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스(Once)를 보고 영화 속 주인공처럼 나도 길거리 연주를 할테야! 하고 무작정 해금 하나 들고 지구 반대편인 아일랜드로 떠났던 게 벌써 5년 전, 그곳에서 만난 아일랜드 음악 감독에게 장난처럼 했던 말 그대로 지금 난 소리축제 사무실에서 해외 초청 아티스트와 이메일을 주고받고 있다.
아일랜드에서 버스커로 살다가 한국에 돌아가기 전 음악과 관련된 짧지만 특별한 경험을 쌓기 위해 인턴 구인 광고 사이트를 뒤적이다 아일랜드 전통음악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단체에서 공연 기획에 관련된 인턴을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지원하게 되었고 음악 감독과의 두번의 인터뷰와 혹독한 미션(?)을 통과 하고 난 후에 인턴을 할 수 있었다. 공연 기획이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막연하게 내가 음악을 전공했으니 누구보다도 공연을 준비하는 연주자의 마음을 제일 잘 이해 할 수 있겠지? 라는 자신감으로 도전하게 되었지만 실상은 연주자들에게 필요한 잔심부름꾼 이었다. 예를 들면 객석에 의자 배치하기, 무거운 악기 들어주기, 대기실에 간식 챙겨주기, 공연 홍보를 위해 공연장 곳곳에 포스터 붙이기 등등… 생각했던 것보다 모양 빠지는 일 들 뿐이었지만 그 조차도 참 재미있게 하다 보니 어느 날은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이 "넌 나의 하인처럼 내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도와줘서 내가 참 미안해져" 이렇게 말하기도 했었다. 무엇에 이끌려 발에 불이 나도록 열심히 일 했는지 얘기하자면 그들의 음악이 참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일랜드 남서부 지역에 있는 클레어 라는 지역(우리나라로 치면 전라북도의 위치)출신의 연주자들로 구성된 아일랜드 전통음악을 클래식 악기와 전통악기로 연주하는 클레어 메모리 오케스트라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클래식 악기로 우리나라 전통음악을 연주하는 관현악단인 것이다. 이 오케스트라는 아일랜드에서 유일한 전통음악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로 음악을 악보로 배우고 연주 하는 것이 아닌 우리나라의 판소리처럼 구전으로 배우고 연주하여 아일랜드 전통음악을 유지 해 나가고 있다.
이곳에서 인턴으로 일하던 어느 날, 클레어 지역의 작은 도시에 아주 오래된 성당을 개조하여 만든 문화 센터에서 공연이 있었는데 공연 2시간 전 시내 곳곳 온 가게에 전단지를 돌리며 공연 홍보를 했었지만 객석의 1/3도 채우지 못한 그 아쉬운 공연이 끝난 후 연주자들과 다과를 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좋은 음악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너무 커서 나도 몰래 이런 말이 나왔다. "내가 만약 한국에 돌아가 해외 아티스트를 초청 하는 업무를 맡게 되면 꼭 너희 음악을 초청 할께." 결국 이 말이 씨가 되어 전주세계소리축제 프로그램팀 해외초청 업무에 지원하게 되었고 지금 난 클레어 메모리 오케스트라 음악 감독과 올해 축제에 초청을 위해 메일을 주고받고 있다. 문화저널 독자들에게 희소식을 하나 전하자면 이 클레어 메모리 오케스트라가 올해 전주세계소리축제에 초청되어 두 번의 공연과 두 번의 워크샵에 출연한다. 평소에 접할 수 없는 아일랜드로의 음악여행을 떠나고 싶은 문화저널 독자들은 10월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 만나볼 수 있길 기대해 본다.
이 경험을 계기로 소리축제에서 해외초청 업무를 하면서 다양한 국가의 다양한 아티스트를 접하면서 생긴 몇 가지 에피소드를 얘기하려 한다.
