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4 | [시]
봄눈이 녹은 그 자리
정윤천(2003-09-23 10:10:43)
봄눈이 녹은 그 자리
정윤천
목 쉰 확성기 가래 끓던 목청으로 아침부터 이미자가 울었지
젊어 한 때는 외줄타기로 펄펄 날았다는 표파는 늙은 구렛나룻이 들려준 인생이 어쩌고 하던 어두운 투덜거림은 가뭇하지만 식초를 먹여 키웠을 거라던 팔목이 여린 그 계집애가 펼쳐보여준 몸짓 아슬한 슬픈 아름다움은 난장바람에 허리를 잔뜩 부풀린 가설천막이 사라진 뒤에도 봄눈이 스러진 그 자리에 솜사탕 낡은 솜틀이 들어설 때까지 구장터 찬바람 속을 흘러다녔지 생각하면 표팔던 녹슨 수염의 그 아저씨는 인생에 서린 비감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봄눈을 닮은 그 작은 계집아이의 안쓰러운 발바닥위에 위태롭게 흔들거리던 물구나무 선 물컵과도 같았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