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 | 연재 [장영란 김광화의 밥꽃 마중]
조
(2015-10-15 13:29:10)
저녁 어스름 동네 한 바퀴 걸어 돌아오는데 눈에 확 띄는 게 있다. '어, 저거 조 아닌가?' 그렇담 이게 웬 횡재냐! 하나 꺾어와 알아보니 이삭이 길지만 알갱이는 훨씬 자디잔 수강아지풀이다. '조'와 '강아지풀'의 잡종이란다. 조의 원형은 강아지풀!
조 알갱이는 강아지풀 알갱이보다는 크다지만 정말 자디잘다. 좁쌀 천 알의 무게가 3그램이 채 안 된단다. 벼과답게 외떡잎에서 꽃이삭이 올라와 아래에서 위로 점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걸 보노라면 이삭이 점점 무글무글 부푸는 것 같다. 꽃이 하도 작아 사람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꽃을 보려면 마음먹고 들여다보아야 한다. 강아지풀 모양의 둥근뿔이삭꽃차례 안에는 짧고도 작은 가지 수십 개가 달려있다. 그 가지 하나를 떼어보면 꽃 수 십 개가 송이모양으로 닥지닥지 달려있다. 겨우 그 꽃 하나를 골라, 루페로 들여다본다. 꽃잎도 꽃받침도 없이, 있는 거라고는 껍질과 암술 수술뿐. 하지만 그 속내가 단순한 건 아니다. 바깥껍질 한 쌍이 감싸고 있는 속에는 꽃술이 다 퇴화되어 사라지고 껍질만 남은 꽃 하나와 열매를 맺는 꽃 하나가 들어있다. 그러니까 두 개가 하나로 힘을 모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거다. 열매를 맺는 꽃에 암술은 1개, 수술은 3개. 바깥껍질에는 붉은 빛 도는 털(까락)이 3개 달려있는데 자세히 보면 알갱이보다 길게 곧추 서있어 열매를 보호하고 있다. 작지만 그 작은 세계에 흐르는 생명 질서에 따라 조는 영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