첫 번째 로는 작년에 감비아 출신 여성 최초의 코라 연주자 소나 자바테 초청을 진행하면서 였다. 그녀는 여성 최초 코라 연주자로 서 아프리카에서는 남자에게만 전승되는 코라를 여성 최초로 연주하여 남성이 연주하는 코라 와는 또 다른 그녀만의 방식으로 음악 세계를 넓혀 가고 있는 그녀를 초청 하는 업무를 진행 하고 있었는데 그녀와 함께 오게 되는 밴드 멤버가 6명 중 소리축제 공연에 오기로 하였던 타악기 젬베를 연주하는 연주자의 사정상 하차로 다른 멤버를 구하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던 소나 자바테 기획사의 메일을 받았고 몇 일후 새로운 멤버를 구했다고 연락이 왔다. 그 멤버의 여권을 받았는데 너무 황당해서 웃음만 나왔다. 다름이 아닌 7살 남자 아이의 여권이었던 것이다. 잘못된 메일이 온줄 알고 서둘러 기획사에 연락을 해보니 기획사 왈 "소나 자바테의 친 아들이며 3살 때부터 음악 교육을 받아온 실력 있는 연주자다"라는 답변이었다. 7살의 실력 있는 연주자… 믿을 수 없었지만 믿어야만 했다. 결국 유투브에서 소나의 친 아들이 무대에서 연주하는 영상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작년 소리축제 공연 중 최고의 인기를 얻은 아티스트는 현란하고 귀여운 타악기 솔로로 선보인 소나 자바테의 아들 시디키 자바테 였다. 아마 소리축제 이래로 최연소 초청 아티스트가 아닐까?
두 번째 로는 러시아 근접 국가로 우리에게 낯선 부랴트 공화국 출신 아티스트 남가르 초청을 진행 하면서였다. 보통 해외팀 초청 업무의 대부분은 이메일을 주고받는 것이다. 언어도 다르고 시차도 다른 이유로 초청 업무에 필요한 협의는 전화보다는 이메일로 진행한다. 그러다보니 이메일을 통해 그 아티스트의 영어 실력이 파악되기도 하고 성격이 파악되기도 한다. 그런데 난 남가르와 첫 이메일부터 공연 전 부랴트에서 한국으로 출발하기 직전까지 완전히 속고 있었다. 다름이 아닌 난 지금까지 남가르의 리더와 소통 하고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결국 난 남가르의 매니저와 이메일을 주고받고 있었던 것이다. 보통 이메일의 마지막엔 본인의 이름을 남기는데 나와 메일을 주고받을 때마다 항상 남가르 리더의 이름을 남기고 내가 메일을 보낼 때마다 Dear 남가르의 리더, 라고 해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매니저는 그제서야 남가르의 멤버들이 이제 부랴트를 떠나 한국으로 출발하려고 하니 잘 부탁한다며 그 멤버들은 영어로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니 러시아어가 가능한 자원봉사자를 붙여 달라는 것이었다. 멀리 떨어진 친구하고 편지를 주고받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건 친구가 아닌 친구의 엄마 였다는 것처럼 황당 그 자체였다. 그리고 이제와 러시아어가 가능한 자원 봉사자를 찾는 건 하늘에 별따기! 울며 겨자 먹기로 영어가 가능한 자원봉사자를 붙여서 공연을 진행 하였고 담당 자원봉사자는 남가르가 전주에 머물러 있는 내내 영어 보다는 손짓 발짓으로 의사소통하며 아주 힘겨운 통역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지막으로는 한-폴 프로젝트 쇼팽&아리랑 프로그램으로 초청된 마리아 포미아노브스카 오케스트라의 부부 멤버 관련 에피소드 이다. 작년 소리축제 기획 프로그램 중 한국의 전통음악과 폴란드의 고악기로 연주되는 쇼팽의 음악이 두 나라 연주자들의 장기간 음악적 교류를 통해 서로의 음악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 낸 음악적으로 완성도 높은 공연이 아니었나 싶다. 이 공연을 위해 폴란드에서 마리아 포미아노브스카를 비롯한 6명의 아티스트가 전주에 체류 하였고 그 중 아코디언 연주자 휴버트와 플록 피들 연주자 카타르지나는 결혼 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신혼 부부였다. 그런데 최근 이 부부에게서 이메일이 하나 왔다. 이 부부의 아이 출산 소식 이었다. 그래서 시간을 거슬러 보니 작년 공연차 한국에 와 있는 동안에 아기가 생긴 것이 분명했다. 이 소식을 접한 한-폴 프로젝트 공연에 출연하신 한국 연주자분들이 농담 삼아 이 아이의 이름을 아리랑으로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ㅎㅎ.
이처럼 작년 해외 아티스트를 초청 업무를 진행 하면서 다양한 에피소드가 있었다. 올해는 작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장에서 벌여질 난감하고 황당한 순간들을 줄이기 위해 막바지 준비 중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 보다 많아진 해외 아티스트의 초청으로 아마 작년보다 더 많은 에피소드 들이 날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