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다큐스페셜'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아리랑'을 주제로 일본과 중국으로 다큐멘터리 촬영을 다녀오느라 바쁜 일정 중에 수요포럼 강연을 준비했다. '문화저널'이라는 곳이 제게는 특별한 기억으로 각인되어있다. 90년대 초반, 사물놀이와 피아노 협주곡 협연을 한창 하던 때에 저는 그렇게 유명한 음악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저널에서 문화행사를 마련해서 저를 초청해준 적이 있었다. 그때 당시 열악한 상황에서 전주 공연을 했는데, 공연의 성공여부를 떠나서 기분이 굉장히 좋았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그 때의 기억 덕분에 문화저널에서 하는 일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무조건 참여한다고 했고, 오늘 이 자리에 서서 이렇게 여러분들과 함께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초대해주셔서 감사하다. 그럼, 오늘 강연을 시작하겠다.
MBC에서 아리랑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서 찾다보니까 저밖에 없다고 하더라. 아리랑 연주도 제일 많이 하고, 작곡도 제일 많이 하고 그렇게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하게 됐다. 그래서 일본의 오키나와에 다녀왔다. 그곳에는 징용 끌려간 우리네 할아버지, 위안부로 끌려갔던 할머니들 그런 현장들을 다 둘러보고 현지에 살고 있는 일본인들의 증언을 다 들었다. 아주 감동적이었다. 아직까지도 기억나는 게 아카 섬이라고 오키나와의 본토 섬 등을 돌았던 일이다. 그곳에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생활을 했던 위안소가 있었다. 위안소 건물이 아직까지도 남아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건물이 낡아가고 허름해지니까 일부 자재를 교체해서 그 건물 자체로 유지하고 있다. 오키나와 아카 섬에서 마지막 인터뷰한 할머니가 일본 나이로 91세, 우리나이로 92세다. 이 할머니가 얼마나 총기가 있던지, 그 당시에 위안부 할머니들의 밥을 지어줬다고 한다. 아직까지도 일곱 명의 할머니들의 이름을 다 지금도 외우고 있었다. 그 당시 기억을 생생하게 하고 있었다. '할머니 아리랑 한번 불러보세요' 했더니 아리랑을 그렇게 완벽하게 불렀다.
오키나와 아리랑은 그렇게 만들어지게 됐다. 위안부나 징용 온 사람들이 주로 전라도와 경상도 출신이 많았다고 들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머나먼 타국까지 와서 제일 많이 죽었다고 하더라. 그래서 같은 가사로 전라도 버전과 경상도 버전, 두 가지로 만들었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오키나와라는 섬에서 하늘만 바라보고 부모님 생각만 하면서 그리워하는 내용을 가사에 담았다. 그 아리랑을 듣고서는 제작진들이 현장에서 다 울었다.
인연이 닿을 때마다 만들었던 아리랑
2010년에 신불산 아리랑을 시작으로, 마음이 가고 뜻이 닿을 때마다 지역에 따른 아리랑을 만들기 시작했다. 울주군에서 저보고 해마다 울주군에 있는 명승지를 하나씩 정해서, 임동창의 울주 오딧세이를 10년에 걸쳐 한번 해보자는 제의를 받고 현장답사를 갔다. 그곳에 가보면 여러분들도 잘 알다시피 반구대 암각화 같은 유적지 몇 군데를 둘러보다가 억새밭이 쫙 펼쳐진 곳을 만났다. 그곳이 '신불산'이었다. 제가 신불산이라는 곳 밑에서 하기로 결정을 하고, 몇 달 전 미리 밤에 올라가 산 속에 한 시간 정도 가만히 앉아있었다. 말하자면 제 나름대로 산에 신고식을 했다. 산을 느끼는 하나의 의식 같은 행위였다. 신불산이 1000미터가 넘는 산이다. 그렇게 산을 한 시간정도 느끼고 나니까 이 산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저한테 전달이 되었다. 신불산은 마치 평화의 산처럼 느껴지는 데 그 안에 있는 아주 작은 슬픔이 저한테 전해졌다. 그리고 나서 신불산에서 공연을 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는데 대성공했다. 그 때부터 아리랑을 하나둘씩 만들기 시작했다.
