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벌써 3편. KBS 2TV <블러드>와 <오렌지 마말레이드>에 이어 MBC <밤을 걷는 선비>. TV 속 브라운관은 지금 뱀파이어가 활개를 치고 있다. 지난 2011년 OCN에서 방영한 <뱀파이어 검사>처럼 흡혈귀를 소재로 한 드라마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불과 몇 개월 사이에 3편의 드라마가 연달아 뱀파이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은 이례적이라 할 만하다.
재미있는 건, 드라마 속에서는 괴력을 발휘하고 하늘을 나는 등 다양한 볼거리를 선사해주는 뱀파이어가 정작 안방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에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4월 종영한 <블러드>는 4~5%의 평균 시청률을 기록하며 불명예를 떠안았고, <오렌지 마말
레이드>는 그보다 못한 3% 내외에서 허덕이고 있다. 그나마 <밤을 걷는 선비>가 7%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나름대로 선전(?)하는 듯 보이지만, 원작 웹툰의 인기와 주연배우 라인업 등에 비춰보면 이 또한 아쉽게 느껴지는 수치임에는 분명하다.
비단 시청률만의 문제는 아니다. 드라마가 방영되기 전 떠들썩했던 분위기와 달리 세 드라마는 막상 방송이 시작된 이후에는 이렇다 할 화제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한 마디로 기대에 못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드라마 속 뱀파이어는 왜 시청률 사냥에 실패한 것일까.
우선은 식상한 이야기 구조와 한국 드라마의 고질적인 문제인 ‘멜로’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겠다. 세 드라마 모두 ‘착한 흡혈귀 vs 나쁜 흡혈귀’라는 선악 구도를 통해 갈등을 유발하는데, 이는 굳이 흡혈귀가 아니어도 가능한 이야기 전개 방식이다. 중세 루마니아의 뱀파이어 백작에서 출발한 흡혈귀라는 소재를 가져와 뻔하고 뻔한 선악 대결을 선보이고, 이어 ‘흡혈귀가 연애하는 스토리’로 마무리를 짓는다면, 시청자가 채널을 고정해야 할 이유는 결코 없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역시나 ‘재해석’이다. <블러드>의 경우 피를 먹고 사는 흡혈귀의 직업이 의사라는 설정은 참신했으나, 그 이상을 보여주지 못함으로써 아쉬움을 남겼다. 의학 드라마라는 장르를 위해 뱀파이어라는 소재를 낭비한 느낌이 강했다. <오렌지 마말레이드>와 <밤을 걷는 선비>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뱀파이어가 인간사회에 숨어 지내는 존재거나 혹은 그 배경을 조선시대로 택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타당한 이유가 필요한데, 두 드
라마는 모두 원작인 웹툰의 만화적 상상력으로 그 대답을 대신한다.
드라마는 만화와 다르게 현실에 발을 붙인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세 드라마는 흡혈귀라는 소재에만 집착할 뿐, 그 캐릭터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시청자에 게 어떤 메시지를 주려고 하는지가 불분명하다. 물론, 그저 영화를 보듯 뱀파이어의 화려한 액션을 즐기거나 CG를 감상할 수도 있겠으나, 드라마가 종영되는 두 달 가까운 시간을 그저 화려한 볼거리만 가지고 끌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에는 ‘이야기’가 재미있어야 한다. 착한 뱀파이어가 나쁜 뱀파이어를 무찌르고, 끝내 사랑을 이루게 된다는 클리셰에서 벗어나 보다 다양한 변주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 뱀파이어라고 해서 꼭 ‘피’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인간의 피를 먹지 못하면 고통에 몸부림치는 뱀파이어, 대체 언제적 이야기란 말인가. 발상의 전환 없이는 새로움도 없고, 재미도 기대할 수 없다.
여기에 더해 드라마에서 다루는 뱀파이어라는 소재가 지금 우리들에게 던지는 의미가 어떤 식으로든 분명하다면 더욱 좋을 거 같다. 어떻게 풀어내느냐의 문제겠지만, 뱀파이어라는 존재를 소외된 약자의 상징으로 그려낼 수 도 있고, 존재의 차이가 어떻게 차별로 이어지는지도 충
분히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뱀파이어는 더 이상 우리들에게 낯선 소재가 아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뱀파이어를 소재로 한 드라마는 계속 제작될 것이다. 하지만, 낯설지 않다고 해서 그게 이유가 될 수 는 없다. 배경이 어디든, 직업이 무엇이든, 뱀파이어라는 소재를 두고 “왜?”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충분한 답을 기
대할 수 있는 그런 드라마가 나오길 바라본다.