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인물들의 전기를 보면 누구나 몇 번의 어려운 고비를 겪었음을 봅니다. 그중 어른이 되어서 겪는 고난이야 뭐 어른이니까 어떻게든 이겨낼 힘이 있었겠다 싶지만 어린 시절, 특히 유년 시절에 겪은 어려움은 본인 잘못도 아니고 부모나 주위환경 등 타고난 운에 따른 것이며, 아직 특별한 능력도 없고 도와줄 이도 없어 이를 이겨내는 과정이 더 대단한 일로 여겨집니다.
유명한 음악가들은 특히 불우한 어린 시절을 경험한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이야 음악가들이 부유한 집안에서 유복하게 자란 이들이 많지만 그 옛날에는 음악가들에 대한 사회적 대우가 지금 같지 않았으니 어쩌면 불우한 환경이 음악가를 만들어내게 된 원동력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 <사계>를 작곡한 비발디는 베네치아에서 태어났는데 태어나는 순간부터 극적이었습니다. 임신 중이었던 비발디의 어머니가 부엌일을 하던 중 갑자기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비발디 어머니는 몸을 가누지 못한 채 바닥에 넘어졌는데 그 충격으로 진통이 시작되었고 마침내 비발디가 태어났다고 합니다. 지진 때문에 앞당겨 태어나게 된 것이지요. 그 때문인지 비발디는 어린 시절 내내 병약했습니다. 늘 보호를 받아야 했고 심지어는 기숙학교에 진학해서도 기숙사 대신 집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관심없던 학교 공부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집중적으로 공부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병약하게 태어난 것은 오히려 비발디가 음악하는 데 내내 유리한 환경으로 작용했습니다. 후에 비발디는 신부가 되었는데 병약해서 미사를 주관할 수 없다는 이유로 고아원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일을 맡게 된 탓에 신부이지만 평생 음악가로서의 삶을 살 수 있었으니까요.
음악의 성인 베토벤의 어린 시절도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베토벤은 전형적인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할아버지 때 독일 본으로 이주해서 정착했는데 할아버지는 쾰른 대주교의 궁정합창단에서 음악감독을 지냈으며, 아버지 역시 궁정 합창단원으로 활동했으니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음악가로 성장하기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베토벤이 네 살이 되던 해 할아버지가 죽고 아버지가 알콜중독에 빠지면서 불행이 시작되었습니다. 경제적 환경이 급격히 나빠졌고 어린 모차르트를 이용해 돈을 버는 것을 기억한 아버지 때문에 베토벤은 어린 천재가 되기 위해 혹독한 훈련과 매질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죽자 매질은 끝이 났지만 이제 집안 경제를 떠맡아야 하는 처지가 되어 12세에 이미 연주자로 활동하며 돈을 버는 소년가장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이 때문인지 베토벤은 돈에 매우 민감했습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비난을 받은 바이올린의 신 파가니니의 어린 시절도 끔찍했습니다. 아버지는 도박꾼으로 가산을 모두 탕진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어린 파가니니에게 돈 벌어 오라고 매질을 가하고 몇 푼 돈을 벌어오면 그 돈을 빼앗아 도박으로 날리고를 반복하며 살았습니다. 결국 파가니니는 아버지를 버리고 도망가 자수성가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못된 아버지에게 물려 받은 것이 두 가지 있었습니다. 하나는 바로 음악적 재능이었습니다. 파가니니의 아버지는 도박중독자였지만 꽤 재능있는 기타리스트였습니다. 도박하지 않을 때는 친구들을 모아 기타를 연주했고 그 친구들이 파가니니에게 음악을 가르치도록 했습니다. 어린 시절 파가니니는 아버지와 그의 친구들에게 음악을 배웠고 8살에는 작곡을 할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파가니니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또다른 한 가지는 도박이었습니다. 파가니니는 많은 돈을 벌었지만 아버지처럼 도박에 열중하다 전 재산을 탕진하고 심지어는 자신의 몸과 같은 바이얼린 마저 도박을 하다 잃고 말았습니다(그런데 운이 좋았던지 파가니니가 바이얼린을 도박에서 잃었다는 소문을 들은 한 독지가가 이전 보다 더 좋은 악기를 선물했는데 그 악기가 바로 지금까지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대포라는 별명이 붙은 바이얼린 ‘과리네리우스 델 제수’입니다).