옛날에는 각자 지역의 특색을 지닌 아리랑이 있었는데 일제에 의해 없어졌다. 그런데다가 서양의 문화가 들어오면서 우리 것은 천대하고, 미신처럼 여기고, 한참 뒤떨어진 것처럼 인식하는 사회풍조 때문에 우리 스스로도 우리 문화를 내려놓아버렸다.
그 결과 정말 안타깝게도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의 아리랑밖에 남지 않았다. 민요라는 것에는 민중의 진솔한 삶이 그대로 녹아있다. 그런데 이 아리랑이 몇 개 안된다는 것은 우리 민중의 삶의 진정한 가치가 없어졌다고 얘기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일본식의 대중가요가 완전히 우리의 감성을 다 잡아버렸다. 일본 사람들은 우리나라를 차지하고, 정신을 잡기 위해서 가요를 아주 조직적으로 만들게 한다. 일반적인 곡조를 보면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 7음계를 가지고 서양음계를 가지고 곡을 만드는데 일본의 대중음악 중, 장조의 음악 쇼카가 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창가다. 이 장조의 음계를 가지고 밝은 곡조를 만들 때 요나누끼 음계를 쓴다. '요'는 네 번째, '나'는 일곱 번째. 도, 레, 미, 솔, 라 이렇게 된다. '거리는 부른다 환희에 빛나는, 숨 쉬는 거리다' 이런 옛 노래가 있다. 이 노래를 풀이하자면, 이제 너희들은 한일합방이 돼서 우리 천황폐하의 은혜로 조선 백성도 잘 살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 노래에 사용된 멜로디는 요나누끼 음계. 일본의 가요음계를 가지고 쓰게 했다. 대중가요는 대중의 감성을 쉽게 사로잡아버린다.
단조, 사람들은 대부분 슬픈 음악을 좋아한다. 슬픈 곡조의 음악을 '엔카'라고 한다. 엔카의 음계는 라, 시, 도, 레, 미, 파, 솔, 라. 엔카 역시 요나누끼 음계를 사용한다. 거기에서 '레'와 '솔'을 뺀다. 우리가 흔히 전통가요라고 하는 가요에는 이 습관이 그대로 남아있다. 일본이 전쟁에서 져 본국으로 돌아갔음에도 우리는 지금도 친일감성이다. 한 잔 술에 뽕짝 한 소절 부르고 나면 기분이 풀린다. 그런데 이 일본색이 짙은 가락들을 일본 음계로 만들기 전에 우리 색의 노래가 있었다. 바로 민요다. 전라도는 전라도색깔, 전라도 안에서도 남, 북도가 다르고, 지역마다 다르고, 독창적으로 발전해왔던 우리 음악. 우리의 다양했던 그리고 최고 수준을 가지고 있었던 딴따라 음악. 민요가 싹 없어져버렸다. 그게 너무 안타까웠다. 그래서 그때부터 아리랑을 일부러 만드는 게 아니고 인연 닿는 데로 만들기 시작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이 간단한 노래 하나가 아마 우리나라 역사 이래 최대 히트곡일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노래 하나가 인간의 그 다양한 감정을 전부 담아낸다. 그래서 내가 슬픈 일, 힘든 일을 당했을 때 이 노래 하나로 충분히 표현이 되고, 내가 기쁜 일이 있을 때 노래를 부르면 당연히 표현이 된다. 이 간단한 아리랑 노래가 엄청난 용량의 감정을 다 녹여낸다.
