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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7 | 기획 [전주, 사대문 안 풍경①]
우리들의 잃어버린 이야기를 찾아서
전주 한옥마을과 남부시장
(2016-07-15 09:11:40)




이 마을의 사연은 이렇다. 한 때는 왕의 어진(御眞)이 행차하는 영광의 길이었고, 한 때는 제도에 묶여 제자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는 그저 그런 곳이었고, 지금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대는 화려한 마을이 되었다.
부침(浮沈)의 세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다져진 이 마을을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이동을 하는 행위가 아니다. 오랜 시간과 역사, 이곳에서 살고 또 이 길을 지나갔을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위에 나의 사연을 더하고 또 내 안에서 비워내는 것이다.

전주의 전동과 교동. 사람들은 이제 이곳을 한옥마을과 남부시장으로 부른다.
한옥마을은 770채가 넘는 한옥이 나란히 어깨를 기대고 있는 곳이다. 도심 한 복판에 한옥촌이 조성되게 된 것은 1905년 을사조약 이후 일본인들이 대거 전주에 들어오면서부터다. 서문 밖, 지금의 다가동 근처 전주천변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이 점차 전주 최대 상권을 형성하게 되자 이에 반발한 한국인들이 1930년대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촌을 형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1977년 '한옥마을 보존지구'로 지정되면서 한 때 개발에 뒤처지기도 했었지만, 덕분에 한옥마을에는 고즈넉한 한옥과 기품 있는 전통문화, 소박한 생활문화가 남아있을 수 있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전주전통문화중심도시' 추진 정책과 맞물려 전통문화를 토대로 한 문화공간들이 생겨났고 한옥마을이 조금씩 주목받기 시작했다. 물론 한옥마을과 전주를 가장 한국적인 도시로 가꾸고자 했던 지역 주민들의 정성과 고집, 지혜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016년의 어느 날. 아기자기한 공방들과 세련된 커피전문점, 색다른 주전부리 가게들이 기어이 걸음을 붙잡고야 마는 한옥마을은 어느새 1년이면 1천만 명이 찾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이를 두고 누군가는 상업화를 걱정하고 서운해 하지만, 아직 그곳에는 한옥마을이 가진 기억과 이야기가 그대로다.






조선왕조의 상징, 태조로
한옥마을은 걸어야만 그 정취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어느 길, 어느 골목을 걸어도 상관없지만, 그래도 한옥마을에 왔다면 마을을 동서로 가르는 태조로와 남북으로 가르는 은행로만큼은 반드시 두 발로 걸어보자.
태조로는 기왓장을 머리에 인 경기전과 비잔틴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조화를 이룬 전동성당이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모셔진 경기전과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순교터인 전동성당이 한 눈에 담기는 이 낯선 풍경이 참으로 아름답다. 
경기전은 1410년(태종 10)에 봉안된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남아있다. 지난 2012년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된 태조 어진은 현존하는 유일본으로 경기전의 존재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전하는 왕의 초상을 보면 모두 홍색 곤룡포를 입고 있지만, 경기전 태조 어진만은 청색 곤룡포를 입고 있다고 하니 이 또한 흥미롭다.
경기전 내 어진박물관에는 태조 어진 외에도 세종, 영조, 정조, 철종, 고종, 순종 등 조선시대 역대 임금의 어진이 모셔져 있다. 영민하고 섬세해 보이면서도 단호한 결단력이 엿보이는 왕의 초상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저절로 몸과 마음이 엄숙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경기전에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전주사고(史庫)가 있다. 현존하는 『조선왕조실록』은 이곳 전주사고본. 임진왜란의 혼란을 버텨내며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낸 선조들의 불굴의 의지는 우리 민족의 끈질긴 생명력과 다름없다. 해마다 전주사고의 책을 말려 습기를 제거하는 『조선왕조실록』 포쇄(曝曬) 행사와 태조 어진 봉안 행렬 행사가 재현되고 있는데, 이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귀한 장면이다. 






여행자를 안아주는 길, 은행로
600년도 넘은 보호수 은행나무가 살고 있는 은행로는 졸졸졸 흐르는 실개천과 정자, 연못 등이 여행자의 마음을 한결 더 여유롭게 하는 곳이다.
그 중에서도 은행로의 심장, 은행나무는 1383년 고려시대 월당 최담 선생이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후 심은 것이다. 높이가 16m로, 둘레 또한 성인이 두 팔을 있는 힘껏 펼쳐도 안을 수 없을 정도. 2005년에는 나무 밑둥에서 새끼나무가 자라면서 한옥마을의 명물이 됐다. 언젠가부터 나무 아래서 심호흡 5번을 하면 나무의 정기를 받을 수 있다는 풍문이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으니, 모르는 사람만 손해다.
은행나무 맞은편에는 동학혁명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건립된 동학혁명기념관이 있다. 이곳은 우리 근현대사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동학농민혁명의 주요 인물과 사건들을 대중적인 그림과 사진, 책, 유물 등으로 소개하고 있다. 한옥마을 내에서도 유난히 적막하게 느껴지는 이 공간을 찬찬히 둘러보다 보면 갑오년의 그날, 죽창을 들고 봉기할 수밖에 없었던 농민들이 떠올라 마음이 시리다.