그 누구보다도 어린 시절이 극적이었던 인물은 바로 오페라의 황제로 불리는 베르디입니다. 베르디는 이탈리아 파르마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는데 자신의 회고록 등에서 틈만 나면 자신이 어린 시절 매우 가난한 환경에서 어렵게 자랐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베르디는 여인숙집 아들로 태어나 부유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또 어려서부터 좋아하는 음악을 자유롭게 배울 수 있었고 7세에 이미 오르가니스트로 활동했다니 특별히 불우할 게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베르디에게 극적인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베르디가 1세이던 해에 오스트리아 군대가 이탈리아 북부를 침공했고 이내 베르디가 살던 마을까지 쳐들어 왔습니다. 오스트리아군은 마을 주민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하기 시작했고 베르디의 어머니는 한 살짜리 어린 아이를 품에 안고 성당 종탑에 기어올라 숨어있다 겨우 죽음을 모면했습니다. 인류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가 목숨을 구하는 순간입니다.
왈츠하면 요한 스트라우스 가문을 생각하게 됩니다. 좀 헷갈리기는 합니다만 요한 스트라우스 가문은 매년 새해에 꼭 듣게 되는 <라데츠키행진곡>을 작곡한 왈츠의 아버지 요한 스트라우스 1세와 그의 아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을 작곡한 왈츠의 왕 요한 스트라우스 2세를 중심으로 1세의 동생이자 2세의 삼촌인 요제프 스트라우스, 그리고 2세의 아들인 요한 스트라우스 3세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중 1세와 2세가 유명한데 요한 스트라우스 1세의 어린 시절은 매우 불우했습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가 병으로 죽었고, 아버지는 재혼을 했는데 아버지 마저 강에 빠져 죽었습니다. 그러자 새엄마는 집안 형편이 어렵다며 어린 요한을 제본 공장에 노동자로 보내 버립니다. 하지만 요한은 공장에서 틈나는 대로 바이얼린을 배웠고 마침내 농부들의 노래를 왈츠로 연주하는 자기 악단을 꾸려 유명 음악가로 성장하였습니다.
요한 스트라우스 2세는 비교적 아버지의 경제적 환경이 좋아진 상황에서 태어나 별로 어려울 게 없을 것 같았으나 오히려 아버지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요한 스트라우스 2세는 요즘 말로 하면 속도위반으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스트라우스 1세는 타고난 바람둥이였습니다. 사귀던 여자가 임신을 하자 마지못해 결혼을 했고 결혼한 지 얼마되지 않아 아이를 출산했는데 그 아이가 바로 스트라우스 2세였습니다. 그 후로도 1세는 다른 여자들을 수시로 만났으며 무려 6명의 자녀를 다른 여자들에게서 낳았습니다. 그러니 부부사이가 좋을 리 없었겠지요. 그러던 중 어느 날 스트라우스 2세가 아버지 1세에게 자신도 아버지처럼 왈츠 작곡가가 되겠다고 하자 불같이 화를 내며 “너까지 딴따라 음악을 하겠다는 것이냐”며 강하게 반대하며 강제로 법대에 보내 버립니다. 하지만 결국 2세 역시 음악을 하게 되었고 점점 왈츠의 대가로 성장해 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들이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것으로 생각해 아들과 관계를 맺는 모든 곳에 압력을 넣어 아들의 성장을 방해했습니다. 당시 스트라우스 1세는 빈 음악계의 막강한 실력자였기에 그의 영향력이 꽤 커서 만약 아들을 도와주려 했다면 쉽게 아들을 성공시킬 수 있었을 텐데 오히려 반대로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입니다. 아들을 데뷔시켜 준 연주회장에서 더 이상 자신의 곡을 연주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자신이 음악감독으로 있던 궁정무도회장에서는 스트라우스 2세의 악단이나 작품이 절대 연주하지 않도록 조치했습니다(실제로 스트라우스 2세의 음악은 1세가 죽고 2세가 그 자리를 물려받은 후에야 연주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1세가 오래 살지 못한 덕에 2세는 아버지의 악단과 지위 등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물려받아 크게 성공하였습니다.
음악가들의 삶을 살펴보다보면 이들의 만들어낸 작품만큼 그들의 삶이 우아하거나 아름답지 못했다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때로는 혹독하고, 때로는 암울하고, 하지만 그런 환경에서도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었는지 경이롭기도 하구요. 그래서 사람이 위대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떤 환경이던 그것을 이겨낼 수 있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