰다. 그곳은 다시 섬이 되었고, 버드나무와 억새가 자라고 있다. 밤섬이 한눈에 내다보이는 둥지 위에서 기행단은 자연의 위대함과 억셈을 피부로 실감하며 한강예술공원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돌아오는 길에는 예술의 전당에 들러 '이메진_존 레논전'을 관람했다. 존 레논은 20세기 가장 존경받는 문화계 인물로, 그가 남긴 유품, 음악, 그림, 사상은 위대한 유산이 되어 시대를 뛰어넘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아시아 최초, 최대 규모의 전시여서 그 의미가 더욱 각별했다.
30년 이상 존 레논의 작품과 유품을 수집해온 Micheal-Andreas Wahle의 소장품, 존 레논의 전속 사진작가 Bob Gruen, Allan Tannenbaum의 사진 작품 등 총 400여 점이 전시된 '이메진_존 레논전'는 음악보다 아름다운 사람이란 레논의 별칭처럼 감동의 연속이었다. 귀에 익은 음악과 함께 그의 삶을 되짚는 여정은 팬이 아니라 해도 대단히 가슴 떨리는 일이었다. 반 세기를 채 채우지 못하고 40세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였지만, 그 삶의 발자취는 누구보다 방대하고 압축적이었다. 마치 남들의 2배나 3배쯤 되는 속도로 달려나간 것처럼 속도감이 느껴졌다.
아티스트 존 레논의 짧지만 방대했던 삶을 음악, 예술, 사랑으로 풀어내어 그의 궁극적인 평화의 메시지와 발자취를 따라가 보았던 아름다운 전시, 밖으로 나온 뒤로도 한동안 그의 노래가 귓가를 맴돌았다.


몹시도 추웠지만, 그런 추위가 무색해질 만큼 가슴은 만족감으로 가득찼다. 영하의 날씨 속에서도 한강예술공원을 안내해 준 은병수 총감독과 변정미 큐레이터에게 감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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