샛길, 그 묘한 설렘
인생을 살다보면 샛길로 새고 싶을 때가 있다. 그리고 그것을 실행으로 옮겼을 때, 우리는 생각지 못했던 것들과 마주하게 된다. 한옥마을의 큰 길, 태조로와 은행로를 걷다 지칠 때쯤이면 샛길로 빠져보자.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문득 접어들면 조금 더 조용하고 조금 더 아늑한 세계가 펼쳐진다. 
1960~70년대 섬유생산공장이었던 백양사의 공장 일부를 원형 그대로 보존하면서 예술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교동아트센터(경기전길), 세월이 흐를수록 빛을 더해가는 대하소설 『혼불』의 작가 최명희를 기린 최명희문학관(최명희길), 전주부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부채문화관(경기전길)이 경기전 돌담길 뒤로 모여 있다.
한옥마을관광안내소 주변에는 옛 양반가옥을 재현한 전주한옥생활체험관(어진길)과 국창 오정숙 명창을 기리는 기념관과 마당창극이 펼쳐지는 소리문화관(한지길)이 있다. 그 옆에서는 국악방송(한지길)이 실제 방송을 송출하며 전주가 전통문화의 고장임을 보여준다. 술 익는 소리가 향기롭게 들려오는 전주전통술박물관(한지길)에서는 천연발효제인 누룩을 이용해 전통주도 빚어볼 수 있다.
은행로에서 남천교가 보이는 길 끝에 당도하면 고요히 흐르고 있는 전주천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쉬리가 살고 수달이 사는 곳. 전주 사람들을 닮은 맑은 물이 흘러간다.
천변을 따라서도 놓치기 쉬운 보물 같은 곳들이 많다. 서예가 강암 송성용 선생의 작품세계를 조명한 강암서예관(전주천동로)과 전주의 출판문화와 완판본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완판본문화관(전주천동로), 전통공연과 혼례, 음식 등 우리 고유의 문화를 한 곳에 담아낸 전주전통문화관(전주천동로)이 천변을 따라 차례로 나온다. 완판본문화관 뒤로는 650년 역사와 전통이 꼿꼿이 살아있는 전주향교(향교길)가 자리 잡고 있다.






길거리 음식에 입까지 호강
여행의 반은 먹는 재미라고 하지 않았던가. 젊은이들에게 한옥마을은 '먹방투어'로 더 인기다. 가게 밖으로 길게 늘어선 줄에 미리 지쳐 돌아선다면 곧 후회하게 될 것이다. 전주비빔밥을 재료로 한 비빔밥 크로켓을 비롯해 바삭한 바게트 속을 돼지고기와 청양고추, 야채로 가득 채운 바게트 버거, 동네 빵집을 전국구 베이커리로 승격시켜준 초콜릿맛 파이까지, 전주에서는 길거리음식도 평범치 않다. 특히 초콜릿맛 파이는 전주의 관광상품이 됐을 정도니, 관에서 어떻게든 만들어 보려고 해도 쉽지 않았던 관광상품이 자연스럽게 탄생한 것이다.
'한옥마을 먹방투어'는 전주를 두고 왜 맛의 고장이라고 하는지 가장 쉽고 빠르게 이해하는 방법이다. 전주에서는 길거리음식까지 맛있을 정도니, 가만히 앉아 상을 받는 전주비빔밥이나 전주한정식은 그 맛이 오죽할까. 화려한 성찬에 눈이 호강하고, 입이 호강하고, 몸이 호강한다.


