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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 | 연재 [커피 청년의 별별여행]
기차에서 만난 신(神)
김현두(2015-11-16 15:32:05)

 


이름도 모른 채 이 녀석과 열차 안에서 초콜릿을 나눠먹었다. 이래 뵈도 길가에서 산 거 아니고 나름 인도에서도 초콜릿으로 유명한 우띠(Ooty)에서 사온 것이었다. 처음에는 눈치만 보더니 얼른 받아서 입으로 가져가는 녀석, 이름도 모른 채 이 녀석과 마주앉아 나눠먹은 초콜릿 몇 개가 그리워진 오늘. 그날을 기록한다.

얼마나 지나쳤을까? 수많은 들과 산, 계곡들을 말이다. 아니 그보다 많은 사람들과 짜이와 커피를 파는 아저씨들과 도시락을 파는 행상들…. 어쩌면 그보다 더 많았을 도둑원숭이들까지 말이다. 그렇게 하루를 꼬박 달렸을 것이다. 창문 밖 풍경을 마주하던 녀석이, 보이는 모든 것이 처음인 것인 마냥 기차 밖을 보며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그 아이는 말이야. 나를 문틈사이로 바라보듯 빼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빤히 쳐다보며 시종일관 나에게 시선을 두고 있었다. 그때였을 것이다. 아이의 눈을 바라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내가 여행을 떠나왔다는 것이 실감이 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기차는 또 달렸지만 아직도 목적지에 다다르지 않았다. 인도에서는 이런 상황이 흔한 모습이겠지만 낮선 땅에서 날아온 이방인인 나에게는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는  중일뿐이었다. 어젯밤 출발했던 기차는 이른 아침이 되자 어딘 줄 모르는 역에서 멈추더니만 떠날 생각을 않는다. 내가 가야할 목적지는 아직 더 남아있는 것 같은데 말이다.


그때 한 쪽 침대칸이 분주하게 돌아간다. 어젯밤 보았던 한 인도의 젊은 여인이 알아들을 수 없는 그들의 언어로 노래를 한다. 덩달아 다른 사람들도 같이 노래를 하고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되도 않는 영어실력으로 어렵게 입을 때고 하루 내 같이 기차를 탔던 인도대학생 남자에게 물었다. 저들은 왜 아침부터 노래를 하며 모이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잠시 후 내 궁금증들은 하나둘씩 풀리기 시작했다. 한 켠에 수녀님으로 보이는 분이 앉아계셨고, 영어로 노래를 하는 그들의 노랫말 속에 "GOD(Jesus) is in my heart"라는 짧은 문장하나가 들려왔다. 흔들리는 기차 안에서 그들은 예정된 시간이면 늘 그렇게 그 들안의 신을 만나고 있었다. 그들의 고백을 들으며 순간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하고 흘러내렸다. 자세를 바로잡고 나는 기도를 올린다. 시간과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고, 시간이 되고 때가 되면 신에게 다가가는 그들의 모습을 마주한다.

기차는 다시 출발하고 철길을 달리는 열차바퀴의 쇠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여인들의 찬양소리와 다시 커피와 짜이를 파는 행상들 웃고 떠드는 창가의 젊은 인도 청년들의 웃음소리까지 모든 것이 내 귓가에 들려온다. 신을 믿는 수많은 이 도시의 사람들은 상황과 시간, 형편에 따라 신을 만나는 것은 아닐까? 나또한 그런 삶을 살고 있고 말이다.

정말 신을 믿는다면 이들처럼 믿고 싶어졌다. 삶의 가장 기본이 되는 곳에서부터 간절함이 묻어나오는 삶, 그리고 그 삶의 전부가 될 수 있는 그런 자세가 있었으면 좋겠다.
여행에 대하여 이야기 할 때마다 사람들은 어딘가로 부터의 떠남이나 일탈, 정착하지 않는 무엇인가로 여행을 이야기한다. 내가 그들에게 요즘 그렇게 보일지 모르겠다. 나에게서 시작되었던 여행을 나에게로 집중하는 중인 요즘이다. 내가 지금 집을 나와 제주도에 있지 않고, 다른 이방인들의 도시에 있지 않다고 하여 어찌 나를 가두려고만 하는가? 나는 지금도 여행 중인데 말이다. 그 때 알았다. 별 것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아이가 나를 바라보고 기차 밖을 바라보며 놀란 표정을 짓지 않았다면 나는 그냥 아무렇지 않은 하루를 살았을 것이다.


기차를 타지 않고도 시골 카페 안에서 바라보는 창가 밖 세상은 늘 놀라움의 연속이고, 그 안으로 들어오는 세상의 사람들은 내게는 늘 여행이다.

떠남은 늘 옳았지만 머무는 것을 잘 하는 것도 진정한 여행이다. 나의 하루는 늘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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