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숙(58) 씨는 불과 몇 년 전까지 농사에 단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보지 않았다. 아버지가 땀 흘려 지은 농사로 밥을 먹고 학교를 다녔지만, 농사는 그에게 그저 먼 남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쉰여덟의 나혜숙 씨는 현재 귀농 전도사가 되었다. 누구보다 농업에 관심이 많아, 벌써 네 번째 농업대학을 다니는가 하면, 귀농한지 3년 만에 '귀농 멘토'로도 이름을 날리고 있다.
농사는 생각지도 않았던 삶
나혜숙 씨가 귀농한 것은 지난 2012년이다. 이제 딱 만 3년 정도 되었다. 귀농 전까지는 수지침 전문강사로 30여 년간 활동해 왔다. 생활도 남부럽지 않을 만큼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이 보인다는, 도작문화의 중심지 김제에서 나고 자라는 동안에도 그에게 농업이란 그저 미래가 암울한 남의 일일 뿐이었다.
"뉴스를 봐도 그렇잖아요. 예전 우루과이라운드를 비롯해서 FTA가 어쩌네 하면서 농촌이 어렵다고 그러고, 제가 실제로 봤던 것들도 고속도로 점거한 농민들 시위나 시청에 가서 쌀 불태우고, 배추밭 갈아엎고 그런 것들만 봤으니 농촌이 어렵고 농업의 미래가 암울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죠. 당연히 제가 농업에 뛰어드리라는 생각도 전혀 못했고요."
그런 그가 농촌과 농업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된 계기는 수지침 전문강사로 마을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여러 농촌마을들을 돌아다니면서부터다. 강의를 하기 위해 찾아가는 마을마다 새로 지어진 번듯한 공장이며 체험시설들이 있었고, 수지침 강의를 듣는 농민들의 얼굴엔 웃음꽃이 피어있었다. 그동안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무슨 일인가 싶었다.
아들의 진로를 함께 고민하다 보게 된 뜻밖의 가능성
당시 스무 살이던 그의 둘째 아들이,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그 때 딱 하고 농업이 떠올랐다. 농촌마을에 들어가 직접 달라진 현실을 본 그로서는 그만큼 가능성 있는 미래도 드물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정확하게 확인은 해봐야할 일.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농업기술센터를 찾아갔다. 거두절미하고, '농업에 미래가 있느냐'고 물어봤다.
그렇게 확인을 하고, 아들을 불러 농사를 지어보라고 했다. 하지만, 아들은 예상대로 단박에 거절했다. 문턱이 닳도록 농업기술센터를 들락거리며 다양한 정보들을 얻어왔다. 그냥 던져주며 읽어보라고는 할 수 없어, 함께 공부하고 토론했다. 공부하면 할수록 정말 무궁무진한 가능성들이 엿보였다.
드디어 아들이 귀농을 결심했다. 그런데 막상 현재 농사를 짓고 있는 집안도 아니고, 선뜻 어린 아들 혼자 하라고 할 수는 없었다. 나혜숙 씨도 아들과 함께 귀농하기로 마음먹었다. 농사의 기본은 체력! 그 길로 대학 다니던 아들은 주 3일은 수업을 받고 주 3일은 공사판에 다니며 농사에 필요한 기초체력을 닦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귀농의 첫 준비였다.
"나는 실전 농사를 배울 테니, 너는 학문을 쌓아라"
귀농준비의 다음 단계는 공부였다.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던 아들에게는 농대 원예학과를 복수전공하여 기초적이고 학문적인 토대를 쌓을 것을 주문했다. 그리고 자신은 실전 농사를 배우기 위해, 지평선 대학을 다니기로 했다.
지평선 대학에 다니기 위해서는 '농지원부'가 있어야했다. 알아보니 가족들 앞으로 된 땅들이 여기저기 좀 있었다. 다 모아보니 3천 평 정도 되었다. 10년 넘게 묵은 땅을 중장비까지 동원하여 몇날며칠 동안 개간하여 농지원부를 발급받고, 드디어 지평선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배운 것은 '전통장류'였다. 30년 동안 수지침만 하다가 새로운 것을 배우니, 그에게는 딴 세상이 펼쳐진 것 같았다. 자격증도 따고 콩도 많이 심었다. 정말로 장류사업을 해볼 요량이었다. 내친 김에 지평선 대학 졸업 후에는 막 생겨난 벽성대학의 발효식품과에 1기로 입학하기도 했다.
벽성대학에 다니면서, 새로운 욕심이 생겨났다. 농업기술을 배워야겠다는 것이었다. 이번엔 전북농업마이스터대학에 입학했다. 벽성대학을 다니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니까 두 개 대학을 동시에 다닌 셈. 전북농업마이스터대학에서는 고추를 전공했다.
