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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9 | 연재 [수요포럼]
‘소외’에 대한 고민이 바보상자를 뒤엎다
(2015-09-15 12:19:25)

 

 

‘1초’를 위한 수많은 시간
지식채널e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김진혁이다. 오늘 강연은 제가 지식채널e를 만들면서 했던 고민들을 설명하겠다. 원래 지식채널e라는 프로그램은 SB(Station Break)라고 해서, 정규 프로그램과 다음 정규 편성 프로그램이 시작되는 사이의 시간에 방영되는 짧은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의 애초 기획의도가 개별 프로그램으로서의 성격을 갖기보다는 EBS의 채널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제작되었다. 우리의 생애주기 사이클에서 EBS를 보면 아주 어렸을 적, 이비에스의 어린이 프로그램을 보고 자라다가 학교에 다니면서 입시프로그램을 보고, 그러면서 EBS 교육프로그램에 질리게 된다. 개중에는 수능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더 기피하는 일이 생겼을 테고. 그러다보니 수능 이후에는 EBS채널을 거의 안 보게 된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먹어서 결혼해서 출산 후 애가 울 때, 다시 EBS를 보게 된다. 그 아이는 다시 이전의 사람들이 봤던 사이클대로 EBS를 접하게 된다. 이러다보니, 시청자들이 애초에 EBS가 만드는 다큐멘터리나 프로그램을 접하지 않게 되는 일이 발생한다.
문제는 EBS로 채널 자체를 돌리지 않는 이미지를 바꿔야 되는 일인 것이다. 그래서 저는 뭔가 좀 특이한 SB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결과 지식채널e이가 편성되었다. 이 프로그램에 대해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지식과 정보가 합쳐진 인포테인먼트(Infortainment)가 얻기 시작했을 때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다. EBS는 지식과 굉장히 잘 어울리는 채널이다. 그리고 지식채널e라는 프로그램은 ‘백과사전식’ 지식을 담겠다는 포부가 있었다. 물론, 그보다 시청자들이 채널을 돌리다가 ‘어? 이게 뭐지?’ 하고 화면을 멈추게 하는 낚시질을 하기 위해 형식적인 면을 굉장히 많이 고민했었다. 기존의 SB보다 파격적이고 눈길을 끌게 하기 위해 뮤직비디오와 영화예고편 같은 것들이 갖고 있는 장르적인 장점들을 제 나름대로 발췌를 했다. 또, 해외의 프로그램들을 보고 벤치마킹을 했다. 그런 포맷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 뭐라고 할까. 짜깁기만 해서 되는 게 아니었다. 그 이상의 것을 담아내야 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형식들을 집어넣으면서 짧으면서 강렬하고, 거기에 더해 특히 첫 번째 편의 경우는 영상 자체에 고속 촬영 영상을 대거 차용했다. 총알이 총구에서 날아가는 장면, 야구공이 야구배트에 의해 움푹 패이는 장면 등이었다.
문제는 어떻게든 그런 장면들을 가져다가 시선을 끌어 잡으려고 애를 쓰다보니까 내용보다 지식을 먼저 고민하고, 지식을 먼저 고민한 게 아니라,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화면을 먼저 쓰다 보니 억지스러운 상황에 이르렀다. 모든 영상을 쓸 수 있기 위해서 약간의 꼼수가 필요했다. 그래서 첫 1화를 위한 편집에만 한 달 반 정도의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노력이 더해졌기 때문에 꽤 괜찮게 만들어졌을 것이라 판단을 했다. 회사 내부 시사를 알음알음했는데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그런 방향으로 지나치게 임팩트 있는 시선을 강탈하고자 하는 목적에 맞게끔 프로그램을 만들다보니 내용적으로 공허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얘기냐면, 아무리 이 프로그램의 기획의도가 재치 있다 하더라도, 내용적인 면에서 너무 공허하다 보면, 30초 정도는 흘려보내게 된다. 사람은 ‘무의미’라는 존재의 틀을 참기 어려워한다. 그럼 어떻게 이 부분을 보완할 지 고민에 빠지다 보니 굉장히 어려워졌다.