실제로 서양 사람들도 이 아리랑에 감응한다. 제가 몇 년 전에 바이칼호수를 다녀온 적이 있다. 그 곳에서 한 열흘 동안 게스트 하우스에 묵은 적이 있었는데, 고물 피아노가 한 대 있었다. 어느 날,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이 프랑스에서 학생들이 온다고 공연을 좀 해줄 수 있냐고 요청을 했다. 공연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아리랑을 이용해 그 때 그 상황 그리고 공연에 참여한 사람들의 기분에 맞게끔 자유분방하게 표현했다. 노래를 잘 하고 못 하고를 떠나서 아리랑이 갖고 있는 힘을 그 때 느꼈다. 그날 한 부자(父子)가 우리가 벌여놓은 그 판에서 춤추고 놀았다. 공연이 다 끝나고 이 친구가 하는 얘기가 뭐였냐면, '아리랑이라는 노래는 평화다 그리고 아름답다' 였다.
실제로 서양의 음악 전문가들이 우리 인류가 엄청나게 많은 노래들을 불러왔는데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어떤 노래일까 연구했다. 우리 아리랑을 일등으로 꼽았다. 세계에서 인류가 많은 노래들을 그동안 불러왔는데 그중에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간단한 아리랑을 꼽았다. 음악은 치유의 기능을 한다. 힐링을 가장 많이 포함한 노래는 무엇일까. 일반 대중이 부르는 노래 중에서 또 아리랑을 꼽았다. 이 간단한 노래 하나가 갖고 있는 그 DNA. 그건 놀라운 것이다. 전 이번에 연변에 가서 우리 민족은 아리랑 민족이라고 주장하고 왔다. 우리를 아리랑 민족이라고 부르자.
완주, 그리고 13개의 아리랑
완주에 이사 온 지가 만 2년이 됐다. 오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이 완주 아리랑을 만든 것이다. 완주 아리랑의 가사는 이렇다.
'아리아리랑 스리스리스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산 좋고 물 좋은 우리 완주, 인심도 좋고, 멋도 넘치네, 얼씨구 절씨구 좋구나 좋다'
올해는 풍류축제를 완주군 구이면 축구장에서 했는데, 세 개의 면, 열 개의 읍, 열세 개 읍·면 아리랑을 만들었다. 이 열세 개 읍·면을 동시에 자기면의 아리랑을 부르는 공연을 했다.
제가 이 곳에 와서 완주의 풍경과 완주사람들을 느꼈을 때 전혀 이런 게 아니었다. 진도아리랑 얼큰한 느낌과 완주아리랑 소박한 느낌, 서울지역과 가까운 아주 세련된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다.
제가 지난해부터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초등학생 2525명을 모아서 아리랑 소리랑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작년에 세 곡을 만들었다. 풀피리아리랑, 날품아리랑, 꿈의 아리랑. 아이들을 작곡을 시키려고 했는데 무리였다. 아리랑 세 곡을 만들어서 발표를 했다. 올해 상반기에 온고을 아리랑을 만들어서 부르게 했다.
완주 아리랑은 곡조를 들어보면 산이 있는 느낌이 든다. 반면에, 온고을 아리랑은 평평한 느낌이 든다.
제가 왜 이렇게 아리랑이라고 하는 것에 메여서 인연 닿는 대로 하냐. 그 이유는 음악은 우리 인생에 있어 영적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음악에 대해 너무나 무방비하다. 텔레비전에 음악이 흘러나오면 그냥 듣는다. 여러분을 휩싸고 있는 수많은 음악들이 여러분답지 않은 음악이라는 것이다. 일본의 대중가요에 뿌리를 둔 음악이 나온다던가. 나다운 음악이 아닌 걸로 휩싸여있다. 아리랑은 지역의 특성뿐만 아니라 음식도 되고 말씨도 되고 인정도 되고 무엇이 됐든 엄청난 게 다 들어있는 것이다.
