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여주인공은 대개 예쁘고 날씬하다. 간혹 뚱뚱하거나 못생긴 캐릭터가 주연으로 등장하더라도, 그녀들은 어떤 계기를 통해 환골탈태하기 마련이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 SBS 주말드라마 <미녀의 탄생>에서 김아중과 한예슬은 모두 전신성형을 통해 '미녀'로 거듭났고, 예뻐진 외모를 발판(?)삼아 진정한 사랑을 이뤘다. 외모가 경쟁력인 사회에서 이런 이야기는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것처럼 느껴진다.
현재 방영중인 MBC 수목드라마 <그녀는 예뻤다>의 얼개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폭탄머리와 주근깨 등을 통해 역대급 못난이 캐릭터로 변신한 황정음은 드라마가 중반을 넘어가는 8회 말미 잃었던 외모를 되찾고, 주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다이어트나 성형은 아니지만, 어쨌든 '못생긴' 김혜진(황정음 분)이 '예쁜' 김혜진으로 변신하면서부터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촌스러웠던 김혜진의 패션은 꽤나 '모스트(드라마 속 패션잡지)'스럽게 변했고, 꼬불꼬불했던 곱슬머리 역시 약간의 돈을 투자함으로써 윤기와 찰랑거림을 장착했다. 유전자의 저주 탓에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붉은 볼과 주근깨는 또 어떠한가. 메이크업이라는 아주 단순한(?) 장치를 통해 감쪽같이 없애 버린다.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던 김혜진은 이제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8회라는 다소 긴 시간동안 '못생긴' 여주인공을 견뎌야(?)했던 시청자들 역시 김혜진의 달라진 외모에 꽤나 만족해하는 분위기다. 부족한 외모 탓에 온갖 설움을 감내해야 했던 만큼, 이제는 예뻐진 그녀가 세상을 향해 통쾌한 반전을 선사해줄 것이라 믿는 것이다. 또한, 외모가 예뻐진 그 순간을 기점으로, 그녀의 첫사랑인 지성준(박서준 분)과의 관계도 급진전되고 있는 만큼, 이야기는 앞으로 더 흥미로워질 것이라 생각한다.
16.7%(닐슨코리아 전국기준)라는 9회 시청률이 말해주듯, 드라마의 인기 또한 뜨겁다. 마의 시청률이라 불리는 20% 돌파도 시간문제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수직 상승하는 시청률 그래프와는 별개로, 끝내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하나 존재한다. 그건 바로 '정말로 김혜진은 예뻐져야 했을까?'하는 점이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이 드라마에서 황정음이 왜 꼭 예뻐져야 했는지, 그리고 예뻐질 필요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드라마에서 '혜진바라기'로 나오고 있는 '똘기자' 김신혁(최시원 분)의 말처럼 김혜진은 예쁘지 않아도 충분히 예쁘다. 그녀는 자신의 실수와 잘못에 대해 사과할 줄 아는 용기를 갖췄으며, 타인의 부탁을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또, 녹초가 된 몸으로 버스에 올라도 몸이 불편한 할머니께 자리를 양보하고, 바쁜 일상에서도 파란 하늘을 올려다 볼 줄 아는 여유가 있다. 외모는 부족해도 내면의 아름다움을 갖췄고, 사람 자체로서의 매력도 뛰어나다. 누구보다 예쁘고 선한 마음을 지녔기에, 지성준과 김신혁 모두 그녀에게 조금씩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예뻐진 혜진을 향해 신혁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잭슨(드라마 속 황정음 별명)같지 않다"며, 곱슬머리와 주근깨를 돌려놓으라고 외친다. 외모가 예뻐짐으로써 오히려 그녀의 매력이 죽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쁜' 김혜진도 좋지만, '못생긴' 김혜진이 더 그립다.
물론, 김혜진이라는 캐릭터의 외모 변신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녀는 역변한 자신의 외모를 비관하며 첫사랑 앞에도 떳떳이 나서지 못하고, 자신의 존재를 감추기 바쁘다. 허나, 중요한 것은 그녀의 외모가 예뻐지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렸던 자신감을 되찾는 일이다. 물론, 외모가 예뻐지면 없던 자신감도 생겨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상에 떠밀려 살아온 그녀가 삶의 주체임을 깨닫고 보다 더 당당히 발걸음을 떼는 일이 아닐까?
외모지상주의에 통쾌한 한방을 날려주길 기대했던 드라마가 결국 '기승전외모'로 귀결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예쁘지 않아도 괜찮다. 잘나지 않아도 괜찮다. 세상에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얼마든지 있다. 벌써부터 그리워지기 시작한 '못생긴' 김혜진이 그걸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야기 막바지에 이르러 다시금 악성곱슬과 주근깨 가득한 우리들의 '잭슨', 김혜진으로 '역변'해 주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