첫 번째 어려웠던 이유는, 가치판단적인 지식이 대단히 지루했기 때문이다. EBS가 보도하는 내용이나 흔히 생각하는 수능 이미지의 방송이 재미없다는 편견에는 이유가 있다. 극단적으로 얘기하자면, 백과사전식 지식을 시청자들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전문가들만 데려다 놓고 일방적으로 얘기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형식을 새롭게 갖춰 놓았다 하더라도, 과연 시청자들이 볼까라는 고민에 빠졌다. 이 부분에 있어 어떻게든 해결을 하고 넘어가야 했기 때문에 같이 일하던 작가들과 고민하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결론에 이르렀다. 즉, 우리가 ‘지식이 대단합니다’, ‘알아야 합니다’라고 나서기 보다는 시청자들이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도록, 우리는 상을 맛깔스럽게 만들고, 냄새만 맛있게, 최대한 매력적으로 풍기자는 것이 목표였다. 물론 1차적으로는 그 지식이 ‘가치’ 있다는 확신을 제작진들이 먼저 해야 했다. 옛 말에 물가까지는 데려갈 수 있어도 물을 마시는 건 결국 본인의 판단인 것이다.
문제는 이런 대전제가 옳다 하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끌고 가는 것의 문제는 별개다. 그래서 제가 작가에게 이런 콘셉트로 ‘1분’ 안에 지식을 다 찾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한 작가가 한 문장을 찾아왔다. 지식은 아니었지만, 그가 가져온 어떤 한 문장이 무언가 가능성이 있어보였고, 생각할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 문장을 ‘1초 편’ 맨 마지막에 배치를 하고, 그 문장까지 자연스럽게 따라가서 마지막 문장에 임팩트를 얻을 수 있도록 새롭게 구성을 하고, 저속영상까지 긁어모아서 ‘1초’라는 지식채널e의 1편이 만들어졌다.
방송을 보고나서 각자 자기 나름대로 처한 환경이나 지금 하고 있는 고민, 취향에 따라서 각각 다른 지점으로 해석되어지고, 메시지 전달이 된다. 그 이야기는 아까 제가 중간에 주입식도 아니고, 완전 공허하지도 않은 중간지대로서의 가능성이 엿보였던 것이다.

다행히 EBS에서는 이례적으로 짧은 시간에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다. 신기할 정도로 빨랐다. 보통 프로그램 방영 후 피드백을 받기까지 보통 3개월이 걸렸다면, 지식채널e는 방영되자마자 피드백이 바로 있었다. 방송 캡쳐본이 떠오르고, 인터넷에서 꽤 회자되었다. 황홀경에 빠졌다. 그 황홀경은 좋은 피드백을 받아서만이 아니라, 우리가 만든 것이 꽤 괜찮은 모양이라는 평가였다. 이런 식의 방향으로 앞으로 지식채널e를 더 키워보자라는 결정을 내렸다. 제가 EBS를 그만 둔 이후에도 ‘지식채널e’는 그때 만들어놓았던 포맷과 방향으로 계속되고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지식채널e’ 라는 프로그램이 ‘생각채널e’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애초 편성에 있어 기획했던 것은 지식에 좀 더 무게를 둔 것이었다. ‘슬램덩크’라는 농구만화를 안다면, ‘왼손은 거들 뿐’이라는 대사를 아실 것이다. 지식은 거들뿐이다. 마찬가지다. 예전의 지식이 오른손의 역할이었다면, 오른손의 역할은 ‘생각’이 하고, ‘지식’은 왼손이 살짝 바치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는 보시면 알겠지만, 지식채널e는 ‘왼손은 거들뿐’이라는 방향성에 대해 어떤 면에서는 피디수첩보다 더 세거나 어떤 부분에서는 인간극장보다 더 슬프기도 했다.