대구아리랑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는 대구 육상선수권 대회 하던 해에 문화행사를 하루 맡아서 하게 됐다. 그 때 아리랑을 만들어서 대구광역시에 선물을 했다. 대구아리랑은 동부민요라 할 수 있다. 동부민요는 메나리 조 음계를 사용한다. 그래서 이 대구 아리랑은 메나리조로 만든 것이다. 대구 사람들의 기질이 메나리 조에 스며있다. 그래서 대구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이 노래를 처음 들어도 바로 따라 부를 수 있다. 또 희한한 게 있다. 제가 진주아리랑을 만들어서 진주에서 활동하는 타악팀에게 선물했다. 그래서 나중에 왜 안 부르냐 물었더니 전라도 가락인 계면조 가락이 들어가 있어서 공연하기 좀 하기 그렇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곡이 죽어있었던 적도 있다.
어느 경상도 지역에 가서는 진도 아리랑을 한 적도 있었다. 경상도의 히트 곡보다 진도 아리랑이 더 신났던 적도 있다. 그 때 '내 느낌이 맞았구나' 하고 깨달았다. 그러고 나서 가만히 보니까 그 지역이 남해안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곳이었다. 여수 옆이 진주고, 진주에서 더 동쪽으로 가야 통영이 있다. 통영에 남해안 별신굿이 있다. 경상도임에도 불구하고 음율이 진도의 것과 완전히 똑같다. 아주 놀라운 발견이었다. 이번에 하동에 있는 중·고등학생들이 참여한 적이 있다. 이들과 함께 같이 식사를 하면서 이상하게 이 사람들의 느낌이 전라도 느낌 같다고 느꼈다. 학부형들도,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그 느낌이 전라도 느낌이었다. 하동도 경상도 지역인데, 전라도 느낌이 나는 것이 왠지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물었다. 왜 사람들이 전라도 사람 분위기 같으냐고. 돌아오는 대답이 지금은 행정구역상 경상도 정해놔서 그렇지 예전에는 다 남도 지역이라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 끝에 하동 아리랑도 만들어주기로 하고 약속을 하고 왔다.
완주나 전주를 봤을 때 전라북도에 사는 완주에 사는 사람은 어떤 성정을 가졌을까 어떤 인성을 가졌을까. 집약된 것이다. 풍수고 뭐고 다 합쳐져서 사람의 '느낌'이 제일 중요하다.
아리랑이 지역의 온화한 성품을 닮은 가락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이런 작업을 하는 것이 왜 중요하냐면 자기의 본(本)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내 근본이 아닌 것은 성공을 못한다.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외국인이 판소리를 백년 한다고 한들 간지가 나겠는가?
지금 우리는 문화적으로 노예국가다. 세계적으로 한류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하는 것이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점이 우리의 색을 가지고 간 게 아니라 우리 민족이 재주가 좋아 서양문화를 잘 베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각 지역마다 자생적으로 고유한 자기다움의 뿌리를 아리랑이라고 하는 회복해서 그 근거를 가지고 곡을 만들기 때문에 얼마든지 미래에 경제적이든 뭐든 성공할 수 있는 토대가 탄탄한 것이다. 여러분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 노래를 가지고 멋진 미래를 창출할 수 있다. 온고을 아리랑을 가지고 우리는 세계 최고 만들 수 있다. 간단한 곡 하나 안에 들어있는 노래인자가 세계 최고의 문화도시를 만들 수 있다.
나는 아리랑을 거울이라고 생각한다.
왜 거울이냐면 아리랑 노래를 부를 때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슬플 때 부르면 그 슬픔이 얼굴에 묻어나고, 아리랑을 통해 슬픔이 정화가 된다.
기쁠 때 부르면 기쁨으로 마음이 정화된다.
그렇게 아리랑을 통해 마음이 정화되기도 하면서 중심을 잡게 해준다.
세계최고 예술민족이라는 자부심
일본에서 인터뷰를 했던 92세 할머니가 그런 얘기를 했다. 위안부로 끌려온 한국사람들이 일곱 명이니까 가끔은 다투기도 한다는 것. 그럴 때 누군가 한 사람이 아리랑을 부르기 시작하면 싸움을 멈추고 아리랑을 다 따라 부른다는 것이었다. 제가 그 대목에서 울었다. 이처럼 아리랑이 갖고 있는 음악성이 평화요, 사랑이라고 느꼈다. 저는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는데 그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무릎을 탁 치게 됐다. 내가 생각한 음악의 기능이란 이런 것이다. 바로 음악이, 아리랑이, 평화와 사랑의 DNA인 것이다.
