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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9 | 연재 [촌스런 이야기]
땀은 농부를 배신하지 않는다
군산 - 브로콜리 재배 김문태 씨
(2015-09-15 12:56:07)

 

 

“난 나중에 귀촌해서 살거야”

김문태(55) 씨는 평생을 고향인 군산에서 개인 사업을 하며 지낸 토박이다. 식당이며 PC방 등 돈이 되겠다 싶은 것들에 뛰어들어, 도시의 치열하고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며 살았다. 성공도 있었고, 실패도 있었다. 그러다 그의 나이 50이 될 즈음 작은 꿈이 하나 생겼다. 남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했을 법한 소박한 꿈, 나이가 더 들면 시골에 작은 땅 하나 사서 집 짓고 텃밭 가꾸며 살고 싶다는 것, 바로 귀촌이었다. 일상에 지칠 때마다 친구들을 만나 소주 한잔 나눌 때면, 늘 버릇처럼 그 말을 되 뇌이곤 했다.

2012년, 변화는 갑작스레 찾아왔다. 당시 그는 PC방 사업을 하고 있었다. 되겠다 싶어 여기저기서 자금을 끌어다가 무리하게 확장을 했다.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PC방에 손님마저 줄기 시작했다. 아찔했고,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그때 뜻하지 않은 제의가 들어왔다. 더 이상 재배할 사람이 없는 배 과수원을 한번 해보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시골 들어가 농사짓고 살겠다는 그의 말을 언젠가 우연히 한번 들었던 지인의 제의였다.

800평 규모의 작은 과수원을 PC방 운영을 하면서 재배했다. 성실함과 부지런함을 타고나서 시간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특기를 살렸다. 틈틈이 인터넷을 통해 배 재배법 등을 검색했다. 좋은 정보가 널려 있었다. 잘 지으면 1천만원 정도는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하필 그해 태풍이 훑고 지나가는 바람에 그 고생을 하고도 4백만원 밖에 벌지 못했다. 하지만 정작 수확은 다른 곳에 있었다. 배 재배를 위해 이런 저런 정보들을 검색하다가 농업의 가능성을 엿본 것이다. 평생 해왔던 사업가로서의 ‘감’이 딱 왔다.

 

“까짓것, 군대 유격 한 번 더 받는다고 생각하지 뭐”

‘귀촌’이 꿈이었던 김문태 씨는 이렇게 해서 그동안 해오던 사업들을 모두 접고 2013년 본격적인 ‘귀농’을 하게 되었다. 군산 시내에서 15분 거리의 농지 1천2백 평을 임대했다. 작물은 브로콜리를 선택했다. 특산물로 내세울만한 작물이 없던 군산이 육성책을 펴고 있던 작물 중 하나였다. 작목반이 구성되어 있어 재배에서부터 유통까지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는 점이 그에게는 크게 다가왔다.

처음부터 욕심을 많이 냈다. 1년간 배 농장을 운영하면서 생각해 두었던 가공과 유통도 함께 계획했던 것이다. 기본부터 충실 하라는 핀잔이 돌아왔다. 임대한 1200평의 농지에 지인을 쫓아다니며 배운 기술로 400평 규모의 하우스를 직접 짓고 다짐했다. ‘그래, 앞으로 3년 동안은 오직 작물 재배에만 모든 것을 걸어보자. 까짓것 군대 유격훈련 받는다고 생각하자.’

브로콜리는 1년에 단 두 번만 수확한다고 하여, 시험 삼아 상추도 함께 심었다. 그에게는 늘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작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새벽 다섯 시부터 시작되는 일과가 끝나고 밤늦게 집에 돌아오면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힘들만큼 녹초였지만, 버텼다.

 

농업도 정보가 힘이다

드디어 애지중지 키우던 상추의 첫 수확. 새벽부터 수확한 상추 12박스를 들고 공판장에 갔다. 1박스에 2천원 씩을 받았다. 그 다음날 들고 간 30박스는 1천원 씩 받았다. 상추 한 박스 수확하는데 부지런히 하면 한 시간, 박스 값만 600원 이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도시에서 생활할 때 내가 언제 이런 가격으로 상추를 사먹어 봤던 적이 있던가.’ 평생 해왔던 사업가로서의 기질이 발동되었다.

“원래 농사에는 계산기를 갖다 대면 안 된다고 하는데, 저는 데이터를 믿어요. 아마도 오랜 사업 경험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싶은데, 뭔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데이터가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 길로 가장 소비가 많은 채소 10품목을 골라서 일주일에 서너 번 씩 산지 값과 최종 소비자가를 비교하기 시작했어요. 최소 3배 이상이 차이 나더군요. 그렇게 몇 달 하다 보니, 때마다 달라지는 상추 값의 변동도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요.”