 

 

 

지식채널e는 ‘시사’보다 ‘생각’프로그램
저는 대학시절, 쉽게 말해 연애만 열심히 했던 대학생이었다. 열심히 연애 하다가 군대 가기 전에 헤어졌다. 그래도 참 좋은 때였다.
방송국에 입사 하게 된 계기도 언론인의 꿈을 꿨다기보다는 영상을 만들고 싶어서였다. 영화를 만들고 싶었고, 여차저차 영화라는 것을 본격적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여러 가지 상황이 녹록치 않았다. 나이도 많이 먹어버린 상황이었고, 돈도 안 버는 상태에서 너무 많은 것을 할 수 없었다. 쉽게 말해 모험의 영역을 넓히기가 어려웠다. 어쨌거나 EBS만 저를 뽑아줬고, 입사 후 처음으로 EBS드라마 프로그램의 조연출을 맡았는 데, 예산상의 이유로 교육방송 내 드라마가 전부 폐지됐다. 이후 맡게 된 분야가 교양/다큐였다. 장편 다큐멘터리는 신입 초짜일 때는 안 시켜준다. 그래서 처음 모금 프로그램을 맡아 연출하게 됐다. 쉽게 생각하면, EBS판 ‘사랑의 리퀘스트’다. 이 프로그램은 독거노인들을 위주로 도와드리는 프로그램이었다. 연출방법은 굉장히 심플하다. 매주 2박 3일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도움이 필요한 독거노인 가정을 사회 복지사 측으로부터 연락받아 방문한다. 촬영은 제가 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스튜디오에 가서 사연을 영상으로 보고, 화면 왼쪽 상단에 ARS 전화번호가 뜨는 그런 프로그램이었다. 좋은 프로그램이었다. 입사한지 얼마 안 된, 심지어 드라마를 하고 싶었던, 제 입장에서는 발령 났을 때는 의아한 느낌을 가졌었다. 프로그램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내가 이런 일을 해야돼나?’ 마뜩치 않았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언젠가 도움이 되겠지’싶은 마음으로 탐탁지 않게 프로그램을 출발하게 됐다.
막상 프로그램을 하고 현장을 찾아가니까 가난한 사람들의 가난의 정도가 심각하게 좋지 않았다. 한두 번 촬영하고 말았으면 그냥 그 생각에 그쳤을 것이다. ‘세상에는 저렇게 어려운 분들도 있는데 나도 열심히 살아야 겠다’ 이런 생각. 그런데, 6개월간 계속 반복해서 촬영을 하다다보니까 개인적인 사고에 그치는 게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에 빠지게 됐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가난하고,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는 사실이 언론에 잘 소개되지 않았다. 왜 이들은 많은 사람들의 인식에서 벗어나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흔히 ‘소외’라고 한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2002년도는 대선이 끝났고, 우리나라가 월드컵에서 4강에 진출하고, IMF 위기상황을 극복했다고 떠들어대던 시기였다. 그래서 사회도, 저 역시도 약간 붕 떠있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프로그램 방송을 위한 가난의 현장을 마주할 때마다 느꼈던 점은 우리 사회의 ‘소외’ 문제가 너무 심각하다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사회복지사분들에게 물어봤다. ‘원래 이랬던 건가요?’ 그랬더니, 외환위기 이후 점점 더 안 좋아져서 지금에까지 이르렀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어느 순간 ‘괴리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고, 그런 생각들은 처참한 환경을 접할 때마다 점점 더 강해지게 됐다. 그러면서 ‘소외’라는 문제의식이 강력하게 각인되었다 ‘가난’에 대해 제가 생각했던 것은 창피하거나, 고통이나 슬픔, 어려움의 범주라고 생각했다. 불편함은 당연했다. 그러나 제가 프로그램 제작을 통해 경험했던 것은, 그 범주를 뛰어넘었다. 한 사람의 자존감이 가루가 되거나 으스러지는 경험들을 반복해서 보다보니까 이게 그냥 가난이라는 것이 어려운 것이구나 수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사례는, 다리가 불편한 할아버지 때문에 할머니는 오랫동안 수발을 들었는데 두 분 다 늙으시고 너무 상황이 안 좋았다. 두 분 다 식사를 전혀 할 수 없었고, 그러다보니 할머니가 어느 순간 정신의 끈을 놔버린 것이다.