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래퍼들은 ‘말장난’을 참 좋아하는 거 같다. 힙합에서는 그걸 ‘라임’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특히, 각운을 중요시 여긴다. 라임 맞추기가 쉽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힙합 프로그램인 M-net <쇼미더머니4>를 주제로 한 이번 글에서는 필자도 ‘말장난’을 좀 해볼 생각이다. 텍스트만으로 써내려가야 하는 글이다 보니 플로우를 보여주긴 어렵고, 라임 정도는 가능할 거 같다. 독자들의 양해를 부탁드린다.
‘삼촌들 용돈 뺏는 깡패’는 못되었어도 ‘음원 깡패’, ‘흥행 깡패’는 된 거 같다. 자극과 논란을 자양분 삼아 시청률을 높여온 M-net <쇼미더머니> 시즌4에 대한 이야기다. 매회 방송이 이슈가 되고 언더에서 활동하던 많은 래퍼가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으니, 이번 시즌 역시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쇼미더머니, 논란의 중심, 성공적.
하지만, <쇼미더머니4>가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또 흥행 포인트를 만들어 냈는지 살펴보면, 그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블랙넛과 같은 논란거리가 많은 참가자를 집중 조명하여 흥행을 위한 ‘불쏘시개’로 쓰는가 하면, 여기에 송민호를 데려와 언더와 아이돌이라는 대립구도를 만들어 스토리텔링의 동력으로 삼는다.
재밌는 건, 제작진의 반응이다. 직접 섭외하고 녹화를 하며 또 편집까지 했으면서, 막상 논란이 불거지자 예상치 못한 일이라며 한걸음 뒤로 물러선다. 예고편에서는 이른바 '악마의 편집‘을 통해 ‘설레발’을 보여주고, 논란이 불거지면 ‘오리발’을 내미는 것이다. 마치 <개그콘서트> ‘민상토론’에서 박영진이 말하는 “녹화방송이라 여과 없이 나가는 점 양해 부탁드린다”란 개그멘트의 ‘실사판’을 보는 느낌이다.
제작진만의 잘못은 아니다. <쇼미더머니>가 지금껏 굴러올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런 제작진의 북소리에 장단을 맞춰 온 참가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혹자는 ‘힙부심’ 혹은 ‘랩부심’이라 손가락질 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음악을 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을 텐데, 이들이 마치 성공을 위해 <쇼미더머니4>가 짜 놓은 판에 들어가 자발적인 ‘꼭두각시’가 된 느낌이랄까. 방송 출연이라는 ‘스펙’을 위해 힙합에 대한 ‘리스펙트’를 내려놓는 모습.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물론, 가뭄에 콩 나듯 찾아오는 방송 출연 기회를 꼭 잡아 성공하겠다는 그들의 절박함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쇼 같지도 않은 쇼에 왜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는지 모르겠다. 머니를 위해서라면 이런 쇼조차 믿는단 말인가? 아, 그래서 ‘쇼미더머니’인지도 모르겠다. 역시 돈은 믿고 볼 일이다.
<쇼미더머니>와 <언프리티랩스타>와 같은 힙합 프로그램에서 꼭 빠지지 않는 미션이 하나 있다. 바로 ‘디스’다. 출연자들은 제작진의 명령(?)에 따라 잘 알지도 모르는 이들을 ‘디스’한다. 말이 ‘디스’지, 그냥 욕하고 서로의 신경을 자극하는 것이다. 혀끝에 칼을 장착한 채 서로를 겨눈다. 디스전에서는 상처 받지 않는 게 쿨한 것으로 비춰지지만, 시청자 입장에서는 맥락 없는 ‘디스’가 시원할리 만무하다.
어떤 것에도 기죽지 않고, 자기만의 느낌대로(스웩을 가지고) 자기 길을 갈 것만 같았던 래퍼들이 서로 흥분해서 ‘디스’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이게 대체 뭐하자는 것인가’하는 생각이 든다. 디스 이즈 왓? 싸우자는 것인가?
그들 중 몇몇은 있어 보이고 싶은데, 가진 게 없다. 그래서 사회적 약자나 여성에 대한 비하적인 표현을 주로 쓴다. 욕이 없으면 아예 마디가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섹스’ 말고 ‘센스’를 보여 줄 순 없을까. 래퍼에게는 가사를 본인이 직접 쓴다(래핑)는 것이 바로 자존심과 직결되는 문제인데, 누가 봐도 간지러운 가사를 써 놓고 그것을 간지로 우기는 그들의 심정은 이해불가다. 여자를 보며 ‘학학’ 댈 시간이 있으면, 문학이나 인문학을 먼저 공부했으면 좋겠다. 그럼 훨씬 위트 넘치는 가사를 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쇼미더머니> 시즌 1,2에 출연했던 ‘MC 메타’는 논란이 끊이지 않은 <쇼미더머니4>를 겨냥하여 ‘뉴스타파’를 통해 ‘쇼미더힙합’이라는 곡을 발표했다. 그는 이곡을 통해 ‘세월호’ ‘4대강’ ‘청년실업’ 등의 문제는 외면하면서 돈 자랑을 하거나 상대방을 헐뜯는 가사밖에 없는 요즘 패러들을 에둘러 비판했다. 디스에도 맥락이 있으면 이렇게 시원하단 걸 보여준다.
물론, 우리 사회에서 힙합이 여전히 소외된 장르라면, 이런 논란을 통한 알리기와 관심끌기는 충분히 유효한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 생각해볼 문제다. ‘과시’ 또는 ‘멸시’로만 점철된 힙합은 얼마나 ‘시시’한가. ‘다시’ 이런 힙합이 반복된다면, 그땐 아마도 시청자가 먼저 ‘무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