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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9 | 연재 [커피 청년의 별별여행]
공간으로 떠난 여행
아홉번째 이야기
김현두(2015-09-15 12:29:11)

 

 

그때 나는 비를 여행하는 중이었습니다.

소나기가 내리기에 밖에 나가보았습니다.

소나기가 참 보기 좋게도 내리고 있었습니다.

내리쬐던 여름날의 뜨거운 뙤약볕 아래

반갑게도 참 시원하게도 내립니다.

소나기가 땅 위를 적실 때는

특유의 냄새가 납니다.

빗줄기가 뜨거운 대지 위를 적시는

냄새입니다.

흙냄새 같기도 하고,

텁텁하게 코끝을 자극하기도 합니다.

바로 소나기 냄새입니다.

그 어떤 무엇보다

잠시 소나기가 내려서 좋았습니다.

시원하고 텁텁한 흙냄새 나는

소나기가 좋았습니다.

 

그때 나는 비를 여행하는 중이었습니다.

여름날에 강하게 내리쬐는 몹시 뜨거운 볕을 뙤약볕이라고 한다. 일 년 중에 가장 덥고 습한

날씨가 계속되는 칠팔월의 이번 여름은 내 여행의 또 다른 시작점에서 찾아왔다.

나는 여름날의 소나기를 좋아한다. 시원한 빗줄기가 대지를 적시는 그 순간을 좋아하고,

텁텁하게 코끝에 닿는 소나기 냄새를 좋아한다.

여름날의 소나기냄새를 좋아하듯 나는 여러 가지 좋아하는 것 들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 공간이다. 오랜 시간 그런 공간을 찾아 여행을 떠났고 이제는 그

공간을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내고 수많은 여행자들을 내가 만든 공간(여행지)으로 여행을

떠나오게 하고 싶다.

 

 

 

제법 오랜 시간 가슴에 간직했던 꿈이 있다. 고향으로 돌아가 작은 공간을 마련해 손수내린

커피를 내어놓고 좋아하는 글쓰기를 하면서 책을 만들고 내 일상의 사진을 담는 내가 되고 싶었다.

다른 무엇보다 온전히 내 삶을 살아가는 삶이고 싶다.

몇 달 전 그 꿈을 이루기 위해 80년 세월을 훌쩍 뛰어넘은 오래된 기역자 한옥 한 채를 시골에 구입했다.

그리고 그 곳을 손수 만져가면서 꾸미는 중이다.

 

물론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내 여행과 삶을 응원해주는 소중한 여행자들이 내 고향(전북진안)에 찾아와 함께 먹고 자면서 일하는 중이다.

나는 이 작은 카페가 섬이 되었으면 좋겠다.

홀로 고독한 섬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골목길과 마당사이를 지나 이 공간으로 찾아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곳이 여행을 떠나온 어느 아름다운 섬처럼 느껴졌으면 좋겠다.

시골이 더 이상 소외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과 문화적 결핍의 공간이 되어 지지 않기를 꿈꾸며 나는 요즘 매일 아침을 시작한다.

 

봄이 더욱 짙어지면 녹색의 푸름이 시작되고, 여름이 짙어지면 푸름이 더욱 선명한 색으로 말을 건 낸다.

가을이 짙어 질 때 즘이면 그 푸름은 울긋불긋한 이야기를 가진다. 그렇게 모든 계절 뒤에는 그 모든 색이 사라진 것 같지만, 이윽고 하얀 세상이 겨울의 짙어짐을 선물한다. 그런 자연스러움이 묻어나는 공간의 역할, 사람들의 삶에 그저 녹아드는 공간의 힘을 나는 믿는다.

여러해 전에 제주에서 만난 카페사장님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물고기가 그냥 좋았어요.


다른 의미는 없어요.


근데 사람들은 물고기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붙이더군요.


종교적인 의미까지 부여해 가며 나에게 묻곤 하기도 해요.

물고기 카페에 들렸을 때 예쁜 여사장님이 그렇게 말해주었다.

“그냥 물고기가 좋아서‘물고기 카페’가 된 것뿐이에요.”

 

 

사람들은 어떠한 공간이나 인연에 저마다의 이야기를 붙여 또 다른 이야기로 만들어내기를 좋아한다. 물론 나도 그렇게 만든 이야기가 제법 되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때로는 아무 이유도 없이 그냥 좋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냥, 아무런 이유가 필요 없는 평범한 이야기를 나는 좋아한다.

 

 

 

어디론가 떠나야 만이 ‘여행이다’라는 편견이 내게 사라졌을 때부터 내 주위에 수많은 공간을 이해하고 여행할 수 있었다. 내가 있는 지금, 나의 일상에서부터 여행은 늘 가능했던 것이다. 사람은 저마다 서로 연결되어있는 어떠한 관계성들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떠한 공간에서부터 시작된다. 집이라는 공간에서 주거를 하고, 직장이라는 공간에서 일 을하며, 식당에 가거나 카페를 찾아가면서 우리는 시시때때로 공간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인간은 어떠한 공간에 머물며 늘 일상을 여행을 한다.

그런 생각을 했다. ‘섬’이 되어 진 어느 청춘의 공간에서 삶의 작은 희망이라도 노래하는 꿈같은 이야기가 펼쳐지기를 상상해보았다. 너와 나의 상처를 감싸 줄 반창고가 되어주는 그런 공간으로의 여행을 시작해보자. 당신의 생각보다 그 공간은 가까이 있을 것이고, 그 곳을 찾게되면 기꺼이 즐거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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