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온전치 않은 정신의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대변을 마당에 던지기 시작했다. 제가 촬영하러 갔을 때에는 마당에 이미 3년 치 대변이 쌓여있었다. 그런 현장을 매주 2-3건씩 보니 단순히 결손 가정이 점심을 못 먹는 것하고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연출가로서는 제가 지금 말씀드린 내용 그대로를, 영상에 담아서 시청자들에게 전달해주고 싶은데, 슬픔과 처참함의 문제는 좀 다르다. 슬프면 측은지심을 느껴 ARS 전화번호를 누르시지만 처참하면은 채널을 돌린다. 이 프로그램을 맡은 연출가로서 역할은 ARS를 통해 돈을 많이 걷어야 된다. 그래야 도와드릴 수 있으니까. 하지만 연출가 혹은 다큐멘터리스트 입장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까발리고 싶었다. 언젠가 나중에 그런 프로그램을 다루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 그러다가 1년 뒤 지식채널e 연출을 맡았다. 그 프로그램을 통해 ‘소외’ 문제라고 하는 것이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에 했던 프로그램은 <미래의 조건>이었다. 6개월 정도 연출했는데, 프로그램 자체가 없어졌다. 그 프로그램을 통해 첫 번째 연출을 했었다. 그 프로그램을 하던 중, 어떤 한 분을 촬영을 하다가 우연히 동대문 운동장 안에 들어간 적이 있다. 그리고 그 때 받았던 영향으로 인해 지식채널 이후에 언론문제라든지 앎의 문제라든지 인식의 문제라든지 영향을 받는 큰 계기가 됐다.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을 드리면, 2003년도~2004년도 청계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아주 젊은 분들은 모르겠지만 연세가 드신 분들은 청계천 복개공사가 기억나실 것이다. 사실은 서울에서 일어났던 일이었지만 전국적 이슈로 넓게 퍼졌다. 거기에 대해서 긍정적, 부정적으로 평가하든 상관없이 그 당시 언론을 통해서 청계천 관련 소식이 신문과 뉴스를 통해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어느 날, 제가 동대문 운동장(동대문 풍물시장)에 딱 들어가 보니 걸인 같은 노점상들이 줄지어 있었다. 처음에는 그분들이 누군지 몰랐다. 나중에 물어보니까 청계천 도깨비 시장에서 노점상 하던 분들이 서울시에 의해 동대문 운동장 안으로 수용된 것이었다. 왜 여기에 수용됐는지 그 이유는 알 길이 없었다. 그러고 나서 나중에 이명박 대통령은 이 곳을 세계적인 풍물시장이라고 칭했다. 제가 보기에는 난민 대피소 같은 상황이었다. 제가 충격을 먹었던 것은, 저는 한 번도 청계천 노점상들이 그곳에 모여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없다. 이게 뭐지? 심지어 청계천 복개공사로 인해 ‘그 위에 흐르는 물은 수돗물이다’ 이런 비판기사는 본 적이 있지만, 청계천 노점상 수가 동대문 운동장을 꽉 채운다는 기사는 본 적이 없었다. 단순히 노점상인 열 명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동대문 운동장을 꽉 채울 정도였다. 이 정도면 거의 지역에 있는 대형시장 사이즈다. 그 앞을 지나치는 사람들은 아무도 그 안이 풍물시장인지 모른다. 저만 모르는 게 아니었다. 저는 동대문 운동장을 굉장히 좋아했다. 마치 어렸을 때 살던 집을 쳐다보는 느낌으로 동대문 운동장을 쳐다보곤 했다. 일부러 지하철 아래 통로를 지나 매표소 앞에 담배 한 대 피면서 추억에 빠지곤 했다. 제가 그러고 있을 때 그 분들은 그 안에 계셨다. 이 동대문 운동장 안쪽은 이미 아비규환인데, 저는 이 안의 낙원을 생각하면서 담배 한 대를 피웠던 것이다. 굉장히 그로테스크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충격을 많이 받았다. 급한 마음에 카메라를 들고 가서 내부를 촬영했다. 어쨌든 그 날 촬영하려고 했던 것은 미담이었다. 주인공도 미담 속 인물이었다. 그래서 노점상 이야기와 연결시킬 수 없었다. 머뭇머뭇하다가 그냥 테잎을, 테잎 보관소에 넣어놨다. 그로부터 1년 여 있다가 연출한 게 지식채널e ‘잊혀진 대한민국 시리즈’ 첫 번째 편으로 철거민을 다루게 됐다. 그 지점이 지식채널e가 타 시사 프로그램하고 차이가 나게 되는 부분이었던 것 같다. 왜 우리는 모르고 있었을까. 지식채널e가 시사적인 이슈를 다룬 것 같지만 인식에 있어서는 굉장히 다른 문제인 것이다. 생각의 문제. 그러한 과정을 거쳐오면서, 제가 가장 큰 카테고리로 삼았던 것은 ‘소외’다. 우리의 인식으로부터 ‘소외’에 대해 과연 어떤 식의 규정을 할 것인가.

