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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4 | [문화칼럼]
'국악의 해' 유감
이기우 전 전북대 교수(2003-09-23 10:03:14)
금년을 '국악의 해'라고 정해놓고서 갖가지 방향에서 우리 전통 음악의 발전을 도모코자 한다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고무적인 일이요, 어찌 보면 이를 계기로 해서 우리 전통음악이 중흥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춤의 해'라고 했던 작년의 모양이라든지, 이 해도 벌써 4분의 1이 지난 오늘의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별로 기대할 것이 못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이 나만의 독단은 아닐 듯하며 이 방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다수의 인사들의 예상도 비슷한 듯해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무슨 연중 행사인양 겉치레만 번지르한, 그리고 명목상의 나열이나 단순한 감상적 외침에 그칠 가능성이 있어 보여 크게 염려스럽다. 이렇게 생각하는 근거를 대자면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으나, 우선 먼저 떠오르는 핵심적인 문제는 이렇다. 즉 우리는 '음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음악'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우리의 삶고 '음악'이라는 것이 어떤 관계에 있으며 또 있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올바른 공유된 의식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것은 본질적인 문제이므로 그만큼 심각성도 크다. 따지고 보면 이른바 '국악의 헤'라는 것을 정해놓고서 운운한다는 것 자체가 묘한 뉘앙스랄까 정말 씁쓸한 맛조차 풍긴다. 여기서 말하는 '국악'이란 물론 '우리음악'을 지칭하는 것이겠는데 이 세상 고금 어디에 제 민족의 음악의 해라는 것을 스스로 정해야 하는 민족이 있을까 싶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국악의 해'라는 발상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또는 오죽했으면 이런 짓을 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그리고 '국악'이라는 용어만 하더라도 이제는 저항감마저 불러일으킨다. 필시 이 말이 처음 쓰이기 시작한 것은 8.15광복 직후부터 이었을 것이다. 우리말을 '국어'라 하고 우리 문학을 '국문학'이라 하는 식으로 자못 자랑스럽고 떳떳함을 처음에는 풍겼을 것이다. 그러나 반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비근한 예로 그냥 '음악'이라 하면 이건 '서양 음악'을 지칭하고 '국악'이라 하면 우리 전통 음악을 지칭하는 것이 이 땅의 공동체에서는 하나의 관습이 되었다. 그냥 '문학'이라 하면 서양문학을 가리키고 '국문학'이라 하면 한국 문학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그런데 유독 음악만은 그런 식으로 거의 굳어져 버렸다. 이것이 현재 우리의 실정이다. 이런 바탕에서 '국악의 해'를 운운해 보아야 결과는 뻔하다. 어찌 보면 누워서 침 뱉는 꼴이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이런 사고방식 등을 그대로 놓아두고서 '국악의 해'라는 것을 운운하면서 시끄럽게 해보아야 한낱 구두선에 그칠 것임은 명약관화한 노릇이다. 문제는 그런데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어떻게 음악가?'라는 문제 곧 인가의 본질은 무엇인가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올바로 인식하고 그 바탕 위에서 정당하게 대처하는 길밖에는 도리가 없을 것 같다. 여기서 '음악미학'이나 '음악예술론'을 펴자는 것은 아니다. 또 그럴 자리도 겨를도 없다. 다만 여기서 꼭 내세워 주장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삶과 음악이라는 것은 매우 밀착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삶의 방식과 음악은 따로 분리되거나 독립해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음악이 잘못되면 우리 삶도 따라서 잘될 수 있다는 말이 되며, 그 역도 성립한다. 요체는 여기에 있다. 또 음악이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면 우리의 삶도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만다. 남의 문화 곧 우리와는 그 뿌리와 바탕이 원초적으로 이질적인 삶에서 생겨난 음악을 덮어놓고 우리가 따르고 배우고 하는 것은 남의 삶을 사는 것이 되는 것임을 우리는 까마득히 잊고 있다. 각설하고 적어도 이 같은 원리를 바탕으로 해서 '국악의 해'를 설정, 추진해야 그 겨냥하는 바가 뚜렷해 질 것이며, 따라서 방향도 절로 분명해질 것이고 결과도 예측 가능하게 될 것이다. 그런 의식 없이 -극히 소수의 그룹을 제외하고는- 덮어놓고 '국악'만을 소리 높여 외쳐댄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유명한 민족 음악학자인 네틀(Nettl)은 그의 저서『세계음악에 대한 서양의 충격』에서, 서양음악을 거의 100%받아들여 제 것인 양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대표적인 몇 나라를 지적하고 있는데 슬프게도 그중에 한국이 꼽혀 있다. 나는 그이 단정을 거짓이라고 부정할 자신이 없다. 지금 우리는 그런 실정에 있는 것이다. 이런 판국에 '국악의 해'라 해 놓고서 이를테면 몇 가지 공연을 더욱 많이 개최한다든지 선동, 선전 곁들여 음반이나 국악에 대한 책자나 다수 찍어서 보급하면 되는 줄로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문제는 의식을 개혁하는 처절한 운동으로 전개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국악을 모르는 삶은 우리의 진정한 삶이 아니라는 의식이 국민 전체까지는 아니더라도 하불소 절반 정도라도 되어야 한다. 그래 가지고 나아가는 우리의 음악생활이어야 '국악의 해에 걸맞는 삶이 될 것이다. 창작이든 연주든 모두 이 바탕 위에서의 이야기다. 나는 끝으로 존 블래킹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하면서 '국악의 해'가 한낱 구두선에 그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 마지않는다. 음악은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인간 집단의 행동의 소산이다. 그것은 인간에 의해서 조작된 음향이다. 그리고 무엇을 음악이라고 보느냐에 관한 생각은 사회에 따라서 다른 경향이 있으며 그 정의는 어느 것이나 모두 음악은 조직된다는 원리에 관한 성원들 사이의 어떤 일치된 의견에 바탕을 둔다. 이 같은 일치는 경험에 어떤 공통 기반이 없다면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요컨대 우리 공동체의 의식이 지금 어떠한 것이며, '국악'을 우리의 참 삶과 밀착된 음악으로 받아들이도록 꾸준한 노력을 기울일 때 비로소 소기의 성과를 거둘 것이며, 따라서 우리의 삶도 심도 있게 이어질 것이다. 이기우 / 26년 익산 출생으로 연세대를 졸업하고 전북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했다. 문학이론을 전공하고 여려 번역서와 「민속음악」「민족음악학」「인지의미론」등을 펴냈다. 특히 판소리에 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판소리 연구에 오랜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현재 판소리 학회, 대한 고우회, 한국민족음악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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