꿈과 낭만이 있는 청춘시장, 남부시장
흔히 한옥마을이라고 하면 한옥마을관광안내소와 주차장, 기린로, 전주천변, 경기전을 둥그렇게 이은 정도를 가리키지만, 한옥마을 여행만큼은 시작점과 끝점을 정해놓지 마시길…. 할 일 없는 사람처럼, 둘레둘레 해찰을 하며 툇마루에 걸터앉아 다리를 쉬고, 멀리서 들려오는 버스킹을 넋 놓고 듣다가 발길 닿는 대로 걷고 구경하고 이야기하고 싶은 곳. 그렇게 한옥마을을 걷다보면 자연스레 풍남문이 우뚝 서있는 남부시장에 닿게된다.
남부시장은 조선시대 3대 시장에 들 정도로 역사가 오래된 곳이다. "전성기에는 전국의 쌀 시세가 이곳에서 결정되고, 남부시장에 들르지 않고서는 결혼을 못 한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였다"고 하니, 잘 나가던 시절 그 규모를 짐작할 만 하다. 도심 곳곳에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전통시장을 찾는 발길이 부쩍 줄어들었지만, 그럼에도 남부시장이 특별한 이유는 청년몰과 야시장 덕분이다.
청년몰은 창고나 다름없던 시장 2층의 빈 점포를 젊은 상인들에게 무료로 임대해 주면서 시작됐다.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서는 주 고객층인 중장년층을 넘어 젊은이들을 끌어들여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러려면 젊은 상인들이 필요했다. 2011년 시와 시장번영회, 사회적기업이 공동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해 청년 장사꾼을 모집했고, 지금은 청년몰이 남부시장 매출을 20% 가까이 끌어올리고 있다. 
개성 넘치는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청년몰은 한 마디로 먹거리와 놀거리, 살거리가 적당히 잘 어우러져 있다. 청년몰 벽면의 '만지면 사야합니다'라는 반협박성 문구에 웃음이 터지고, '니들은 참말로 열심히다'라고 적어놓은 식당 간판과 '같이 놀다가게'라는 보드게임방의 간판에서 생각지도 못한 위로를 받게 되는 곳. 아무렇지 않게 벽에 박혀있는 기타와 천장에 매달려있는 주전자들까지, 여기서는 모든 것이 낭만이다. 특히나 전통시장에서 자신의 꿈을 키우고 철학을 실천해 나가는 젊은 사장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다.
청년몰의 계단을 따라 내려오면 바로 야시장이다. 남부시장 야시장은 한옥마을이 전국적인 관광지가 되면서 문화관광형시장으로 본격 조성됐다. 한옥마을이 밤이 되면 갈 곳이 없다는 관광객들의 푸념과 하룻밤 묵어가는 관광지를 만들어야겠다는 행정의 의지가 딱 맞아떨어진 셈. 마침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문화관광형시장 조성사업'도 한 몫 거들었다.
야시장은 해가 저물 때 쯤 시작된다. 남부시장 한복판, 대형 그릇가게와 전국으로 입소문난 피순대집 사거리에 놓인 중앙무대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40여 개의 부스가 길게 늘어선다. 유독 먹거리 부스가 많아 "다이어트 중인 사람도 포기하게 만든다"는 유혹의 골목으로 정평이 나있다. 즉석 노래자랑과 콘서트, 즉석경매 등 다양한 문화행사와 세련된 공예품과 디자인소품을 파는 부스들도 많아 밤을 잊은 '올빼미족'들에게 인기다.






새벽을 여는 도깨비시장
그러나 남부시장의 진짜 매력은 아는 사람만 아는 도깨비시장이다. 어슴푸레한 새벽, 이곳에는 전주천변을 따라 도깨비시장이 선다. 새벽 5시부터 아침 8시까지, 그날 가지고 나온 물건이 다 팔리면 짐을 싼다. 남부시장 상인들이 장사를 시작하기 전 잠깐 섰다가 파하는 장이라서 도깨비시장인 것이다. 손님들 입장에선 시골에서 공들여 기른 싱싱한 푸성귀들을 싼 값에 살 수 있으니 새벽부터 서둘러 나온 보람도 있고 재미도 있다.
여름이든 겨울이든, 찬 공기가 감도는 꼭두새벽부터 일터로 나온 사람들의 속을 든든하게 채워주려면 뜨끈한 국밥이 제격이다. 콩나물국밥과 순대국밥처럼 남부시장을 중심으로 유독 국밥이 발달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앞에 '전주'자가 붙어야만 제 맛이 나는 콩나물국밥은 남부시장식과 끓여먹는 식으로 나뉜다. 특히 남부시장식은 밥을 세 번 토렴한 후 나오는데, 맑은 국물과 즉석에서 다져넣은 청양고추와 마늘, 그리고 함께 나오는 반숙한 수란이 입맛을 사로잡는다. 남부시장식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콩나물국밥집은 10여 년 전 프랜차이즈가 됐다.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남부시장식 콩나물국밥집 간판이 반갑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주인 할머니가 말아주던 그 국밥 한 그릇이 사무치게 그립기도 하다.


사시사철, 전주로 가자
뜨거운 계절을 더 뜨겁게 보내고 싶다면, 우리, 전주로 가자. 아니다. 살랑 불러오는 꽃바람을 참을 수 없다면, 높은 가을 하늘 아래서도 낮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고 싶다면, 그리고 밤새 기왓장 위로 소복하게 쌓인 눈이 보고 싶다면, 사시사철 전주로 가자.
그리고 한옥마을과 남부시장에 들러 전주 사람을 만나고 밤새도록 그들의 이야기를 듣자. 그때에야 비로소 전주 사람들이 애써 지켜온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이 보이고, 전통을 잇대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 가는 전주 사람들이 보일 것이다. 그때에야 비로소 이른 새벽 도깨비시장을 깨우는 흥정소리, 쓴 기침 소리가 들리고, 적당히 벌어도 잘 살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청년들의 애달픈 목소리가 들릴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야 비로소 무엇인가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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