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못 읽겠다.'
소논문에 쓸 자료를 찾기 위해 도서관의 책들을 뒤적이다가 문득 든 생각이었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내가 도대체 왜 이럴까, 내가 왜 책을 못 읽게 됐을까' 동시에 학위논문을 쓸 일이 막막해졌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아무 약속 없이 쉬는 날에는 방안에 틀어박혀 책을 읽는 것이 하나의 즐거움이었고, 책 읽는 것에 대해 이렇다 할 부담이나 초조함도 없었건만, 지금은 책 한 권 읽는 게 이렇게 벅차다니. 이건 분명 큰일이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지금의 나는 스무 페이지짜리 챕터 하나를 읽는 것도 숨이 막힌다. 책을 덮고 싶은 충동을 꾹 눌러 참고 챕터 하나를 읽어내면 작은 한숨과 함께 핸드폰을 꺼낸다. 책을 읽는 그 사이에 카톡 몇 개가 와있다. 사이버 망명을 한 친구로부터 텔레그램도 몇 개 와있다. 성심성의껏 답장을 해준다. 그리고 오늘이 내가 매주 챙겨보는 웹툰이 연재되는 날임을 기억해내고는 얼른 웹툰 어플을 켜고 읽는다. 포털사이트 메인에 뜬 기사도 몇 개 읽어본다. 다이어트와 운동의 상관관계와 같은 흥미로운 연구결과도 보이면 읽어본다. 죄책감에 핸드폰을 끄고, 이번엔 관련 논문을 다운받으려 아이패드를 꺼낸다. iOS를 업데이트 하라고 한다. 어떤 부분이 개선되었는지 대충 훑어보고 도서관 와이파이를 빌려 업데이트를 한다. 기다리는 시간이 싫어 다시 핸드폰을 꺼낸다.
흥미롭고 자극적인 글들이 넘쳐난다. 잠깐의 지루함도 느낄 틈이 없다. 보는 순간 직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바스락거리는 종이 책장을 넘기는 일이 왜 숨 막히게 느껴지는지 알만하다. 내가 원하는 것은 직선 고속도로인데, 책은 빙 돌고 휘 돌아 목적지에 닿는다. 시간은 가는데 나는 아직 핵심까지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초조함이 주의를 흔들어 놓는다.
가지고 놀 것이 많이 없던 어린 시절, 나는 위인전을 읽으며 내가 조선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을 유감이라고 생각했다. '그 땐 앉아서 책만 열심히 읽으면 과거 시험에 합격할 텐데, 나는 지금 수학도 해야 하고, 과학도 해야 하는구나'라는 바보 같은 생각을 했다. 정말 철없고 말도 안 되는 생각이지만 그 때는 그만큼 읽는 것이 재미있었다. 적당한 심심함도 있었고, 달디 단 주말의 오후도 길게 느껴졌다. 너무 빠르기만 한 지금은 없는 지루함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 우리 반 어떤 친구가 『퇴마록』이라는 무협 소설을 읽다가 문학 선생님께 들킨 적이 있었다. 들켰다고 보기도 그런 것이 그때는 수업시간도 아닌 쉬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 친구는 선생님께 혼쭐이 났다. 그렇게 재미만 잔뜩 들어간 책을 보다보면 정말 좋은 책은 재미가 없어서 읽지 못하게 되어 버린다고 말이다. 나는 선생님이 유난을 떠시는 것이라고 넘겨버렸다. 재미있는 것 좀 본다고 나중에 좋은 책을 못 읽게 된다니. 그 때는 전혀 납득하지 못했다.
유난히 기계를 좋아하는 나에게 스마트 폰과 태블릿PC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하루 종일 액정 안에서 쏟아지는 정보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얼마든지 유용하게, 요긴하게 쓸 수 있었건만 나는 허투루 사용한 끝에 글 읽는 법을 까먹게 되었다. 나는 이제 책 읽는 법을 다시 배우려 한다. 졸업을 하려면 읽어야 할 책이 한 트럭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지나치게 현실적인 이유이기는 하지만 그보다 확실한 동기는 없지 않은가.
다시 책 읽는 법을 깨치게 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이렇게 어리석고 한심한 생각을 지금 하고 있다. 나는 앞으로 조금 지루해 질것이고, 느려지려고 한다. 시간 걸려 책 읽는 것에 대해 느끼는 근본 없는 초조함과 답답함을 이제 털어버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