"안 심어 본 것이 없고, 안 망해 본 것이 없어"
고추를 또 몇 백 평 심었다. 고추만 심은 것이 아니었다. 귀농을 한 2012년부터 마늘, 파, 무, 양파, 도라지, 더덕까지 웬만한 것은 다 심었다. 다 실패했다. 처음 심었던 콩부터 그랬다. 몇 백 평 콩밭이 태풍 한 번에 쑥대밭이 되었다. 그런데 그건 서막에 불과했었다. 준비보다 행동이 앞섰던 탓이다.
"재배 방법도 모르면서 이것저것 다 심어놓고, 또 유기농한다면서 비료도 안 쓰고, 지금 생각해보면 도저히 안 망할 수 없는 길로만 갔었던 거죠. 저는 정말 실패를 많이 했어요. 그냥 실패를 한 것이 아니라 정말 처절하게 실패해왔죠. 김제에 귀농·귀촌한 사람이 약 7천 명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 중에서 저만큼 실패 많이 해본 사람은 없을 거에요. 오죽하면 아들이 우리는 농사에 관해서는 저주를 받은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실패하고 나면, 꼭 그 원인은 알아냈다. 죽은 작물을 들고 교수를 찾아가기도 하고, 사진을 찍어 보내 원인을 묻기도 했다. 그렇게 2년 동안 실패만 하다가 지난 2014년 처음으로 특용작물인 초석잠을 재배해서 2~3천만원을 벌었다. 처음이었다. 덕분에 자신감을 얻었다. 그동안 숱한 실패의 경험과 실패의 원인을 찾아나가는 공부를 통해 농사에 감도 잡았다.
"이제 농사에는 정말 자신 있어요. 지난 해 초석잠 성공 이후로 올해 농사는 정말 잘 짓고 있습니다. 자연퇴비도 직접 만들어 쓸 줄 알 정도에요. 작물 고르는 법도 이제 좀 알 것 같고요."
나혜숙 씨는 현재 김제시 귀농 멘토로 활동하고 있다. 아주 인기 있는 멘토다. 남들 같으면 30년 동안 경험했을 지난 3년간의 실패와 배움을 토대로 예비 귀농인들의 가려운 곳을 제대로 짚어준다. 그 누구보다 실패를 많이 해봤기 때문에, 이제는 망하는 길로 가고 있는 사람은 한 눈에 딱 보인단다.
재배를 알 것 같으니, 이제는 판로가 문제
나혜숙 씨의 요즘 고민은 판로다. 아무래도 위탁판매 하는 것보다는 직접 판매 하는 것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귀농하면서 시작한 블로그에는 지난 3년간의 귀농일지가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다. 블로그를 기반으로 현재는 페이스북과 요즘 유행하고 있는 밴드를 열 개나 운영하면서 소비자들에게 직접 홍보하고 있다. 지난해 겨울에는 쇼핑몰도 개설했다. 온라인 홍보나 SNS 같은 것을 배운 적도 없다. 그냥 필요하니까 직접 부닥쳐 하고 있다. 김제 시내에 있는 사무실 한쪽에는 즉석제조가공장비를 들여 놓고, 남은 작물들을 발효시켜 환이나 즙으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그 사이 그의 가장 든든한 동지인 아들은 어엿한 농사꾼이 다 되었다. 한가할 때면 농사용 트럭을 타고 나가 데이트도 하고, 취미로 친구들과 공연도 다닌다. 그런 아들과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늘 이야기 한다. 가끔 생각이 달라 부딪치기도 한다.
"또 새로운 욕심이 생겼어요. 농가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것이에요. 제가 직접 재배한 농산물로만 음식을 만드는 거죠. 그럼 판로까지 한 번에 다 해결되잖아요. 그런데 아들은 지금 농사 욕심에 푹 빠져 있어요. 밭에 가면 아들이 내년에 씨앗으로 쓰겠다고 표시해 놓은 작물들이 있는데, 보면 몇 만평은 심을 정도로 많아요."
하지만 한번 농가레스토랑에 꽂힌 이상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나혜숙 씨는 현재 전북농업마이스터대학에서 친환경채소를 전공하고 있다. 농가레스토랑을 운영하기 위한 준비단계다. 지난 1학기 때는 과수석의 영예를 안을 만큼 열심히 하고 있다. 나혜숙 씨는 이번에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혹여, 실패하더라도 언젠가는 그 실패가 큰 자산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귀촌을 꿈꾸는 이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
"성공의 관건은 인내심"
귀농을 꿈꾸는 많은 사람들을 봤다. 하지만, 농촌은 막상 와보면 막연히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 절대 낭만적이지 않다. 전쟁이다. 잡초와의 전쟁이다. 나는 밭고랑에 한번 들어가면 12시간씩 앉아 잡초를 뽑는다. 그 전쟁을 치를 준비가 되어 있으면 와라. 다만, 인내심만 있으면 어떤 어려움이 오더라도 결국 성공하게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