언젠가는 제값을 받고 팔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았다. 결국 그 해 그는 박스 당 3만8천원까지 받고 출하했고, 상추로만 1천만원의 소득을 올렸다. 그때서야 자신감이 생겼다. 앞으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그런 희망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견뎌냈다는, 그런 자신에 대한 대견함에서 오는 자신감이었다.

 

3년까지는 허리가, 그 이후에는 머리가

귀농 3년차, 올해 김문태 씨는 다시 한 번 큰 모험을 시도했다. 브로콜리를 대규모로 재배하기 위한 땅 5천 평을 더 임대하고, 트랙터도 구매했다. 동군산농협에 브로콜리 공동선별장과 저온창고가 생기면서 일을 덜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된 것이다.

“공동선별장이 있으니까, 일을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가공을 한꺼번에 하니까 품이 덜 들고, 대규모로 진행되니까 대형유통업체도 뚫을 수 있는 것이죠. 아무래도 재배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가공이나 유통에도 눈을 돌려야 합니다. 처음 3~4년까지는 농사에 허리가 중요하지만, 이후에는 머리가 중요하다는 것이죠.”

김문태 씨는 귀농 5년 차 때 연 소득 1억 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귀농 첫해부터 매년 목표치를 세워왔고, 또 매년 거의 오차 없이 목표했던 소득을 벌어왔다. 하지만 1억 원의 수익목표를 위해 무작정 농지만 늘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노동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고민하고 있는 것이 가공과 유통이다.

“많이 들어봤겠지만, 콩을 예로 들면, 콩을 재배해서 그대로 팔면 5천원 받을 것을 메주로 만들어 팔면 1만5천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걸 또 된장으로 만들어 팔면 3만원을 받습니다. 결국 부가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죠.”

요즘 그가 구상하고 있는 것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생산지 주문배송 사업이다. 이름 하여 ‘밭에서 식탁까지 12시간’이다. 인터넷을 통해 여러 채소의 주문을 받아, 새벽에 수확하여 바로 1일 택배로 보낸다는 구상이다. 우리나라 유통구조에서, 신선도가 생명인 채소들의 유통기간이 최소 3일은 걸린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올해 그가 여러 매체에 소개되면서 배우고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생겨, 그들과 함께 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보고 있다.

 

지금이 제일 행복해요

“저는 솔직히 돈을 벌기 위해 왔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일들을 해왔고요. 그런데 지금이 가장 행복해요. 자신이 있으니까요. 설령 한두 번 안 되더라도 다음에 잘해서 복구하면 된다는 것을 압니다. 육체적으로는 정말 힘들죠.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을 정도로 지치는 날이 많아요. 하지만 땀 흠뻑 흘리고 저녁 늦게 들어가서 샤워하고 캔맥주 한 모금 마시면, 정말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짜릿함을 느껴요. 아, 오늘도 내가 진짜 열심히 했구나 뭐 이런 느낌 같아요. 그러고 보면 농사가 저랑 맞나 봅니다.” 

올해 쉰다섯 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그에게 또 다시 작은 꿈이 생겼다.

“오십 대까지는 정말 열심히 일하고, 그 이후부터는 좀 쉬엄쉬엄 인생을 즐기면서 재밌게 살고 싶어요. 사람들이 늙으면 다 좀 재미있게 살걸, 좀 여유 있게 살걸, 좀 베풀면서 살걸 하면서 후회한다고 하잖아요. 이제 그런 후회가 없도록 사는 것이 목표에요.”

여유 있게 일하는 노년을 맞이하기 위해 그가 준비하고 있는 장류사업이다. 최고 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으면서, 오래 묵혀두면 묵혀둘수록 그 가치가 더 좋아지기 때문이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 그는 바쁜 나날들 속에서도 이미 간장, 된장, 고추장, 식초, 장아찌 등 장류 만드는 교육을 받고 자격증도 따 놓았다. 절망적인 상황이 이끌어 온 귀농의 길, 그 안에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본 그는 오늘도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고민하고 또 시도하고 있다.

 

 

<꼭 해주고 싶은 말>

 

“정보력과 작물에 정성을 쏟을 각오가 중요하다”

귀농할 때 각 지자체별로 있는 다양한 귀농·취촌 지원정책을 잘 알고 이용하면 초기비용 없이 정착할 수 있다. 올해 2억을 연 3%의 이율, 5년 거치 10년 상환의 조건으로 대출받아 농지임대와 트랙터 구입 등에 사용했다. 늘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정보에 눈과 귀를 열어야 한다. 단, 그만큼 땀 흘릴 각오는 해야 한다. 소득은 작물이나 재배면적보다, 내가 투입한 노동력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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