싸우던 사람들을 싸울 수 없게 만드는, 다 같이 하나가 되게 만드는 그런 기능을 거기서 확인을 했다. 제 평생 운 적이 몇 번 안 되는 데 복 받쳐서 저절로 눈물이 났다.
이 아리랑이 중국에 조선족이 있기 때문에 아리랑 세계문화유산을 중국 자체 문화재로 등재를 해놓고 유네스코에 자기들이 먼저 등록하려고 한 적이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아무것도 손을 못 쓰고 있었다. 우리는 대체 뭐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다행히도 중국이 권고 조치를 받게 돼 우리나라 한국의 이름으로 '아리랑'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다.
한 30년 전쯤에 프랑스 파리에서 전 세계 전통음악 겨루기를 했다. 전통음악이 많은 세월 동안 전해져 내려온 음악을 뜻한다. 음식으로 말하면 발효 음식처럼, 새롭게 작곡자가 누가 있고 한 음악이 아니라 구전으로 전수되었던 그 전통음악, 그런 낡은 구닥다리 음악 겨루기를 했었다. 우리나라는 '수제천(壽齊天)'을 갖고 갔다. 수제천이란 음악은 백제시대 때 정읍에 살던 한 여인이 행상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내용이다. 그 고개에서 신랑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그리움의 노래다. 정읍사라고 하는 시가 바로 그 노래다. 이 노래가 시간이 흐르면서 가사가 사라지고 악기 연주곡으로 전수되어온 것이다. 조선시대 때 음악을 정비해 이 아주 소박한 한국여성의 러브 스토리가 '전하 만수무강 하시옵소서'의 뜻을 지닌 거창한 대규모관현악합주곡 '수제천'으로 탈바꿈한다. 그리고 그 대회에서 우리나라의 수제천이 그랑프리를 받았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가 세계최고의 예술 민족이라는 게 여기저기서 다 입증이 된다는 것. 우리만 모른다. 놀라운 점이 음악전문가들이 우리나라의 음악을 높게 평가한 게 더 놀랍다. 서양 사람들은 신과 음악을 분리해서 생각한다. 천상의 음악이라는 것은 신의 음악이라는 뜻이다. 천국의 음악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인간이 이런 음악을 만들 수 있냐는 것이다. 이렇게 평가하는 것을 최고의 전문가들이 극찬을 넘어선 신의 음악이라고 할 정도로 다른 지역의 음악과 비교가 안 된다. 우리 아리랑 민족의 긍지를 느낄 수 있는 대목들이다.
'우리다움' 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가슴깊이 애정을 갖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모든 것은 사랑이다. 사랑이 가장 순수한 열정을 낳는다. 하지만 애정을 가지고 내 주변에 대한 사랑, 내 지역에 대한 사랑 이런 것들을 가지고 기획했을 때 스스로도 행복해질 수 있고, 다른 사람들도 함께 행복해질 수 있다.
요새 이런 생각을 한다. 아리랑 축제를 전라도에서 해볼까. 전국에서 해볼까. 어쨌든 제가 아리랑으로는 최선봉이다. 그러니까 어디에서든지 해볼 수도 있겠다는 마음을 굳게 먹게된다. 나는 아리랑을 거울이라고 생각한다. 왜 거울이냐면 아리랑 노래를 부를 때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슬플 때 부르면 그 슬픔이 얼굴에 묻어나고, 아리랑을 통해 슬픔이 정화가 된다. 기쁠 때 부르면 기쁨으로 마음이 정화된다. 그렇게 아리랑을 통해 마음이 정화되기도 하면서 중심을 잡게 해준다. 그래서 아리랑은 자기를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거울 같은 음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