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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 | 연재 [내가 만든 무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고 만지게 하다
국제무형유산영상페스티벌
박연실(2015-10-15 14:05:52)

 

 

 

페스티벌의 성공 여부는 이름을 각인시키는 것에 있다. 언제나 그렇듯 기억되거나 잊히거나. 그 각인은 이름을 납득시키는 과정이다.
국제무형유산영상페스티벌. 길고 어려운 이름이다. '무형'도 어려운데 바로 '유산'이 따라붙고, 거기다 무형유산축제나 무형문화재도 아닌 영상페스티벌이다. 지난해 처음 행사를 준비하면서 생긴 첫 난관, 그리고 올해 두 번째 맞는 행사의 난관은 여전히 이 길고 어려운 이름에 있다. 전화와 이메일, 우편물 등으로 오간 페스티벌의 수많은 오역들은 '무용유산페스티벌, 무역유산페스티벌, 무형문화재영화제, 무영유산페스티벌···' 등등 셀 수도 없다. 형체가 없어 쉽게 정의할 수 없는 무형문화 안에는 무용과 관련한 유산도 있고, 또 무역 같은 것도 있고 무형문화재 같은 전통의 시간도 포괄한다고 하면 뭐 딱히 틀린 이름도 아닐 것이다. 그럼 '무영유산'은 형체가 없어 그림자도 없다는, 꽤나 시적인 오역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름에 관한 장광설에는 나름 이유가 있다. 결국 무언가를 인식하는 일은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다. 비근한 예로 '내가 누군가를 불러주었을 때', 바로 그 호명을 통한 인식으로 관계의 꽃이 피어난다. 이 글이 '내가 만드는 무대'라는 의도를 고려할 때, 이제 두 번째 시간을 준비하는 우리의 무대는 길고도 낯선 이름을 안착시키는 과정이 될 것이다.
국제무형유산영상페스티벌은 지난해 첫 개최했다. 국립무형유산원에서 주최하는 국제무형유산영상페스티벌은 일반에게 비교적 낯선 개념의 '무형문화'를 알리고, 전통적 개념에서 벗어나 현재의 시간, 나아가 미래에도 유효한 유산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무형문화는 단어 그대로 형체가 없는 문화이다. 그래서 유형의 사물처럼 쉽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무형문화는 문화라고 하는 원형, 즉 공동의 기억이나 가치, 역사와 전통과 같은 테마들을 포괄하는 우리 모두의 토대라 할 수 있다.
지난해 국제무형유산영상페스티벌에서 상영했던 카를로스 사우라의 <플라멩코, 플라멩코>, <파두>는 각각 스페인의 플라멩코 전통과 포루투갈의 파두 전통을 담고 있다. 또한 아르헨티나의 탱고를 소재로 사랑의 관계를 은유했던 샐리 포터 감독의 <탱고 레슨>은 무형문화의 현대적 해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탱고 레슨을 통해 배움을 주고받는 탱고댄서와 영화감독은 가장 밀접하고도 강한 영향을 나누는 '사이'의 관계, 즉 사랑이라는 테마를 탱고라는 몸짓에 실어 표현한다. 포루투갈 민족의 슬픔의 정서를 노래하는 '파두'와 우리 민족의 한이 서린 '아리랑'이 단순히 음악적 선율만으로 한정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탱고'는 사랑과 관계의 주고받음, 뜨거운 피를 분출하는 정염의 또 다른 이름이다.
우리가 매혹되는 것은 그 아름다운 몸짓이 드러내는 '배경', 즉 무형의 틀에 있다. 국제무형유산영상페스티벌은 무형문화의 가치, 그 재료를 가지고 현재의 시간에도 그 가치를 되새길 수 있는 유효한 포맷을 만들고자 한다. 형체가 없는 문화, 보이지 않는 그것, 그것에 형체를 부여하는 과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무형을 담는 그릇이다. 또한 내러티브와 미학적 형식으로 재포장하여 형체 없는 것을 사각의 프레임으로 규정한 새로운 공간이다. 나아가 보이지 않는 것을 시청각적 재료와 자극들을 통해 감각하는 것. 아름다움을 통해 각인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올해 국제무형유산영상페스티벌은 서른 편의 영화를 준비했다. 국내외 신작들 중 새로운 형식과 시청각적 실험을 선보이는 작품들은 동시에 무형의 테마를 가장 효과적으로 새기는 무형의 공간이 될 것이다. 지난해 '스펙트럼'섹션을 통해 샤먼과 주술적인 것, 제사와 종교의식과 같은 무형의 테마를 영화와 전시로 풀어낸 것처럼, 올해는 구술과 설화, 신화와 같은 이야기(Fable)의 원형을 탐구한다. 무형의 풍경에는 향수와도 같은 애잔한 풍경이 서려있다. 보이지 않는 것을 감각을 통해 일깨우는 것은 결국 내 몸을 통해 어떤 시간과 공간을 호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무형의 풍경은 사라져가는 것의 향수이기도 하고, 누적되거나 잊혀진, 기억되거나 바래버린 시간의 결과 같은 것이다.
포루투갈의 작은 섬마을, 전통적 어업방식을 고수하며 마지막 풍경을 누비는 청년들의 모습이 고즈넉한 바다와 어우러지는 <섬의 노래>, 해녀 엄마가 물질하던 중 사라졌다가 곰이 되어 딸 앞에 나타나는 <그녀의 전설>은 작지만 깊은 울림을 준다. 한평생을 고된 물질로 자식들을 키워낸 엄마가 "이제는 산에 가서 살란다"하는 마지막 말은 죽음을 새기는 동시에 남겨진 사람들과 관계를 정리하는 방식이 된다. 그렇게 '그녀'의 '전설'은 곰에서 기원한 이땅의 모든 여자들, 엄마들의 전설이 된다. 미국의 마지막 카우보이들은 수천 마리의 양떼를 몰고 험난한 산맥을 넘는다. 늑대와 고독의 습격을 피해 몇 달간이나 지속되는 양몰이 카우보이들의 여정을 그린 <스윗그래스>는 가혹하리만치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운 자연을 담고 있다.
이렇듯 무형의 풍경은 결국 영화라는 체험이 주는 매혹이다. 풍경과 공간에의 매혹, 다른이의 시간에 내 시간을 포개어놓는 매혹과 같은 것들….
덧붙여, 요즈음 농담삼아 스탭들과 이야기한다. 일년 중 아주 잠깐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가을하늘 같은 것이야말로 남기고 기억해야 할 무형의 유산이라고.
깊은 가을에 만나는 국제무형유산영상페스티벌이 올해는 당신이 쌓는 시간과 기억에 자리하길 바란다. 지금 나의 시간이 당신의 시간과 교차하며 우리의 시간, 우리의 가을로 기억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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