 

‘모르는 것’을 ‘안다는 것’
누군가 저에게 러시아어를 아냐고 물어보면 저는 당연히 모른다고 대답할 것이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 혹시 러시아어 전공하신 분이 있는가요? 질문 하나 던지겠다. 러시아 말을 아는가? 두번째 질문을 드리면 본인이 러시아 말을 모르는 데, 모른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우리는 러시아어를 모르긴 하지만 러시아어가 세상에 있다는 것은 안다. 이 말은 논리적으로 약간 어긋난다. 모르는 데 모르는 것을 어떻게 알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완벽한 무지는 아닌 것이다. 여러분이 러시아어를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도, 모르니까 언젠가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원할 때 그게 모른다는 걸 모르는 것. ‘러시아어’라는 말을 했을 때 그게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조차 모르면 ‘아아아, 으으으’ 하는 것과 동일하게 들리는 것이다.
제가 청계천 안에 들어갔을 때 겪었던 경험은 모른다는 것조차 모른다는 경험이었던 것이다. 이 파도를 삼고 출발을 하게 되니까 자연스럽게 언론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게 된다. 세상에 ‘무엇이 있다’라는 것을 첫 번째로 규정하는 게 언론이다. 사실 언론이 5.18 광주 민주화항쟁에서 빨갱이들의 소행이라거나 폭동이라고 왜곡을 하는 것도 문제지만, 가장 정말 큰 문제는, 세상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게 가만히 두는 것이다. 모른다는 것조차도 모르는 것. 1차적으로 언론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론의 문제는 이런 지점에 있다. 단순히 여당 편만 들고 야당 편만 드는 이런 문제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많은 사실들이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진실이라고 생각하거나 있는 그대로 현실, 그런 식으로 뒤죽박죽 되어간다. 이건 대단히 우려되는 일이다, 그래서는 절대 안 된다.
EBS의 ‘지식채널e’가 그리고 뉴스타파의 ‘5분’이, 여러분들의 시각을 교정해주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많이 클릭을 해주셔야 한다. 한 번씩 눌러주심 감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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